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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준공 후 미분양’ 전국 시군구 중 1위
“세 놓아도 올 사람 없는데”
저가 전세 양산땐 ‘악성 도미노’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미랑 기자


“그 아파트는 건물 위로 비행기가 계속 지나요. 답이 없는 곳이에요.”

지난 11일 대구시 동구의 A 아파트. 낡은 주택과 빌라 사이에 1개 동(142가구)으로 우뚝 선 이 아파트의 1층 분양 상담실은 텅 비어 문도 잠겨 있었다. 2023년 11월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썰렁하다.

근처를 둘러보는 동안 끊임 없이 비행기 소음이 들렸다.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사장에게 ‘LH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전세로 내놓는다는데, 이곳에도 수요가 있을까’ 물으니 “세를 놓아도 안 나갈텐데”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길 건너 혁신도시 부지에 들어선 ‘안심뉴타운’ 아파트도 미분양이 남았다고 했다.

지난달 정부가 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전국의 ‘악성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사들이는 정책을 발표한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 비율이 12.45%로 전국 시·군·구 중에서 가장 높다는 대구를 찾았다. 대구 시내 대로변 어디서나 신축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나 아파트 공사현장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택시기사 A씨는 “주식도 안돼. 장사도 안되는데 저런 비싼 아파트가 잘 팔릴 리가 없다”며 “대구는 미분양이 천지삐까리”라고 했다.



대구시 수성구 파동의 B아파트 분양 상담소. 법이산을 등지고 들어선 이 아파트 단지는 총 755가구로, 2022년 분양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다 팔리지 않았다. 분양가 약 4억8000만원의 74㎡ 아파트를 현재 4억2000만원 정도에 내놓고 있다. 수성구 ‘변두리’로 불리다 2020년 이후 대규모 개발이 이뤄진 이 구역엔 새 아파트가 넘쳐 난다. 2028년까지 70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곳 분양 상담소 관계자는 “지금 계약하시면 12월까지 잔금 연장해 드려요. 현금으로 1700만원 지원하고 2년 후에 집값이 현재 구매가보다 싸면 건설사가 다시 사 들일 겁니다”라고 했다.

같은 대구라도 ‘대구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수성구 범어동에선 미분양이 나도 곧 해소된다. 그러나 경기가 좋던 시절 외곽에 무리하게 계획한 대단지 아파트는 오랜 할인 분양에도 집이 남아 돈다.

동대구IC 인근의 1313가구 대단지인 C아파트도 그중 하나다. 주변에 여기 말고는 아파트가 없다. 2023년 10월 입주를 시작해 지금은 단지 내에 제법 활기가 돈다. 하지만 상가 자리인 아파트 1층은 여전히 ‘할인분양’ 현수막을 내건 분양상담소 차지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 안내문이 붙어 있다. 최미랑 기자


분양 상담소 관계자는 “K2 공항이 이전하면 값이 크게 뛸 것”이라며 ‘호재’를 언급했다. 현금지원 등으로 분양가를 약 14% 할인해 주고, 준공 후 미분양이라 구매 시 1주택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 목적의 구매시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아파트 주변에는 생활 주요 시설이 거의 들어서지 않았다. 장보기와 등하교 등을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악성 비분양 아파트를 사들이기는 하지만 결국 문제는 어느 지역의 어떤 아파트를 사들이냐로 귀결된다. 입지가 좋은 아파트는 가격 협상이 쉽지 않고, ‘비행기 소음’ 들리는 등 수요도 없는 곳에서 아파트를 매입했다간 ‘악성 떠안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장은 16일 “정부의 매입 가격은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하나의 ‘잣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정부가 저가에 매입한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으면 주변 소형 아파트나 빌라 전세가가 떨어지는 연쇄 작용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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