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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금융 피해' 5년간 계속 증가세
尹 "척결" 공언 뒤에도 달라지지 않아
단기간 소액 대출 뒤 추심 협박 행태
실형 30%… 집행유예·벌금형 대다수
2023년 11월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불법사금융 피해가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 뒤 불법사금융 척결을 공언하는 등 '악덕 추심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고리대금업자들은 감시망을 피해 더 교묘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있다.

"얼굴은 괜찮은데 먹튀" 악랄한 추심 수법



16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불법사금융 피해 관련 신고 상담 현황'을 살펴보면, 피해 건수는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2022년 1만913건 △2023년 1만3,751건 △2024년 1만5,39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도 92명에게 최고 연 2,000%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받아 챙긴 불법 대부업자 5명이 대구 북부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엔 253명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3개월 동안 너의 고름을 짜주겠다"며 협박 문자를 보낸 혐의로 대부업자 2명이 구속기소됐다. 같은 달 3,649명을 상대로 48억 원의 수익을 올린 불법 대부업자들도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대출금을 잘 갚는 채무자에게는 상환 능력이 고갈될 때까지 재대출을 권유하고, 돈을 갚지 못하면 다른 대부업체에 빌려 갚으라고 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대출을 강요했다.

고리업자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제도권 금융기관에선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소득·저신용 계층이다. 한국일보가 2024년 1월부터 올해 3월 14일까지 대부업법 및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90건을 살펴보니 이런 점을 악용해 불법 추심과 협박을 일삼는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원의 한 불법사금융 조직원 15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대출 희망자에게 전화를 걸어 10만~50만 원 소액 대출을 유도했다. 상환 기한은 무조건 일주일로 잡고, 오전 10시가 넘어가면 연체료를 시간당 10만~20만 원으로 책정했다. 돈을 갚지 못하면 미리 받아둔 가족과 지인 연락처를 이용해 채무자에게 "오늘 돼지 야무지게 잡자. 단톡 기대해. 니 애미 찾아가줄게"라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았다. 부산의 한 불법 고리업자는 2019년 6월 피해자에게 180만 원을 빌려주고 나흘 뒤 3,220만 원(연이율 16만3,236%)을 이자로 받아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적잖았다. 2023년 전남 나주의 한 대부업자는 A(17)군에게 100만 원을 빌려준 뒤 상환 기한을 7일로 잡아 120만 원(연이율 1,460%)을 돌려받았다. 이 대부업자는 돈을 못 갚은 채무자 B(19)군을 자신의 주거지로 불러 피해자 손톱에 드라이버를 갖다 대며 위협했다. 또 다른 고리업자는 2023년 7월 30대 여성에게 20만 원을 대출해준 뒤 상환 기한을 늘려주겠다며 나체 사진을 받고 피해자 가족에게 "돈 빌려달라고 이런 짓까지 하네요"라는 글과 함께 해당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 국적의 미등록 외국인(불법 체류자)이 자국민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일당 2명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베트남어로 "자매들아 급한 할부 금융 필요하면 연락주세요"라는 광고글을 게시해 총 76명에게 10억 원 상당을 불법으로 빌려줬다. 돈을 갚지 않으면 SNS에 "얼굴은 괜찮은데 먹튀"라는 글과 함께 피해자의 얼굴, 페이스북 프로필 등을 올렸다.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행동 강령을 만든 조직도 있었다. 2023년까지 의정부에서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한 총책은 조직원들에게 '가명 사용' '경찰 조사 시작 시 사무실 이사' '사무실로 배달음식 자제' 등을 지시했다.

피해자 중심 대책 마련해야



그러나 추심 수법이 매우 악질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벌 수위가 높지 않았다. 판결문 90건을 분석해보니 실형은 27건(30%)에 불과했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44건(48.9%)으로 절반 가까이 됐고, 나머지 19건(21.1.%)은 벌금형에 그쳤다.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변호사는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등의 기본 형량 자체가 낮게 설정돼 있다"며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벌에 앞서 사회적 약자가 불법사금융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시장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저신용자들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복 우려 탓에 고립되는 피해자가 많은 만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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