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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별도 입안, 1980년 9월부터 1987년까지 실시
삼청교육 3배 규모…‘삼청교육 뒤 순화교육’ 피해자도

군인처럼 빨간 모자 쓴 교도관, 군사훈련에 가혹 행위
“윤석열 계엄 성공했다면 똑같은 일 벌어졌을 수도”
1980년 10월 대전교도소의 미결 재소자들이 가마니 들고 구보하기를 하며 순화교육을 받는 모습.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대전교도소사’에 실린 사진이다. 진실화해위 제공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법원 등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80년 10월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38살의 이부영은 한겨울 교도소 연병장에서 순화교육을 받았다. 교관들은 연병장에 쌓아놓은 눈 무더기 속으로 기어서 파고 들어가라고 했고, 못하면 무자비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견디지 못한 재소자가 벌떡 일어서 항의하자 교관은 그를 발가벗긴 뒤 성기를 잡게 하고는 지휘봉으로 수차례 내려쳐 피가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재소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등 교정시설 재소자들에게 ‘삼청교육’과 같은 방식으로 군사훈련과 가혹행위를 한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이 법무부의 별도 입안에 따라 6년간 자행된 사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18일 오후 열린 제101차 전체위원회에서 이부영·원동규씨 등 30명이 신청한 ‘교정시설 내 재소자 순화교육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하고 국가에 공식적 사과와 피해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권고했다. 재소자 순화교육 피해자는 삼청교육 피해자 4만여명을 훌쩍 넘어서는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980년 10월 대전교도소 재소자들이 제2기 순화교육대(미결)에 입소해 PT체조을 하는 모습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대전교도소사’에 실린 사진이다. 진실화해위 제공

세월이 40년 넘게 흘러 진실화해위에 사건 신청을 했던 이부영(83)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당시 대구교도소에서 미전향 장기수를 제외하고 모두 재소자가 그렇게 가혹행위를 당했다. 너무 늦게서야 진실이 밝혀졌다. 자유언론수호를 위해 싸우다 정치범으로 들어간 내가 당시 공포 분위기 속에서 한마디도 못한 게 평생 마음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이부영 위원장을 비롯한 신청인들은 순화교육 당시 교관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어 군인들이 교도소에 와 삼청교육을 실시한다고 여겼으나,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이들은 군인이 아닌 교도관이었다. 교도관 240명이 1980년 9월15일부터 일주일간 26사단에서 특별교육을 받고 온 기록도 있다. 이 때문에 신청인들은 삼청교육 피해를 입었다며 진실화해위에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법무부 교정사와 계엄상황일지, 재소자 이력을 적은 신분장 등을 통해 법무부가 별도로 입안한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의 실체를 확인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법무부 교정국은 1980년 8월30일 ‘재소자 특별순화교육지침’을 수립했고, 1980년 9월22일부터 1987년까지 전국 교도소, 구치소에 수용 중인 수용자들에게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을 실시했다.

앞서 신군부는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1980년 8월 계엄사령부의 계엄포고 제13호에 따라 그해 12월29일까지 3만9742명을 군부대로 보내 순화교육인 삼청교육을 실시했는데, 한 달만에 삼청교육과 같은 내용으로 더 많은 재소자를 대상으로 순화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1980년 9월 대전교도소 재소자들이 제1기 재소자 특별순화교육 입대식을 하는 모습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대전교도소사’에 실린 사진이다. 진실화해위 제공

재소자 순화교육은 미결수, 기결수, 남녀노소 상관없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전체 수용자들에 하루 7~8회씩 4주간 실시됐다. 법무부 교정국은 1987년까지 순화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피티(PT)체조, 유격 훈련 등의 군사 훈련 외에 몽둥이 구타 등을 가했고, 선고가 나지 않은 미결수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해 체벌하는 등 인권을 침해했다. 이번에 진실규명을 받은 대상자 중에는 삼청교육을 다녀온 뒤 두 번의 구치소 수감 중에 순화교육을 각 4주씩 받은 이도 있었다.

주목되는 점은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 피해자의 숫자가 삼청교육 피해자의 세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한 관계자는 “당시 매해 교정시설 수용인원이 5만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6년간 총 인원은 30만명이다. 서울·부산·성동구치소, 의정부·청주·전주·대구·춘천·대전·공주교도소, 청송감호소 등 대부분의 교정시설에서 순화교육이 진행된 걸로 확인되는데, 겹치는 숫자를 제외하면 15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삼청교육 피해자는 4만여명인데, 이보다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 피해자가 더 많다는 것이다. 다만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보고서에서 피해자 규모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1980년 대구교도소에서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을 받았던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진실화해위는 순화교육이 기결수 외에 모든 미결수 및 정치범을 교육대상에 포함해 행형법과 유엔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 규칙을 위배해 육체적 고통을 가했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도 인도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존중하여 취급된다”는 기준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당시 법무부 교정국장을 역임한 김석휘 전 법무부 장관은 면담조사를 거부했다. 1981년 10월 ‘재소자 특별순화교육 교안’을 제작해 순화교육 유공자 표창을 받은 청주교도소 임아무개 교도관은 이미 사망해 조사할 수 없었다. 안동교도소에서 재소자 특별순화교육을 담당했던 교도관은 면담조사를 거부했다.

진실화해위는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과 관련해 이 사건 피해자들의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수용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교정시설에서의 수용·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교정 공무원 등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이부영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좌익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윤 대통령 의지에 따라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게 머나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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