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 정읍아산병원장, 무연고 정읍에 남아 주 4일 근무

"인술 베풀며 여생 보내겠다…공중보건시스템 개선이 목표"


임경수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읍=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열악한 환경에 놓인 환자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서 이렇게 눌러앉게 됐네요."

한국 응급의료계 거장 임경수 전 정읍아산병원장은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장으로 일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임 소장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국내 명의 중의 명의로 손꼽히는 의사다. 임 소장은 1994년 박윤형 전 순천향대 석좌교수와 함께 응급의료법 제정에 앞서 법 초안을 작성하는 등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계를 이끌어 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생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전북 정읍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주 작은 인연에서 시작됐다.

임 소장은 2022년 1월 처음 정읍에 내려왔다. 33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하고, 정읍아산병원장으로 부임한 것이 인연이 됐다.

평생을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병원에서 근무했던 그가 마주한 지방 농촌지역의 의료 현실은 '참혹'했다.

임 소장은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열악했다. 전국 장애인 발생률이 5.1∼5.6%인데 정읍의 장애인 발생률은 10%에 달했다"며 "주된 원인은 의료시설과 의료진 부족, 또 그로 인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관리 소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읍의 면적이 서울시의 1.2배 정도 된다. 그런데 인구는 10만명 안팎이다. 의료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병원에 진료 한번 가려면 송파구에서 명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꼴"이라며 "이런 상황이니 환자들이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고, 질병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중증 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특강하는 임경수 소장
[정읍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임 소장은 지난해 9월 정읍아산병원장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만인 11월 고부면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결정에 주변인과 가족 모두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응급의료계에서 임 소장 정도의 경력이 있는 의사라면 연봉 4억∼5억은 족히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월급 300만원도 되지 않는 공중보건의의 길을 택했다.

임 소장은 "사실 모두가 말렸다. 공중보건의가 되고 보니 받고 있던 사학연금도 끊기고, 보건지소 옥탑에 있는 5평짜리 방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그런데도 나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고도 없는 정읍에서 이렇게 공중보건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월∼목요일 나흘은 정읍에 머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본다. 또 틈틈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고부면 내 44개 마을을 돌며 특강을 하기도 한다.

임 소장은 공중보건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자신과 같은 시니어 의사들이 공중보건의로 지방에 내려와 봉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막상 근무해보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어떤 의사도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단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 사학연금이 끊기는 사학연금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고, 시니어 의사를 공중보건의로 채용할 수 있는 관련법 개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지자체에서는 공중보건의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앞으로 공중보건시스템을 개선해 농촌지역 장애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주변에 퇴직한 시니어 의사 중 5∼10%는 귀촌을 해서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 다만 임금이나 거주환경 같은 현실적인 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부처가 관련 방안을 마련하도록 적극적으로 의견도 개진하고, 법 개정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5101 [속보] 경찰, 김성훈 4번째 구속영장 오늘 중 신청 랭크뉴스 2025.03.17
45100 트럼프가 꿈꾸는 새로운 국제 질서...'이것'의 미래 바꾼다 랭크뉴스 2025.03.17
45099 서울의대 교수들 "내가 알던 제자 맞나, 오만하기 그지없다" 랭크뉴스 2025.03.17
45098 민주, ‘명태균 게이트’ 국정조사 검토… “검찰에 수사 맡길 수 없어” 랭크뉴스 2025.03.17
45097 이명박 전 대통령, 안철수 만나 “헌재, 한덕수 총리 탄핵 먼저 판결해야” 랭크뉴스 2025.03.17
45096 이시영, 결혼 8년 만에 파경…"이혼 절차 진행 중" 랭크뉴스 2025.03.17
45095 제주서 무면허로 역주행 사고…도주한 20대 잡고보니 '난민' 랭크뉴스 2025.03.17
45094 정권교체 55% 연장 40%…'尹석방 프리미엄' 열흘 만에 끝? 랭크뉴스 2025.03.17
45093 홈플러스 임대료 못 내고 있는데… 부동산 펀드에 묶인 돈 2300억 랭크뉴스 2025.03.17
45092 ‘서부지법 난입’ 피고인들 “강제로 안 들어갔다···대통령에게 미안한 마음” 랭크뉴스 2025.03.17
45091 이러다 진짜 '코리아 패싱'…"정치권, 설익은 핵무장론 자중해야" [view] 랭크뉴스 2025.03.17
45090 경찰, 김성훈 경호처 차장 4번째 구속영장 신청 예정 랭크뉴스 2025.03.17
45089 “김새론 ‘살려달라’ 문자에 2차 내용증명 보내” 유족 회견 랭크뉴스 2025.03.17
45088 최상목, 국민의힘 대선 후보 꿈꾸나 [김민아 칼럼] 랭크뉴스 2025.03.17
45087 정권교체 55% 연장 40%…열흘 만에 옅어진 '尹석방 프리미엄' 랭크뉴스 2025.03.17
45086 故 휘성 유족, 조의금 전액 기부…“기억해주셔서 감사” 랭크뉴스 2025.03.17
45085 "6세가 'hagwon' 가는 나라서 애 낳을 리가"... 韓 영유아 사교육 광풍, 외신도 경악 랭크뉴스 2025.03.17
45084 뜨거운 커피에 화상 입은 손님…“스타벅스, 727억 원 배상” [잇슈 키워드] 랭크뉴스 2025.03.17
45083 '尹 친구' 김용빈 "부정선거 문제라면 먼저 물어보지, 계엄군 선관위 진입에 참담" [인터뷰] 랭크뉴스 2025.03.17
45082 법원 명령 불구…베네수인 수백명 미국서 엘살바도르로 추방 랭크뉴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