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임경수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사진 정읍시


월급 300만원 ‘시골 의사’ 선택
“건방지게 ‘내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왔는데 외려 제가 치유받는 느낌입니다. (환자들이) 너무 고마워하세요.”

국내 응급의료계의 거목(巨木)으로 불리는 임경수(68) 전북 정읍 고부보건지소장의 말이다. 임 소장은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80대 어르신이 오셔서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하면서 ‘3년 동안 (보건지소에) 의사가 없다가 왔는데, 소장님 제발 건강하셔야 돼요’라며 당신마저 가버리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눈빛으로 말씀하시는데 울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소장은 “돈이 많을 때는 행복한 줄 몰랐는데, 돈이 제일 없을 때 제일 행복하니 인생사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 토박이인 임 소장은 강남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초대 과장을 지낸 고 이한식 전 연세대 의대 교수 등과 함께 대한응급의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응급의료법과 응급의료기금을 만들고, 대한재난의학회·대한외상학회 설립에도 관여했다.

정읍시에 따르면 임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33년간 재직하다 2022년 1월 정읍아산병원장으로 일한 뒤 지난해 9월 퇴직했다. 이후 두 달 뒤인 11월 고부면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연봉 4300만원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기는 2년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 연봉 4~5억원을 받을 수 있는 그가 300만원 남짓 월급을 받는 ‘시골 의사’가 된 까닭은 뭘까. 임 소장은 “요새 의료 사태 때문에 필수 의료에만 눈이 쏠려 있는데, 당뇨·고혈압·고지혈증과 흡연·비만만 잘 관리해도 중증 환자 발생률이 확 떨어진다”며 “정읍시 면적(693㎢)은 서울시의 1.2배인데 인구는 10만명이다. 지역은 굉장히 넓은데 의사와 보건지소는 드물어 장애인 발생률이 전국 평균 2배다. 그런데도 누구도 조언해 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방에 남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하나 생기면 의료 비용은 4~7배 늘어나 가족 전체의 삶은 망가지고, 세금 낼 사람이 외려 국가에서 돈을 받아야 한다”며 “만성 질환만 잘 관리하면 필수 의료비와 의료 인력을 지금보다 5분의 1 내지 10분의 1로 줄여도 된다”고 했다.

임경수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사진 임 소장


“정부가 ‘시니어 닥터’ 제도 검토해야”
임 소장은 현재 보건지소 2층에 있는 16.5㎡(5평)짜리 옥탑방에 혼자 산다. 다시 일하게 되면서 매달 450만원씩 나오던 사학연금은 끊겼다고 한다. 한 달에 두세 차례 서울 집에 갈 때마다 아내가 임 소장에게 “미쳤다. 왜 당신이 선봉에 서냐”고 나무라는 이유다. “나이도 많고 돈도 모자란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면서다.

임 소장이 보건지소에 처음 부임했을 땐 하루에 환자가 한두 명가량 왔다고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평균 15명이 온다. 관절염부터 고혈압·당뇨·소화장애까지 다양하다.

임 소장은 “서울아산병원은 (의료 수준이) 세계 톱인데, 정읍에 오니 우리나라 수준이 이렇게 미개할 줄 몰랐다. 거의 아프리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정읍에 보건지소가 15개 있는데, 의사 6명이 모두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온 공중보건의다. 의료 경험이 짧은 데다 엑스(X) 레이 등 장비도 부족해 자기 경험과 청진기로 진단을 내리고 투약한다”고 전했다. 그는 “정읍은 고령 인구가 40%”라며 “약국이나 병원에 한 번 가려면 왕복 택시비만 4만원 가까이 나오고 버스는 1시간에 한 대씩 있다. 그러니 아파도 돈이 아까워 병원에 안 간다”고 했다.

임 소장은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나 국회에 쫓아다니며 (65세 이상) ‘시니어 닥터’가 의료 취약 지역에서 일할 수 있고, 다시 취업하더라도 사학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달라고 얘기하는데 효과가 없다”며 “공중보건의 월급이라도 받으면 (지방에서) 일하겠다는 의사가 많은데 연금을 안 주니 누가 하겠냐”고 했다. 그는 이어 “시니어 닥터들이 귀촌 생활도 하고 지역사회 공헌도 하면서 비수도권에 있는 힘 없고 늙은 분들이 수도권과 비슷하게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945 커피 쏟아져 화상‥"스타벅스 727억 원 배상" 랭크뉴스 2025.03.17
44944 트럼프, 인터뷰 중 마이크에 얼굴 '퍽'…4초간 노려본 뒤 한 말 랭크뉴스 2025.03.17
44943 대체거래소 거래종목 110개로 확대…이마트·LG생활건강 등 추가 랭크뉴스 2025.03.17
44942 한미 '원전동맹'도 균열‥장관들 '뒷북' 미국행 랭크뉴스 2025.03.17
44941 [최훈 칼럼] 탄핵이든 복귀든 ‘정치 보복’ 굿판은 그만두자 랭크뉴스 2025.03.17
44940 중국산 콩으로 만든 콩나물…한국서 재배했으니 ‘국내산’? [잇슈 키워드] 랭크뉴스 2025.03.17
44939 규제 넘는 은행들, 알뜰폰·배달앱에 이어 민간 주택연금까지 랭크뉴스 2025.03.17
44938 “암 투병 자식 먹이려고”…마트서 소고기 훔친 엄마 [잇슈 키워드] 랭크뉴스 2025.03.17
44937 "1억짜리 팔찌 팔아요"…샤넬도 인정한 명품주얼리 성지는 랭크뉴스 2025.03.17
44936 까맣게 모른 외교부, 뒤늦게 허둥지둥 랭크뉴스 2025.03.17
44935 12·3 내란으로 드러난 한국 극우…“국힘에 상당 기간 영향력 행사” 랭크뉴스 2025.03.17
44934 “근무시간 더 줄여야 한다” 여성·30대·사원급일수록 노동시간 단축 선호 랭크뉴스 2025.03.17
44933 독일서 1년에 13억개 팔리는 '되너 케밥', 때아닌 원조 논쟁… 무슨 일? 랭크뉴스 2025.03.17
44932 백악관, 이란 핵시설 공격 가능성 묻자 “모든 선택지 고려” 랭크뉴스 2025.03.17
44931 [르포] "푸틴이 휴전 수용? 기대도 안 해... 트럼프 모욕 서러워" 랭크뉴스 2025.03.17
44930 "없는 돈에 애 한약까지 먹였어요" 눈썹숍 사장님 육아전쟁 22개월 [2025 자영업 리포트] 랭크뉴스 2025.03.17
44929 김새론 유족, 유튜버 이진호 명예훼손 고소 "김수현과 교제 자작극 아니다" 랭크뉴스 2025.03.17
44928 채솟값 너무 오르니 “중국산도 국산인 척” [취재후] 랭크뉴스 2025.03.17
44927 [단독]‘인간 병기’ HID 요원들도 “이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계엄의 밤,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선 무슨 일이? 랭크뉴스 2025.03.17
44926 수세 몰린 韓 OLED TV… 中 이어 日 소니도 ‘RGB LED TV’ 총력 랭크뉴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