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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사법시험을 목표로 진학했지만, 박세일 교수(작고·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권유로 진로를 행정고시로 틀었다고 한다. 박 교수 지론은 이랬다.

“사시 패스한 사람은 사건이 벌어진 다음 뒤처리하는 일을 한다. 지금 한국에는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 후진국에서 막 벗어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게 선진국을 물려줄 것이냐 하는 과제가 여러분 어깨에 달려 있다”(2023년 1월 14일 <신동아>).

‘법을 잘 아는 경제관료’ 최상목.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법을 안 지키고, 이로 인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 대행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에서 “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 권한을 침해한 위법 행위”라고 결정했다. 18일이 흘렀다. 최 대행은 여전히 임명하지 않고 있다.

입법·행정·사법권의 분립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원리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한국 사법체계 최상위 기관인 헌재의 결정을 행정부가 거부하는 건 위헌적이며, 위법하다.

헌법재판소법 66조 2항은 “헌재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한 때,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처분은 마 후보자 임명이다.

67조 1항은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고 명시했다. ‘기속(羈束)’이란, 어떤 재량도 인정되지 않고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헌재 결정과 관련 법조문을 종합하면, 최 대행은 마 후보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일부에선 최 대행을 옹호하려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 국회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위헌성이 지적된 법조항을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국회가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는 건 잘못이다. 하지만 국회가 해당 법조항을 놔둔다 해도, 헌재가 제시한 기한이 지나면 그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마 후보자는 계속 ‘후보자’ 신분으로 남는다.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법학을 전공한 최 대행이 이를 모를리 없다. 그가 마 후보자 임명을 미루는 것은, 임명에 강력히 반대하는 국민의힘 눈치를 보기 때문일 터다. 직무정지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이 곧 선고될 수 있는 만큼 ‘뜨거운 감자’에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도 섞여 있을 터다.

마 후보자 임명이 그렇게 꺼려진다면, 다른 사안에서도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지난 14일 임시 국무회의. 최 대행은 ‘명태균 특검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며 권력분립 원칙을 언급했다. “ ‘특별검사에 대한 임명 간주 규정’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해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 자신이 국회와 헌재 권한을 침해하는 건 합헌이고, 특검법이 대통령 임명권을 침해하면 위헌인가. 이런 ‘내로남불’이 어디 있나.

같은 날 열린 치안관계장관 회의.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와 관련해 폭력 엄단 의지를 강조하며 말했다. “모든 국민이 합법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어떠한 결정에도 결과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 사회적 안정과 공동체 발전에 필수적이다.”

국민은 헌재의 ‘어떠한 결정도’ 존중·수용해야 하지만, 자신은 헌재의 ‘어떠한 결정은’ 무시하고 외면해도 된다는 말인가. 최 대행도 5100만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다. 헌법은 최 대행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헌법을 모독하지 말라.

내란수괴 윤석열이 석방돼 안온한 관저에서 김치찌개를 즐기게 된 데도 최 대행의 원죄가 크다. 그가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내란 특검이 윤석열 수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다면, 수사권이나 구속기간을 둘러싼 논란 소지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 대행은 최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외신 인터뷰 자체가 이례적인데, 내용은 더 흥미롭다. ‘대선 출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선(for now), 내 임무를 다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출마 생각이 없다면 ‘현재로선’은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 내란 특검법·명태균 특검법 거부, 마은혁 미임명 등은 모두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한 빌드업인가. 극우세력에 대한 구애인가.

점을 찍다 보면 선이 된다. 최 대행의 개별적 행위(점)들은 차례로 모여 내란 방조(선)가 되고 있다. 막무가내식 직무유기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본인만 알 일이다. 내란 공범이어선지, 자신을 중용한 윤석열에 대한 보은인지, 영혼 없는 공무원의 보신인지, 정치적 욕망인지….

최 대행이 한 총리 탄핵 기각으로 경제부총리로 돌아갈지, 한 총리 탄핵 인용으로 권한대행직을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자리에 있게 되든, 헌법을 농단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40년 전 ‘청년 최상목’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고 싶어 과감히 진로까지 바꿨다. 40년 후 최상목은 그 청년이 꿈꿨던 모습은 아닐 것 같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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