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날개’로 불리던 보잉이 ‘떠다니는 재앙’으로 조롱을 받고 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안전’이라는 항공업의 목적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안전’이라는 항공업의 목적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이자 방위산업체인 보잉(Boeing)이 추락하고 있다. 100년 기업이자 ‘미국의 날개’로 불리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만년 1등에게 작년 연이어 악재가 터졌다. 5000m 상공을 비행하던 중 동체 일부가 뜯겨 나가고, 이륙 준비 중 앞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등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국민 모두를 비통하게 만든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보잉의 신뢰도는 또 한 번 큰 타격을 입었다. ‘보잉이 아니라면 난 가지 않을래(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라는 자부심이 담긴 슬로건이 무색하게 이제 보잉은 ‘최악의 날개’, ‘떠다니는 재앙’, ‘마진 메이커(Margin Maker : 기술·안전보다 수익성에 집착한다는 의미)’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대체 보잉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위험한 선택 불러온 조급함과 압박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잉737맥스 사태를 들여다보자. 2010년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업 에어버스(Airbus)가 신형 항공기 A320네오를 발표했다. A320네오는 연료 효율성이 높고 유지비도 낮아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보잉의 오랜 고객사였던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등도 A320네오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시장점유율에 위협을 느끼고 다급해진 보잉은 급성장하고 있는 에어버스와 경쟁할 만한 새로운 기종이 필요했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신형 항공기를 개발하는 데는 통상 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잉은 그만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737 모델을 개량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장에 내놓은 기종이 바로 737맥스였다.
보잉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737맥스에 큰 엔진을 달았다. 그런데 이는 기체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행 중 기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보잉은 자동으로 기수를 낮춰주는 조종특성보강시스템(MCAS)을 도입했다. 그런데 MCAS는 한 개의 센서에만 의존하고 있어 오작동할 경우 조종사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결함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보잉은 빠른 출시를 위해 규제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항공사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보잉이 배포한 매뉴얼에도 MCAS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아예 없었다. 조종사 교육에 이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항공사도 조종사도 대처법을 숙지할 수 없었다.
보잉의 경영진은 항공사들이 에어버스의 A320네오 대신 737맥스를 선택하게 하려면 기존 737 모델의 조종사들이 추가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없게끔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320네오를 도입하면 조종사가 교육의 부담 없이 기존 A320과 유사한 방식으로 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보잉이 737맥스를 새롭게 설계한다면 조종사들이 대규모 추가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이는 항공사에 큰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조종석의 인터페이스와 시스템을 737 모델과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MCAS 같은 문제를 숨기게 됐다.
여기에 MCAS 오작동을 조종사들이 조기에 인지할 수 있게 하는 안전경고장치를 기본 장착하지 않았다. 항공사가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유료 옵션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저가 항공사나 비용을 아끼려는 항공사가 이 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속도·비용에 밀린 ‘안전’의 가치
치명적 사고 발생으로
치명적 사고 발생으로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소속 737맥스가 이륙 직후 바다로 추락해 189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 결과 MCAS가 오작동했지만 조종사가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잉은 즉각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고 ‘조종사 교육’ 이슈로만 결론지었다.
하지만 5개월 뒤인 2019년 3월 10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737맥스가 비슷한 문제로 추락했고 157명이 사망했다. 두 차례의 대형 참사로 무려 346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2015년부터 보잉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737맥스 개발과 출시를 지휘한 데니스 뮬렌버그는 사고 이후에도 737맥스가 본질적으로 안전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품 결함을 최소화하려 했고 리콜이나 운항 중단 같은 조치를 최대한 늦췄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면서 결국 전 세계 항공사들이 737맥스 운항을 중단했고 약 200억 달러의 손실과 주가 폭락이 이어졌다. 보잉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수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깨져버린 명성을 다시 찾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737맥스 사태는 그저 기술적 결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빠르게 출시해야 한다’, ‘추가 훈련 없이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 안전 장치는 옵션으로’ 같은 몇 가지 결정들이 모여 결국 대형 참사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당장의 이익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잊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 보잉은 오랫동안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고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엔지니어 중심 회사’의 대표 주자였다. 그러나 경쟁사였던 맥도널더글러스를 인수합병한 이후 보잉의 경영진은 단기적 재무성과에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엔지니어들을 대규모 해고하고 부품 제조 공정에서 외주 비중을 배로 늘렸다. 협력사의 납품단가까지 공격적으로 낮추며 품질을 보장하기도 어려워졌다. 모두 비용 절감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항공산업에서 ‘안전’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겠는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기업의 목적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보잉의 사례는 단기적인 이익을 좇다가 본질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산업에서는 안전과 윤리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리더는 눈앞의 성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 리더의 결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 리더의 결정에 따라 조직문화와 사업모델이 정해진다. ‘기존 사업에서 철수하고 신사업에 집중할 것인가’와 같은 중대한 결정 단 하나에 기업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해왔다. 이처럼 리더의 의사결정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렇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의사결정의 원칙과 기준, 당신은 가지고 있는가.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인사이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