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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총리 미홀 마틴과 그의 아내 메리 오셰이가 12일 미국 워싱턴 디시(D.C.) 백악관에서 열린 성 패트릭의 날 리셉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통적인 샴록 볼을 전달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지난 1년여 사이 미국·독일·프랑스·한국처럼 민주주의가 안착됐다고 여겨졌던 나라들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개월 남짓,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트럼프라는 특이한 성격의 정치인 한명이 변덕을 부리는 문제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됐던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심각한 상황이다.

2차 대전 뒤 이른바 선진국들은 제각각 전쟁을 되돌아보며 민주주의 재구축에 힘써 왔다. 일본이나 독일 같은 패전국은 침략 전쟁을 반성하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뼈대로 전후 체제를 갖췄다. 민주주의 옹호자로 파시즘을 타도한 미국은 전후 폐허에서 각국의 부흥을 도왔다. 물론 미국이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무의미한 전쟁을 벌여 막대한 희생을 낸 게 사실이다. 그 어리석었던 행동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세계 질서의 토대를 제공한 것 역시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지난달 28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충격이었다. 러시아를 패퇴시키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타협을 통해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에 밀착하자 유럽 국가들은 당황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굴복시킨다 해도 그런 평화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다음은 우리가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다. 유럽연합(EU) 유일의 핵보유국인 프랑스가 ‘유럽에 핵우산을 통한 확장 억제’를 언급한 만큼 긴장감은 더 높아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주권과 영토 존중’이라는 국제사회 규칙 대신 ‘힘이 전부’라는 태도를 공유하면 전세계는 야만적으로 퇴행할 것이다. 시행착오 속에서도 핵 군축을 진행해온 인류의 발걸음을 되돌리면, 21세기 전반을 사는 우리는 인류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된다.

일본과 한국에도 유럽의 혼란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일본 안에는 대부분 정치가와 국민 사이에 미국과 군사 동맹으로 안보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는 흥미로운 거래가 있다. 우리(미국)는 일본을 지켜야 하지만, 일본은 우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거래의 내용이다. 게다가 일본은 경제적으로 우리와 거래하며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 분야와) 다른 얘기지만, 우리는 일본을 지키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일본은 우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일-미 안보체제를 해소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켜지던 암묵적 합의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뒤, 상대를 당황하게 해 최대한 양보를 끌어내는 게 ‘트럼프 방식’이다. 이제부터 일본을 향해 국방비 증액, 결국 미국산 값비싼 무기를 더 많이 사라는 요구를 할 것이다. 보편적 가치 대신 단순히 자국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동맹을 대하는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정부 관료나 학자들에게도 정답은 없다. 일본으로선 처음 겪는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무엇보다 ‘미국만 따라가면 괜찮을 것’이라는 ‘사고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여러 시나리오를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가능한 것은 중국과 대화를 넓혀 공통 과제를 해결하는 ‘협력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이 나 홀로 미국과 상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연계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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