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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권’ 유행어 탄생시킨 쇼핑 성지 경제+ 음식도, 패션도 세대별 취향이 뚜렷한 한국에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쇼핑 성지’가 있다. 화장품, 옷, 먹거리, 건강기능식품까지 파는 ‘골목 백화점’ 다이소다. 이커머스의 매서운 공세에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고전하는 요즘 다이소는 나홀로 빛나는 성적표를 자랑한다. 다이소 제품 가격은 ‘비싸 봤자’ 5000원. 이걸 팔아 지난해 연 매출 4조원 고지에 올랐다(증권업계 추산). 박리다매로 이문도 쏠쏠히 챙겼다. 매출은 쿠팡의 10분의 1인데 영업이익은 쿠팡의 절반에 가까운 2617억원(2023년 기준)이다. 다이소는 뭘 어떻게 팔고 운영하길래 이렇게 잘나갈까. 길고 긴 불황이 끝나도 다이소의 성장은 계속될까.
그래픽=김호준
만물상에서 ‘쇼핑 성지’로
1997년 서울 천호동에서 첫 매장을 연 다이소는 26년 만에 1500여 개 점포를 가진 대규모 유통체인이 됐다. 이 회사 창업자인 박정부 회장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출점했고, 이후 지하철 지하상가와 도심 상가, 단독 건물을 공략했다(『천원을 경영하라』). 상품의 절반(51%)이 1000원짜리인 탓에 한때는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며 주변 상점들이 입점을 격렬히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인근 상인과 건물주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임대 점포가 됐다. 장사 잘되는 다이소가 입점하면 건물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다세권’(다이소 상권을 ‘역세권’에 비유)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다.

김경진 기자
다이소 매장 중 약 3분의 1(500여 개)은 가맹점이다. 점주들에 따르면 본사는 입지, 면적, 운영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준비해 온 이들을 중심으로 가맹 계약을 체결한다. 가맹 매장의 평균 연 매출은 16억5000만원(2023년 기준)으로 매년 약 10%씩 성장하고 있다.

세대별 고객들은 꼽는 다이소의 장점은 ‘물건이 다양한데, 싸고 품질도 좋다’는 점이다. 중학생 김모양은 다이소에서 뷰티 유튜버가 소개한 화장품, 포토카드 꾸미기 용품 등 SNS 유행템을 저렴하게 구매한다. 30대 전유경씨는 “쿠팡에서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다이소는 가까이 있어 산책하듯 올 수 있다”며 “가격이 저렴해 망가져도 부담 없이 다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달에 600개? 급성장의 비밀
다이소에는 매달 600여 개, 하루 평균 약 20개의 신상품이 들어온다. 재방문을 늘리기 위해 ‘어제는 없었던’ 제품을 매일 공급한다. 모든 제품은 균일가.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여섯 가지 가격에 제품을 맞춘다. 공급처와 대량계약을 체결해 단가를 낮추는 것은 기본. 용량을 줄이고 포장을 간소화하고 성분 함량을 낮추기도 한다. 원가 경쟁력을 위해 해외 거래처도 늘렸다. 현재 35개국 3600여 개 업체에서 상품을 공급받고 있다. 대나무 접시는 베트남, 스테인리스 제품은 인도, 도자기와 유리 제품은 터키에서 수입한다.

김경진 기자
SNS에서 입소문을 탄 다이소의 제품들은 이른바 빠르게 재고가 소진되는 ‘품절템’이다. 피부 재생용 화장품 ‘리들샷 앰플’, ‘다이소 에어팟’으로 불리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표적이다. 다이소에 유독 품절 제품이 많은 이유는 공급 물량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신제품이 많은 대신 입고 물량을 최소화해 소위 ‘간을 본다’. 꾸준히 인기가 있는 제품은 재입고를 추진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일부 매장에서만 인기가 있는 제품은 온라인몰(다이소몰)로 고객을 유도한다.

다이소 매장은 위치에 따라 상품 구성도, 품목 배열도 다르다. 임대료가 비싼 번화가는 좁은 땅에 복층으로 매장을 꾸린다. 관광객이 많아 늘 북적이는 서울 명동역점은 12층 꼬마빌딩 한 채를 전부 점포로 꾸몄다. 수직 구성의 장점을 활용해 층별로 미용, 식품, 패션 등 테마를 세분화해 운영한다. 지방이나 주택가에 있거나 대형마트 내 입점한 ‘숍인숍’은 1개 층을 넓게 쓰는 경우가 많다. 수평 점포의 특성상 매장이 시원하게 트여 있고 멀리 있는 진열대도 한눈에 보인다.

다이소 매장에는 인근에 사는 주부 점원이 많이 근무한다. 점원 교육은 상품 위치를 ‘신속 정확하게’ 안내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다이소 고객이 원하는 건 백화점 같은 친절한 응대가 아닌 ‘빠르고 쉬운 쇼핑’이라는 분석에서다. 주부 점원들은 다이소 신상품을 가장 먼저 구매하고, 가장 자주 쓰는 고객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00원짜리 수세미가 1000원짜리 수세미와 미묘한 차이점을 찰떡같이 설명한다.

천원숍의 숙명?
1달러숍·달러스토어(미국), 100엔숍(일본) 등으로 불리는 해외의 균일가 상점들은 불황을 타고 큰 인기를 얻었지만 물가 인상과 원자잿값 상승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의 달러스토어들은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생필품 위주로 구매하고 장난감·파티용품 등 고(高)마진 상품의 구매를 줄이자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미국 달러트리는 35년 넘게 지켜온 기본 가격(1달러)을 1.25달러로 바꿨고, 일본 다이소에는 1000엔(약 1만원)짜리 상품이 등장했다.

다이소는 어떨까. 원가 상승을 어디까지 방어할 수 있을지, 판매 제품 중 20% 미만인 최고가(5000원) 상품 비율을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교수(유통연구소장)는 “다이소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글로벌 소싱)이 많다 보니 환율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객단가를 높이기 위한 가격 인상이 과제일 것”이라고 봤다.

균일가 정책을 고수하느라 품질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이소는 지난해 11월 ‘살림 꿀템’으로 불리던 스테인리스 전용 세정제 판매를 중지했다. 발암 물질인 납 성분이 허용치의 2배 이상 검출됐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다이소에 관한 불만 접수는 504건으로 전년(317건)보다 59% 늘었다.

먹고 바르는 제품에 대한 불신의 시선도 존재한다. 최근 화제를 모은 다이소표 건기식도 마찬가지다. 한 약사는 유튜브에서 다이소 건기식 성분을 분석하며 “오메가3는 어느 회사의 원료인지 알 수 없고, 비타민C는 약국에 더 저렴한 제품이 있다”며 “대부분 (구매하기) 애매한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드럭스토어’ 잡는 이가 승자?
오프라인 확장에 주력하던 다이소는 최근 온라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23년 ‘다이소몰’을 리뉴얼하고 경기도 안성에 전용 물류센터를 열었다. 객단가를 높여 수익성을 키우기 위해 대량 주문 서비스도 신설했다. 품절 상품을 앱에서 주문하고 가까운 점포에서 수령(매장 픽업)하도록 하는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도 한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다이소몰 앱 사용자 수는 362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유통업계는 다이소가 도전할 다음 제품군에 관심이 크다. 일반의약품과 화장품, 생활용품, 식료품 등을 함께 취급하는 해외 드럭스토어처럼 진화할 것으로 본다. 조춘한 교수는 “올리브영, 편의점 등 최근 각광받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 중 드럭스토어를 건드리는 자가 승리할 것”이라며 “다이소가 영양제, 유산균 판매를 시작으로 건강 관련 상품의 판매를 더 확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업태의 경쟁자가 다이소를 위협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대학원장)는 “저가 업태는 잠재적 경쟁자가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약점”이라며 “중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 생겨났듯, 한국형 드럭스토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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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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