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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폰지게임' 된 국민연금
납부금보다 수령금 더 많은 국민연금
인구 증가 전제로 한 일종의 '폰지게임'
2041년 적자 전환, 2057년 완전 고갈
이대로 방치하면 세대 갈등 '기폭제'
임시방편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 나서야

편집자주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가 다양한 경제 현안을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시각을 담아 전해드리는 '이정환의 경제시대'를 연재합니다.

서울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 뉴스1


정부 추산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연금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선다고 한다. 현재 1,200조 원이 넘는 적립금 역시 2057년이면 완전히 소진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적자'란 특정 시점부터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지급액이 현재 근로자들이 납부하는 연금 보험료보다 많다는 뜻이다. 적자가 지속되면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해온 국민연금 적립금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언젠가는 고갈된다. 결국 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폰지게임' 메커니즘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원리는 단순하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젊었을 때 납부한 보험료보다 노후에 받는 연금액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금 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수익을 늘린다 해도, 현재 연금 구조 체계에서는 노후에 받아갈 연금 지급액이 너무 많다. 납부한 금액보다 수령하는 금액이 많기 때문에 결국 연금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현재 연금을 받고 있거나 곧 받을 연금 수급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자신이 납부한 금액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는 '운 좋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국민연금 운영이 '인구 폰지게임'이라는 메커니즘하에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폰지게임(Ponzi Game)은 1920년대 미국의 사기꾼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다.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의 금융 사기로, 지속 불가능한 '폭탄 돌리기' 구조를 의미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폰지게임 사례는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 사건이다. 그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저명한 인물이었으나, 총 65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94조 원)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질렀다. 그는 "매년 안정적으로 1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금을 모집했지만, 실제로는 자산 운용을 전혀 하지 않고 신규 투자자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금융사기를 저질렀다. 그는 투자금을 이용해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으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기 수법이 드러났다. 맨해튼 연방법원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할 극도로 사악한 죄질"이라며 메이도프에게 징역 150년을 선고하며 사기사건은 막을 내리게 된다.



2060년엔 월 소득 34% 연금보험료 내야



우리의 노후를 책임져주는 '따뜻한' 국민연금이 사악한 사기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일까. 젊은 시절 낸 보험료보다 노후에 연금을 더 받아갈 수 있으려면 핵심적인 조건이 있다. 바로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매년 연금 납입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연금 기금 역시 불어난다. 이전세대, 즉 과거에 연금을 납부 냈던 사람들은 현재 근로자들이 내는 연금을 쓰기만 하면 된다. 연금을 수령해야 할 사람들이 인구 증가효과에 기대 일반 투자 상식에서 벗어나는 고 수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전형적인 폰지구조다.

2008년 금융위기가 메이도프 사기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처럼, 초고령화 시대로의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연금 폰지게임'의 종말을 불러오고 있다. 미래세대 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운 좋은' 투자 성과를 유지할 수가 없다. 정부는 감옥에 갈 수 있는 사기꾼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부는 예전에 약속한 연금을 줄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미래세대는 보험료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2060년엔 월 소득의 34%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 내 월급의 3분의 1이 연금보험료로 나간다는 말이다. 출산율 저하는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인구구조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추가적인 연금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득대체율 43% 합의...미봉책 불과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야가 13일 모수개혁(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에 전격 합의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인상하고, 퇴직 전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 비율을 나타내는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금 고갈시기를 30년정도 늦출수 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 합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된다 해도 연금 고갈이라는 근본적인 측면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모수개혁은 폰지게임이라는 구조를 깨는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개혁이 아니라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위장 개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수개혁은 연금보험료 부담을 자식 세대가 아닌 손자녀 세대로 미루는 개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 같은 모수개혁은 오히려 구조적 개혁을 어렵게하는 맹점 또한 있다. 연금 개혁은 일반적으로 미래 세대(현재 가입자)를 대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 수급자들에게는 적용대상이 아니다. 기존 수급자의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개혁은 사회적 반발이 크기 때문에 미래 연금 수급자(현재 가입자들)를 대상으로 개혁이 이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연금지급 부담이 현재 가입자들에게 쏠릴 수 밖에 없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몰아주는 모수개혁의 특성 때문에 연금고갈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개혁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은 이유다.



'모수개혁'보다 시급한 건 '구조개혁'



현재 국민연금에 필요한 것은 모수개혁이 아니라 구조개혁이다. 2010년대 후반 급격한 출산율 감소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인구 변화 경로 역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10년간 주택가격 상승등으로 인해 예상보다 출산율이 더 떨어질 확률도 높은 반면, 인공지능(AI) 및 의학기술 발전이 인간 수명을 지속적으로 연장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인구 고령화가 소비위축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추락시킬 가능성도 매우 높다. 국민연금의 빠른 고갈을 촉진시키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서라도 연금의 지속 가능성, 즉 향후 안정적인 연금 지급을 위한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 구조개혁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다. 이는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재정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 지급액, 지급 연령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즉 연금 재정이 악화될 경우 미리 설정된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장치로 기존 연금 납입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보완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적정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

보다 적극적인 방식인 완전적립제 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만의 연금 계좌를 개설하고, 본인이 적립한 만큼 미래 연금을 받아가는 방식이다. 개인들이 자신만의 연금 계좌를 운영하기에 인구구조 변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실제로 기존 연금 수급자들이 받아야 하는 연금 부족분을 미래 세대 부담이 아니라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방안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을 통해 논의되고 있다.

20~30대 10명 중 7명 이상이 국민연금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설문조사가 발표되었다. 국민연금의 인구폰지게임 구조를 청년층들이 이해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신이 납부한 연금을 미래에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점차 명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년 세대에서 자신이 낸 보험료가 기존 세대의 연금 지급을 위해 소진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 역시 커지고 있다.

더욱이 연금 불안은 노후 생활 불안이다. 노후 불안은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흔들며, 청년층의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이 추락하면 연금고갈은 더 빨라지게 된다. 악순환 구조다. 구조개혁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해결도 어렵기에, 청년층의 불안감만 키우게 된다. 미봉책과 같은 모수개혁이 아닌 실질적인 구조개혁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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