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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 배경이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에서 여야 정쟁 소재로 비화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인 피트 헤그세스의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에 한국이 누락되는 상황까지 겹치며 ‘코리아 패싱’ 현실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 현지 한ㆍ미 외교 당국과 전현직 정부 관계자, 싱크탱크 인사 등에 대한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월 초 내려진 민감국가 지정 결정은 계엄ㆍ탄핵이라는 정치적 혼란 상황,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증폭된 자체 핵무장론, 미국의 권력 교체기와 한국의 권력 공백기라는 시기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가운데 나온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알박기성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부는 핵 비확산 ‘기술통제’ 부처”
정부 한 소식통은 “핵 비확산을 위한 ‘기술 통제’ 주무 부처인 에너지부가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인 만큼 한국 내 핵무장론과 연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도 “독자적 핵무장론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윤석열 대통령 등의 관련 발언이 미국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부ㆍ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체 핵무장 논의는 활발해졌고 전 세계 핵 도미노 확산을 우려한 바이든 정부는 이를 예의주시하며 몇 차례 경고음을 냈다. 촉발점은 2023년 1월 11일 국방부ㆍ외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우리도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심화된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현직 대통령의 핵 보유 가능성 시사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미 국무부는 다음날 곧바로 “비핵화가 한ㆍ미 동맹의 핵심”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후 같은 해 4월 26일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발표된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ㆍ미는 일체형 확장억제 강화를 합의했다. 하지만 그해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3국 정상회담 직후인 8월 21일 조태용 국정원장이 ‘한ㆍ미 원자력협정’ 개정 추진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주요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비등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런 흐름에서 ‘한국 핵무장을 포함해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놔야 한다’는 발언이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에게서 나오니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말 민감국가 지정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정상외교 부재…“美 서두르지 않을 것”
관건은 4월 15일 발효 전에 민감국가 지정 해제가 가능한지 여부다. 정상 외교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이고 구속력 있는 협상이 어려울 거란 우려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선 서두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가 민감국가 해제를 레버리지 극대화 카드로 활용해 관세 등 협상에서 한국에 큰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총 25개국 그래픽 이미지.
그럼에도 가용 가능한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 정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정부 관계자는 “톱 레벨(top level) 소통은 어렵더라도 한ㆍ미 실무진 간 접점을 계속 이어가고 소통 채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무장 논의 중단이 문제 해결에 도움”
특히 정치권의 설익은 핵무장론은 민감국가 지정 해제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만이라도 자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양대 정당이 자체 핵무장 논의를 중단하는 것이 사태의 근원적 해결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략적인 목적의 핵무장 논의는 최대한 신중히 다뤄야 하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대외 메시지를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번 일을 놓고 지나친 확대해석이나 정치적 아전인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 에너지부와 업무 협력 경험이 있다는 정부 고위직 출신 한 인사는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결정은 교류ㆍ협력 단계의 ‘사전 검토’ 강화 차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며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대처하지 않으면 실수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다만 한ㆍ미 동맹의 근간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사태 수습에 나서는 것이 요구된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 출신의 데이비드 맥스웰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부대표는 “한ㆍ미 동맹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지 않도록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해 이른 시일 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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