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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치른 평안도 과거시험 직후 제작
일제강점기 유출, 다시 먼나먼 미국으로
1927년 美 피바디에섹스박물관서 사들여
19세기 평양성 잔치를 그린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8폭 병풍은 애초 평양감사 부임 환영 잔치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반입돼 복원 과정을 거치며 1826년 평안도에서 실시한 과거 급제자 축하연으로 확인됐다. 문·무과 장원으로 보이는 두 인물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데서 단서를 찾았다. 두 장원이 행진하는 모습(1폭·왼쪽), 두 장원이 대동강 배 위에 앉아 있는 모습(2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격동의 구한말, 28세 청년 유길준(1856∼1914)은 1883년 미국을 방문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듬해였다. 서양과는 처음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조선이 보낸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이었다. 개화의 열망에 불탔던 유길준은 서구의 문명에 충격을 받았고, 6개월 공식 임무를 마쳤음에도 혼자 남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조선 최초 국비 유학생을 도와준 이는 미국 동부 보스턴 인근 작은 항구 도시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과학관(피바디에섹스박물관 전신)의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 관장이었다. 유길준은 모스의 집에 기거하다 독립해 19개월간 현지 학교에 다녔다. 이 때 맺어진 인연은 일제강점기 유출됐다 1927년에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팔려나간 19세기 병풍이 제 모습을 찾는 출발이 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삼성문화재단의 자금과 기술 지원을 받아 복원을 마치고 최근 공개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의 200년 유랑사를 소개한다.


#개화파 유길준이 물꼬 튼 병풍의 첫 귀환

1826년 순조 때 실시한 평안도의 특별 과거시험 이후 제작된 이 병풍이 나라 밖으로 나간 시기는 모른다. 약 100년 후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점 야마나카(山中) 상회로부터 사들인 연도(1927년)만 분명하다. 1799년 개관한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1883년부터 한국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길준이 미국으로 갔던 그해부터다. 현재 1800점 넘는 한국 컬렉션은 초대 관장 모스의 열정이 바탕이 됐다. 모스는 한국에 온 적은 없다. 하지만 일본에 갔을 때는 조선에서 온 수신사 윤웅렬을 만나 개인 소지품을 달라고 했고,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뒤에는 한국 유물 구입을 요청해 의복, 부엌 가구, 나막신 등 200여점을 사들였다. 유길준이 당시 입었던 의복과 소지품도 받아서 소장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국외유산 지원사업에 선정돼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의 자금 및 기술 지원으로 복원된 '평양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리움미술관·피바디에섹스박물관 제공

모스가 1914년 은퇴한 후에도 한국 유물 수집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이 병풍까지 수집하게 된 것이다. 수장고에 있던 이 병풍이 고국 땅을 다시 밟은 건 67년이 지난 1994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에서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유길준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유학생들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전시가 성사됐다. 구한말 종로거리에 걸려 있던 상점 깃발(저포전기)까지 나왔다. 이 병풍도 전시에 선보였지만 원래의 병풍 틀은 뜯긴 채 8폭의 낱장 그림으로 전시됐다.

#두 번째 귀환… 신임 평양감사 환영?→ 과거 급제자 잔치!

대동강을 건넌 뒤 두 장원이 행진 도중 말에서 내려 관찰사 쪽으로 가는 모습(3폭·왼쪽), 두 장원이 평양 감영 에서 부모와 친지에게 인사를 올리는 모습(5첩) 등 1폭을 빼고 모두 두 인물이 등장한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1994년 전시에는 개막 첫날 4500여명이 찾는 성황을 이뤘다. 말을 탄 관복 입은 사람 뒤로 행렬이 뒤따르고, 악공이 연주하고 기녀가 춤을 추고, 구경꾼이 늘어서 있고, 대동강 위 줄줄이 띄운 배 위엔 붉은 횃불이…. 한껏 흥이 오른 잔치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 병풍은 1994년의 전시 때는 신임 평양 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잔치를 그린 그림으로 여겨졌다. 이번 두 번째 귀환 과정에서 그것이 아니라 1826년에 실시한 평안도과 급제자만이 누린 특급 환영 행사를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최근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비밀을 푼 이는 미술사학자 박정혜씨다. 그는 8폭 병풍 속에 개미처럼 작게 그려진 무수한 인물 군상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을 주목했다. 1폭에서 시종이 든 일산(日傘) 아래 녹단령을 입고 복건 위에 무각사모를 쓴 채 각기 말을 탄 두 사람. 이것은 과거 급제자가 관직에 나가기 전 착용하는 복식이었다. 두 사람은 대동강을 건너는 장면을 그린 2폭에서는 정자 모양 지붕을 한 큰 배 위에 공손한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사람은 3폭의 평양성 대로행진 장면에서는 가마에서 내려 뒤돌아 걸으며 가마 위 관찰사에게 예를 갖춘다. 이처럼 그림 속 인물의 특징에 주목한 그는 사료를 뒤져 당시 도과 급제자 이름까지 밝혀냈다.

다음 난제는 그림 순서였다. 순서를 맞추는 데는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의 공이 컸다. 남유미 보존연구실장은 “위성 지도를 통해 현재의 평양을 살피며 19세기 평양성도를 비교했다. 부벽루, 선화당 등 건물의 편액과 행렬의 방향, 도보 시간까지 따져 순서를 찾았다”고 했다. 쌀벌레가 먹어서 생긴 무려 1만개의 작은 구멍도 메워졌고, 병풍의 틀도 새롭게 제작됐다. 말끔히 복원돼 새 이름표까지 단 이 병풍은 내달 6일까지 리움미술관 전시를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유길준전시실에서 관객을 맞는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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