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자력과 핵무기, 핵물질 등을 담당하는 에너지부 청사.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가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로 한국을 지정한 데 대해, 원자력 안전·환경 문제를 우려하는 과학기술자들이 “한국 정부의 핵 비확산 체제 위협과 한국이 미국에서 이전된 핵발전 기술로 수출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원자력 분야 실무 전문가 단체인 ‘원자력안전과미래’와 과학자 단체인 ‘핵과에너지의안전과환경을우려하는과학자모임’은 16일 성명을 내어 “윤석열 정권은 탈원전 반대정책을 내세워 핵개발 자신감을 드러내며 계엄까지 일으키는 불안한 국정운영으로 결국 (한국이) 민감국가로 분류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민감국가 지정의 주요 배경으로 △핵 비확산 체제를 위협하는 무리한 정책에 지속된 경고의 누적과 윤석열 정권의 불안한 국정 운영 △미국에서 이전된 원전 기술로 수출경쟁을 시도해 미국 이익에 정면 도전 등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핵 비확산 체제 위협과 관련, 이들은 “한국이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방식인)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와 고속로를 추진하자 2010년 프랭크 반 히펠 프리스턴대 교수(백악관 국가안보 담당 차관 역임)가 한국을 방문해 ‘핵 비확산 체제를 불필요하게 위협하는 연구’라고 강력하고 경고”하는 등 그간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기 위한 우리나라 쪽 연구가 꾸준히 미국의 우려를 샀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한미 양국이 공동연구해온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핵무기 제조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해왔다. 지난 10년 동안의 공동연구 결과, 사업 지속여부와 그 이유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중단된 듯하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민감연구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됐다며, 대표적인 것이 “용융염 원자로와 핵잠수함 관련 상업적으로 현실성이 없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 4월 한미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하버드대 강연에서 “마음만 먹으면 1년 안에 핵무기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는 등 “말로는 핵 비확산 체제를 잘 준수한다지만, 한국 주요 인사들을 수거하려는 계엄 시도에 말과 행동이 다른 정권이 정치적으로 어디로 튈지 모를 불안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28일(현지시각)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한 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와 대담하던 중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그런 기술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의 원전수출 시도도 또 다른 배경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원전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법원에 고발한 사례를 들며, “(고발 이유는) 지적재산권 보호 명분이었지만 미국의 수출통제(미국 에너지부 규정인 Part 810)를 어기고 민감기술인 원전 기술을 제3국에 제공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 수출은 미국 이익에 민감한 영역으로, 미국의 핵 비확산과 관련한 모든 정책은 미국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임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기술을 이전한 미국 이익에 반해 원전 수출을 경쟁하자는 한국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들은 “민감국가 분류는 원자력뿐 아니라 다른 첨단 기술분야까지 영향을 주는 매우 중차대한 사건”이라며 “여야를 떠나 (민감국가 발효일인) 4월15일까지 민감국가 지정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현재까지 무리한 원전 수출, 응용 연구 등에 따른 민감국가 지정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무리한 핵진흥 정책은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연구는 보다 실용적인 탈민감 산업으로 전면 수정하고, 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뒤늦게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기부 관계자는 17일 “과학기술 협력에는 앞으로도 문제는 없고, 과학기술 협력을 위해서 서로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보자는 얘기를 미국 에너지로부터 들었다”면서도 “그외에는 아무 것도 확인된 게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사안과 관련해 “정부 채널은 외교부로 단일화됐다”고 밝혔다.

한겨레

김규남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