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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외쳐온 한국 정부의 처지가 궁색해졌다. 정부가 국내 핵무장론 확산을 방관하거나 조장하면서 한·미 동맹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핵 비확산’ 기조를 분명히 하며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미국 에너지부의 SCL에 등재된 25개 국가 면면을 보면 한국의 SCL 포함은 충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한국은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로 분류돼있지만 SCL 전체로 보면 ‘테러리스트 국가’로 규정된 북한과 같은 목록에 포함됐다. 핵 미보유국으로서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는 동맹국 중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목록에 들어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워 온 한·미 동맹 성과도 SCL 포함으로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냉전’ 정세에서 중국·러시아와 거리를 두는 리스크를 감내하며 미국과 초밀착해 한·미·일 군사협력에 가담했지만 미국의 조치는 냉정했던 셈이다.

미국의 SCL 포함 조치의 배경으로는 한국의 ‘핵무장론’ 확산이 주요하게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북핵 상황 악화를 전제로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이후 미국은 그해 4월 ‘워싱턴 선언’으로 확장억제를 약속하며 윤 대통령에게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을 재확인받았다. 이는 한국 내 핵무장론에 편승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로 해석됐지만 한국 정부는 핵 비확산 신뢰를 심어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들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이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당시 “그것(핵무장)도 모든 가능성 중 하나”라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핵무장 관련 질문에 미국 동의를 전제하면서도 “‘오프 더 테이블(off the table·논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기자와 통화에서 “미국은 워싱턴선언을 할 때 한국의 보수 정부가 보수 진영 내 핵무장론을 잠재우길 바랐지만 한국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며 “미국 조야에서 이를 우려하다가 반응하기 시작한 게 이번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지정”이라고 말했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 회장도 통화에서 “한국 내부의 핵무장 논란을 방만하게 방치한 한국 정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일 언론 보도로 ‘민감국가’ 지정이 알려지기 전까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외교력 한계를 노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위 의원은 “미국에서 한국 핵무장론에 대한 견제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건 예측 가능한데 이를 소홀히했다”며 “핵무장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기에 사후 대처도 안이했다”고 말했다. 미 에너지부에서 내밀하게 결정된 사안인 만큼 한국 정부의 신속한 파악이 어려웠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다음 달 15일 발효를 앞두고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면서 “한·미 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 핵 비확산에 대한 양국 신뢰를 회복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통화에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핵무장론이 나오는데 외교부가 ‘핵무장 의도와 계획이 없다’고 말하면 미국이 믿겠나”라며 “확장억제를 우선시하고 핵무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국회 차원의 결의안이라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발생한 불안정성을 관리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교섭할 역량을 정비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통화에서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으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나오는 핵무장론이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여론을 환기하며 합의된 의견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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