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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인천 한 제철 공장에 철근이 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 경제, 안보를 포함해 전방위적인 분야에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반도체지원법(칩스법) 폐지 예고에 이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투자 압박, 관세 면세 쿼터 폐지까지 트럼프는 자국 이익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탄핵 사태 이후 정부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한국이 직격타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발 글로벌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견례는커녕 전화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한국도 직접 휘말리게 됐으나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바로잡을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시작…무역전쟁 격화


지난 3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예고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발효로 한국도 ‘관세전쟁’의 사정권에 들어섰다.

집권 1기 때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 관세를 각각 부과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알루미늄 관세율도 25%로 올리는 한편 관세 적용 대상을 철강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259개 파생제품으로까지 확대했다.

볼트, 너트, 스프링 등 166개 파생상품은 이날부터 곧바로 관세가 적용되고 범퍼, 차체, 서스펜션 등 자동차 부품과 가전 부품, 항공기 부품 등 87개 파생상품은 상무부의 추가 공고가 있을 때까지 관세 적용이 유예된다.

그동안 각국과의 합의에 따라 적용해온 예외와 관세 면제는 원칙상 전부 없앴다. 이에 따라 한국이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철강에 적용받던 기존 면세 쿼터(연간 263만 톤)는 폐기됐다. 그간 쿼터제로 관세를 피해온 철강업계는 고율관세를 적용받게 되며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로 수년간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25% 관세 발표로 대미 철강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25%의 관세를 온전히 반영하면 지난해 대미 수출액 기준 국내 철강업의 최대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비용은 8억9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철강업계는 관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 자동차 강판 등을 생산하는 대형 제철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미국에 상공정 분야 투자를 검토 중이다.

문제는 관세전쟁이 아직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오는 4월 2일에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예정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종 비관세장벽 요소까지 고려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8번째 무역수지 적자국인 한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와 반도체에도 관세를 부과하고 별도로 국가별 상호관세도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한국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기준 완화 요구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국소고기협회(NCBA)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만들어진 한국의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등을 ‘불공정 무역 관행’이라고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두협회, 북미블루베리협의회, 생명공학혁신기구(BIO), 영화협회(MPA) 등도 한국의 농축산 정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 등 다른 부문에서도 수입 규제완화 등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래스카 빙하. 사진=AP·연합뉴스


‘사업성 극악’ 알래스카 프로젝트 투자 압박


미국이 사업성 극악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동맹국(한국, 일본) 동참을 거론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미국은 알래스카 북부의 천연가스를 알래스카 남부 해안가로 나른 뒤 액화해 수출하기 위해 약 1300km 길이 가스관과 액화 터미널 등을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4일(현지 시간)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본, 한국과 다른 나라들이 각자 수조 달러의 투자를 통해 우리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해 한국의 참여를 기정사실로 했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이 사업에 한·미·일 공동 개발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아직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아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투자 비용만 약 450억 달러(64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1970년대 처음으로 논의가 시작된 후 엑손모빌·BP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참여하면서 구체화됐지만 LNG 가격 급락 등 사업성 문제로 기업이 발을 빼면서 40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수익성이 불투명한 만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참여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지만 일각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철강 관세 협상의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가스관 건설에 약 42만 톤 이상의 철강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 철강회사 생산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한국 철강업체들이 참여할 여지가 높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쇄빙선 건조, 송유관 건설 등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 사진=AFP·연합뉴스


“반도체 보조금 끔찍”…삼성·SK, 7.6조 보조금 백지화 우려


트럼프 대통령이 “끔찍하다”고 표현한 칩스법 보조금 폐지에 대한 대응도 시급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그들(반도체 기업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자하러)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투자를 유도하는 반도체법과 관련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며 반도체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반도체 보조금 폐지 가능성에 미국에 수십조원의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보조금도 안갯속에 놓이게 됐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건설에 370억 달러(약 54조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을)를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지어 2028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칩스법에 근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지급할 보조금을 각각 47억5000만 달러(약 6조9300억원), 4억5800만 달러(약 6700억원)로 확정했다. SKC 자회사 앱솔리스는 이미 가동에 들어간 조지아주 반도체 유리기판 공장에 7500만 달러의 보조금이 계약돼 있다.

반도체 보조금이 무산될 경우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 진출의 결정적인 유인이 사라진다. 국가 차원의 일원화된 통상외교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목하는 한국 조선업 경쟁력과 방산, 에너지 분야 협력 등을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과 전략 경쟁 과정에서 미국에 필요한 조선업 재건 협력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등 우리가 쥐고 있는 협상 카드를 지렛대로 삼아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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