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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워싱턴 D.C.에 있는 존 F. 케네디 공연 예술 센터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관람석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원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이민자에 대한 추방을 강행하며 사법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논란이 커져 가고 있다. 백악관은 ‘법원 명령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언론은 트럼프 정부가 대놓고 법원을 무시하여 헌정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와 시엔엔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으며 다음날 260여명의 이민자를 엘살바도르로 추방했다. 이 중 137명이 적성국 국민법 적용을 받는 베네수엘라 국적 이민자였다. ‘적성국 국민법’은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위협이 있을 때 적국 국민을 구금 또는 추방할 수 있게 한 법으로, 이 법이 적용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문제는 추방 시점에 워싱턴 디시(D.C) 연방법원 판사 제임스 보스버그가 ‘일시 추방 정지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의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베네수엘라 국적 수감자 5명을 대리해 추방 집행 금지 소송을 낸 바 있다. 소송 도중 추방 조짐이 보이자 판사가 당분간 집행을 중지하라는 긴급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고의로 무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판사가 긴급 청문회에서 구두로 “비행기가 이륙했다면 즉시 회항시키라”고 지시한 것은 15일 저녁 6시 45분 경이었다. ‘추방을 중단하라’는 서면 명령이 온라인 연방정부시스템(PACER)에 올라온 것은 저녁 7시26분이었다. 다만 두번째로 나온 서면 명령엔 ‘회항’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다. 시엔엔이 공개한 비행추적 데이터(FlightRadar 24)에 따르면, 추방 대상 이민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한 것은 각각 저녁 5시 26분과 45분, 그리고 7시37분이었다.

미 법무부는 법원에 제출한 항소장에서 “법원의 두번째 명령(서면 명령)이 발부되기 전 이미 (비행기가) 미국 영토를 벗어났다”고 썼다. 서면 명령에 구체적으로 ‘회항’이 적시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보스버그 판사는 17일 심리에서 “서면 명령이 아니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거냐”며 구두 명령과 서면 명령이 다르다는 트럼프 정부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또 비행기가 어디를 날고 있건 간에, 회항을 결정할 수 있는 공무원들은 법원의 관할권 안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무부 변호인단에 18일 정오까지 추방을 명령한 시점과 비행 자체에 대한 세부 정보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법원 명령을 무시하며 삼권 분립에 어긋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정부 국경 총괄 책임자(‘국경 차르’)인 톰 호먼은 17일 폭스 뉴스에 출연해 “우린 (추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판사나 좌파들이 뭐라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같은 날 기자들 앞에서 “톰 호먼의 말을 인용하면, 판사들이 뭐라건 상관없다. 하지만 법원 명령을 어기진 않았다”고 되풀이했다. 팸 본디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판사가 대통령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 법무부는 연방항소법원에 보아스버그 판사를 소송 절차에서 배제하라는 서한도 보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시엔엔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사법부 판결을 고의적으로 따르지 않는 패턴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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