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승복은 ‘피고 윤석열’이 하는 것이다. 내란은 윤 대통령이 일으켰다. 이 대표가 ‘승복 선언’을 하든 말든 그건 부차적인 일이다. 12·3 내란 이후, 국민의힘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면서, 양비론을 극대화하고 있다.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한남동 관저로 들어가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 공식 입장은 헌재 판단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승복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윤 대통령도 최종변론 때 그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런 의사’(승복)를 밝힌 적이 없다. 지난달 25일 1시간7분에 이르는 최후진술의 90% 이상은 야당 비판이었다. ‘사과’도 ‘승복’도 없었다.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면, 60일 내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 국민의힘은 지금까진 대선 준비에 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선고 이후에도 ‘승복’ 여부를 놓고 당내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권 원내대표의 ‘승복’ 발언은 미리 길을 터놓으려는 성격이 짙다.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은 헌재를 겁박하는 게 아닌가”라는 공격도 잊지 않았다. 도둑이 매를 들고 도둑맞은 주인을 꾸짖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민사재판을 받는 게 아니다. 법원에선 내란죄 혐의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헌법재판소에선 탄핵심판 심리를 하고 있다. 승복은 ‘피고 윤석열’이 하는 것이다. 내란은 윤 대통령이 일으켰다. 죄를 지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게 법치국가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미수잖아. 아무 일 없었잖아’라고 하고, 야당한테는 ‘너 때문이야’라고 하고, 이 대표에게는 ‘너도 승복해’라고 한다. 이 대표가 ‘승복 선언’을 하든 말든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런 ‘선언’ 자체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동등화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때에도 탄핵심판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승복’ 여부가 이슈가 되진 않았다. 그래서 야당을 향해 ‘승복’ 운운하는 말도 없었다. 이 대표도 얘기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언급했듯 “헌재 결과 승복은 안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에게 ‘승복’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윤 대통령 지지층이라는 극우 세력이 연일 ‘헌재를 때려 부수자’는 식으로 폭동을 선동하고 있다. 선고 직후, 격앙된 이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사회 전체가 극히 불안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을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대통령직을 맡아선 안 될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오히려 반발이 강할수록, 탄핵 이후 정국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자신의 신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헌재 결정은 ‘파면’으로 끝나지만, 내란죄 형사재판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기 때문이다.

12·3 내란사태 이후,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국민의힘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면서, 양비론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먹힌 측면도 있다. ‘야당도 잘한 건 없잖아’ 논리, 또는 탄핵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의 동등 비교, 야당의 탄핵 촉구와 국민의힘의 탄핵 기각 요구를 똑같이 ‘헌재 압박’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이다. 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사안에 대한 몰가치, 권력자에 대한 무비판, 그리고 본질로부터의 이탈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5일 “승복은 가해자인 윤석열만 하면 된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회사의 지배구조를 뒤엎겠다고 깡패를 사내로 불러들인 부사장에 대한 징계 절차와 비슷하다. 야당과 국민은 피해자인데, 가해자와 동격으로 취급해 ‘같이 승복해’라고 하는 건 정의의 법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재명이 계엄령 선포했나”라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평소 이 대표를 향해 자주 신랄한 공격을 퍼붓는다. 그래도 이것이 ‘상식적인 보수’다.

12·3 내란사태 직후인 지난 1월 전직 한나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세 가지만 약속했으면 참 좋았겠다. 먼저 계엄을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이후 진행되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야당 횡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엄을 했는데 나는 그 잘못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으니, 여러분들(국민의힘)은 남아서 합심 협력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보수세력)가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을 텐데.”

윤 대통령이 ‘관저 농성’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또다시 권력을 잡겠다고 꿈꾸는 것이 난센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가 60~70대, 영남으로 대표되는 기존 보수 세력의 ‘최소한의 상식’일 것이다. 다만 그 인사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아무런 애정도 미련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식이 없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5304 정부 “미 '민감국가' 지정, 연구소 보안 문제”…구체적 내용은 파악 못한 듯 랭크뉴스 2025.03.17
45303 [단독] 곽종근 회유 시도 정황‥"민주당이 협박했다 하라" 랭크뉴스 2025.03.17
45302 [단독] 의대생 비판 서울의대 교수 "그들은 기득권 붕괴만 걱정" 랭크뉴스 2025.03.17
45301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지난해 연봉 13억원 수령 랭크뉴스 2025.03.17
45300 서울의대 교수 4명 “전공의들, 대안 없이 반대만 해” 비판 랭크뉴스 2025.03.17
45299 'K엔비디아' 이재명, 이번에는 유발 하라리와 'AI 대담' 랭크뉴스 2025.03.17
45298 대만, 중국의 훈련 가장 침공 시나리오 대비 첫 훈련 랭크뉴스 2025.03.17
45297 손경식 82억·이재현 37억… CJ제일제당, 회장 보수로 120억 지급 랭크뉴스 2025.03.17
45296 [Today’s PICK] ‘한국경제 허리’ 중산층…코로나 충격 가장 컸다 랭크뉴스 2025.03.17
45295 “비상계엄 전 아파치 헬기로 북 도발 유도 정황” 민주당, 외환 의혹 제기 랭크뉴스 2025.03.17
45294 [속보] 서울 전역 오후 11시 '대설주의보' 랭크뉴스 2025.03.17
45293 밤부터 40㎝ '3월 눈폭탄'…서울 역대 가장 늦은 대설주의보, 출근길 비상 랭크뉴스 2025.03.17
45292 “봄꽃 어디 가고” 느닷없는 '3월 눈폭풍' 원인은? 랭크뉴스 2025.03.17
45291 ‘미키 17’ ‘검은 수녀들’ ‘베테랑2’ 금요일 개봉 이유는… 20년 전으로 돌아간 극장가 랭크뉴스 2025.03.17
45290 서울의대 교수 "환자에 공포 무기삼아…전공의, 책임도 품격도 없다" 랭크뉴스 2025.03.17
45289 '민감국가' 지정 파문에 외교부 "美 정책 아닌 에너지부 연구소 보안 문제 때문" 랭크뉴스 2025.03.17
45288 檢 "대통령 윤석열" 호칭에…김용현 발끈 "국가원수인데 부당" 랭크뉴스 2025.03.17
45287 박단 "교수라 불릴 자격도 없다"…서울의대 교수 비판에 맞불 랭크뉴스 2025.03.17
45286 野 "계엄전 軍헬기로 北도발위해 휴전선 인근 비행" 제보 랭크뉴스 2025.03.17
45285 법 지킨 경호처 직원 ‘폭삭 속았네’ [한겨레 그림판] 랭크뉴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