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다.”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부가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렸는데도 의대생·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의대 교수 등 선배 의사들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대 의대·병원의 하은진·오주환·한세원·강희경 교수는 17일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에이(A)4용지 4장 분량의 성명에서 이들은 전공의·의대생의 집단행동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하은진 교수 등은 “더는 침묵하는 다수에 숨어 동조자가 될 수 없기에 우리의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사태가 지속되면서 여러분들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다. 오직 탕핑(편하게 드러눕는다)과 대안 없는 반대만이 있을 뿐”이라며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다”고 짚었다.

일부 의대생·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교수들은 “메디스태프(의사 커뮤니티), 의료 관련 기사 댓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페이스북 글들 안에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쳐난다”며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의료 공백에 따른 피해에 대해 “사직과 휴학은 여러분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며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그들의 가족들”이라고 했다.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을 ‘착취’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자영업자의 75%는 월수입 100만원을 벌지 못한다”며 “‘억울하면 의대 오든지’라는 태도는 진심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또 의사 면허와 관련해 “희소성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며 “지금처럼 의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을 지속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된다면 사회는 결국 그 독점적 권한을 다른 직역에 위임할 것이다. 이것이 바라는 결과인가”라고 되물었다.

현장을 지키는 의료인에 대한 존중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동료 의사, 교수들을 비난하며 오히려 그들의 헌신을 조롱한다”며 “‘의사만이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간호사나 보건 의료직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응급실에서의 응급 처치, 정맥 주사 잡기 등의 술기를 이들에게 배우지 않았나”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의 리더여야 하는 의사가 팀원들을 비난하다니 동료애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기 전 전공의 등이 돌아올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수들은 “(의료 시스템) 붕괴에 정부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믿을 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기심에 의료 시스템 붕괴의 원흉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잃어버린 신뢰는 더한 규제, 소송, 그리고 더 가혹한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개혁을 이끌 것인지, 아니면 계속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낙인찍혀 도태될 것인지 이제 여러분은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교수들의 성명은 의료계가 전공의·의대생 복귀를 촉구하는 ‘마중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의학계 원로들의 모임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성명서를 내어 “의학에 투신한 학생들이 신중한 논의를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성명을 반박했다. 그는 “(응급 처치 등의 술기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책과 영상을 보며 혼자 공부했고 동료 전공의에게 물어가며 눈치껏 익혔다”며 “그걸 가르쳐야 할 주체는 당신들이다.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 없이 당당하게 얘기하니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한겨레

천호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