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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기자
곧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선고다. 인용(파면)이든 기각·각하(직무복귀)든 후유증의 위기를 피해가긴 힘들 형국이다. ‘위기’를 가장 와 닿게 정의해 준 말은 “옛것은 죽어가고,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인 듯싶다. 혁명이든 탄핵이든, 선거나 개혁이든 이전의 부조리나 모순, 폐단을 없애는 것 자체야 바람직한 진화다. 하지만 그 ‘적폐’란 걸 없앤 빈터에 새로운 제도나 문화를 심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이전의 문제들은 머잖아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만다. 미래에의 희망 없이 과거의 악순환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 그게 위기다.

헌재 어떤 선택이든 위기 불가피
8년 전 ‘적폐청산’ 후유증 반추를
보복·처벌만 낳은 정치의 사법화
악순환 끊을 정치 본령 회복하길

우선 윤 대통령이 돌아올 경우. 그렇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 않고, 개헌을 하는 게 마지막 사명”이라는 자신의 최후 변론대로 신속한 조기 개헌 뒤 마무리를 하는 게 위기 극복의 길이겠다. 2년 이상 남은 임기를 온전히 수행하기엔 이미 다수 국민의 믿음은 약해졌다. 계엄 때문 만도 아니다. 그간 보여준 잦은 독선, 지혜·자질의 부족 등 그의 대통령 자격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력 떨어질 국정 추진력에 나라의 외교·경제적 손실은 큰 부담일 수밖엔 없다.

그가 파면돼 5월께 대선이 치러진들 이 위기가 저절로 해소될 리는 없다. 과거와 달라질 ‘새것’이 없는 한 말이다. 우리의 앞날이 8년 전 박근혜 탄핵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정치와 도대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위기 극복의 으뜸은 4년 중임제든 국회의 책임총리 추천제 등 제왕적 대통령제를 철폐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견제적 협치 민주주의’로의 개헌이다. 가장 유력하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란 자리보다 이 시대의 역사적 책무를 공유하는 게 가장 명예로운 정치적 업적일 터다. 새것은 없이 옛것만 누리려면 대한민국의 위기란 더욱 커져 갈 뿐이다.

동시에 반드시 없애야 할 옛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다. 『킬 빌』 『아저씨』 등 악인 응징 영화의 영웅들(우마 서먼, 원빈)에게 우린 박수를 보낸다. 마음속으론 더 통쾌한 보복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인간 본성의 원초적 충동인 복수와 응징은 정서적 유전자로 이어져 왔다”는 심리학의 분석도 있다. 갑의 횡포 등 어느 정도 사회적 부정을 노출, 억제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법이나 도의에 의해 전혀 통제되지 않는, 마구잡이 보복이다.

우리의 정치 보복 악순환이 본격화된 전기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전후 “적폐 청산” 깃발의 국정농단 특검 수사였다. 1000여 명이 조사받아, 200여 명이 구속됐다. 5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선 최악의 정변이란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처벌(처형 포함)받은 이가 239명이었다니 8년 전 보복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무리한 칼춤이었음이 드러나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시 문재인 정권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체제가 구속시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1심에서 47개 혐의 전부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47개다. 최근 구치소 문을 나선 뒤 “수감됐던 지인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그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는 당시의 ‘칼잡이 총수’ 윤 대통령의 소회가 어리둥절한 까닭이다.

애매하기만 한 직권남용으로 고소·고발된 공직자는 2018년에만 7879명. 10년 전보다 3배 이상이었다. 2020년 ‘적폐청산’ 95건의 1심 무죄율은 15.8%로 형사 사건 평균 무죄율(3.1%)의 5배를 넘어섰다. 법의 경계선을 넘나든 초법적, 아니 정치적 보복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때 세상에 뛰쳐나온 이 ‘정치 보복’이란 괴물 악마가 호리병 속에 되들어갈 기미는 여전히 없다.

모든 문제의 답은 그 원인에서부터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탄핵”의 촛불 든 국민 80%를 ‘자기 이념·진영에의 지지’로 착각했다. 역사적 오류다. 그 80%는 합리적 중도, 보수와의 ‘탄핵 대연합’이었다. 그러나 정권과 개혁을 동일시하고, 선과 악을 이분했다. 이 기회에 보수 정파를 타격하자는 운동권 권력 엘리트들에, 출세 지향의 정치 검사들이 가세한 난(亂)이었다. 모든 보복이란 대화가 사라진 뒤부터다. 정치가 대화·타협의 본령을 잃자 자신들이 관련된 모든 문제를 사법으로 몰고 갔다. 남는 건 그 법원·검찰에 압박을 가할 장외투쟁, 탄핵·소송과 처벌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안의 재판관이 되는 걸 허용 않는 게 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요건”(제임스 해밀턴)이란 미국 민주주의 국부들의 선언과도 거꾸로였다.

탄핵이든, 복귀든 이 지긋지긋한 정치 보복의 굿판만은 그만두자. 꼭 만들 ‘새것’ 중 하나가 이 보복의 근절이다. 정답을 남긴 이는 지역차별·색깔론 핍박에 가장 고통받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당한 자가 힘 가져 보복한들 죽은 자가 살아나며, 쓰라린 상처가 다시 아무는가. 그저 용서하자는 무원칙이 아니다. 진정한 한풀이는 그 한을 맺히게 한 ‘좌절된 민주주의’ 같은 오랜 소망을 끝내 성취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의 그 소망은 과연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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