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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극우화ㅣ‘보통의 학생’ 3명 인터뷰
‘애국청소년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시민 100만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지난해 12월7일, 고등학생 이기원(17)군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대통령 탄핵’을 염원하는 시민의 모습을 단체 대화방에 전했다. 한 친구의 조롱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시민 폭동에 참여하는 거? 탱크가 필요하노.”

바로잡고 싶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친 참담함,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상계엄 포고령의 문제점을 차분히 설명해보려 했다. 되돌아온 답변은 그저 사진 몇장. 박정희, 전두환, 탱크의 모습이 휴대전화 화면에 번졌다. 그 대화가 이후 교실을 뒤덮을 극단적 목소리의 서막이리라고, 그날 이군은 생각지 못했다.

그로부터 석달 가까이 흐른 지난 15일, 청소년 20여명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 청소년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저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외쳤다. 둘러싼 어른 10여명은 “잘한다” “최고다, 최고”라며 치켜세웠다. 온라인에선 탄핵 반대에 나선 청소년을 북돋우며 ‘MH(무현) 세대’로 부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의미를 담은 혐오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사이에서 자리잡은 혐오 정서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의 극단적 구호가 12·3 내란사태 이후 상호작용하며 확산하고 있는 상황을 고심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청소년의 혐오 정서가 있었지만 오프라인 세계로 넘어와서 꽃을 피우게 된 계기가 이번 계엄 사태였습니다.”(권정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정치권이 탄핵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기존의 혐오를 다 끌어다 쓰는 관계로 보입니다.”(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작가)

한겨레는 17일, 12·3 내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청소년 3명의 눈으로 지난 3개월여의 교실을 돌아봤다. 민주주의와 정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의 상식이 외려 조롱거리로 내몰리고 숨죽이게 된 ‘전복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청소년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극단적 내용의 쇼츠 영상을 만드는 또래 제작자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왜’냐는 물음에 답은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인식 없는 혐오

상식의 자리에서 버텨보려는 학생에게 교실은 이상한 공간이다. 수업 안에서 정치적 발언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또래 사이 장난을 표방한 정치적 혐오는 ‘숨 쉬듯 자유롭게’ 반복된다.

박지우(18)군이 그런 교실 풍경을 전하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가 실수를 하면 ‘너 장애인이냐’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고, 남자끼리 몸이 닿기라도 하면 ‘게이’라며 성소수자를 비하해요.” 혐오와 비하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5·18 광주민주항쟁을 ‘광주 폭동’이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이 말투 전반에 녹아 있다. ‘남자는 보수, 여자는 진보’라고 인식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냥 웃고 떠드는 하나의 문화예요. 아예 잘못됐다는 인식을 못 하는 거 같아요.” 어디서 들은 표현인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박군은 “신남성연대 유튜브처럼 남학생들이 웃고 떠들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지천에 널려 있다”고 했다.

반면 그에 대한 설명과 제지는 기대할 수 없다. 남궁솔(18)군은 “선생님도 엄두가 안 나실 것”이라며 안쓰러워했다.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문제가 되고, 학부모 민원도 받으실 거잖아요.” 진보와 보수의 역사와 맥락이 무엇인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오 표현과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왜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지, 극우 유튜브는 어떤 점에서 믿을 수 없는 콘텐츠인지 ‘정치’를 삼가는 학교는 가르쳐줄 수 없었다.

그 틈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했다. 박군이 말했다. “고민을 해보고 ‘진보다 보수다’라는 인식을 갖느냐면 단언컨대 아니거든요. 목소리 하나에 꽂혀서 지지하거나 혐오하는 거죠.”

머리에 꽂히는 목소리

교실은 ‘진공 상태’에 있지 않다. 12·3 내란사태 이후 빈도와 강도를 더한 정치 콘텐츠가 교실에도 전해졌고, “확실히 더 많은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문제는 방향이다. 아이들은 ‘더 세고, 과격하고, 도파민 돋우는’ 꽂히는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기원군이 말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도 계엄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는데, 주로 유튜브로 조각조각 사안을 알게 돼요. 단편적이지만 도파민을 확 폭발시키는 것들.” 주로 외국인·야권·노동자·소수자·여성을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합리화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교실에 이전부터 번져왔던 약자를 향한 조롱과 상통한다. 내란 이후 강자에 대한 합리화가 더해졌다. 이군은 “대통령에게는 절대군주 같은 권한이 있는데 왜 국회를 통제 못 하느냐고 인식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힘과 약육강식’의 세계를 믿는다면 혹할 만한 얘기였다. 더군다나 이런 얘기는 ‘믿을 만한 어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이기원군은 “국회의원이나 전한길 강사 이런 분들이 얘기하면 믿을 만하겠다는 정서도 많다”고 짚었다.

어느덧 극단적인 말은 교실에서 ‘빵 터지고, 쿨한 것’이 됐다. 남궁솔군은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친구들은 반에서 인싸(주류)로 분류되는 친구들”이라며 “이런 말 하면 빵 터질 걸 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나서서 얘기하는 게 ‘쿨하다’거나 멋있다고 여기는 것도 같다”고 설명했다.


교실이 어른에게

교실 안의 상식은, 그렇게 바깥 사회보다 한발 더 빨리 소수에 놓일 위기다. 학생들은 그 와중에도 또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지우군은 내란사태를 규탄하는 고등학생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들었던 말을 되짚었다. “몇몇 친구들이 공산주의자·빨갱이 이런 이야기도 조금 하고, 수군대기도 했고요. ‘이재명한테 얼마를 받았느냐’는 얘기도 있었네요.” 시국선언 안내를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은 일도 있다. “그런 건 또래가 한 건 아닐 거예요. 그냥 어느 극단적인 분이겠죠.”

박군은 또래를 믿으려 한다. “비하와 조롱에 동조하지 않는 학생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색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건 자신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선비다’ 소리 들을 거예요.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도 ‘선비다’ 한마디로 변질시켜버리니까, 섣불리 목소리를 내기보단 그냥 한숨 쉬고 넘기는 거죠.”

옳고 그름의 선을 그어주지 못하는 교실에 사회의 극단적 주장이 빈도와 강도를 더해 들이닥쳤다. 학생은 어른에게 하소연했다. “민주주의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엔 극단적인 목소리도 있을 거예요. 갈등이 커지면서 ‘그래도 된다’고 더 주입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이 주류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하잖아요. 합리적인 목소리로 돌아와주세요.”(이기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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