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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부터 쌀 부족 현상…값 크게 오르자 정부 비축미 풀기로
지난해 9월 7일 일본 오카야마현 가미모미 마을에서 농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수확한 벼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주간경향] 일본에서 쌀이 똑 떨어졌다. 생산량은 늘었으나 시장에 나온 쌀이 줄어드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 쌀값은 1년 만에 70% 넘게 치솟았다. 쌀 수출 대국에서 일어난 이례적 품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레이와(나루히토 현 일왕의 연호)의 쌀 소동’이라고 이름 붙여진 초유의 사태에 일본 정부는 뒤늦게 비축미를 풀기로 했다. 재난·재해가 닥친 긴급상황 이외에 비축미를 방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쌀 20만t 실종 사건

주식인 쌀이 부족해지자 일본 시민들의 생활 양식은 바뀌었다. 일본 방송과 유튜브에는 ‘도시락값 아끼는 방법’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다. 유명 패밀리레스토랑 제니즈는 지난해 12월부터 공깃밥 한 그릇 가격을 209엔(약 2050원)에서 253엔(약 2490원)으로 올렸고, ‘밥 무료 추가’ 서비스를 없앴다. 도쿄에 있는 한 라멘 가게는 3월 6일부터 공깃밥 가격을 크기별로 받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은 쌀 부족 현상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5㎏에 2500엔(약 2만4628원) 정도였던 쌀 소매가격은 지난해 여름쯤부터 3000엔(약 2만9400원)대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2023년 추수한 쌀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집계한 2023년 쌀 생산량은 662만4000t으로, 전년(670만1000t)보다 7만7000t 줄었다. 2024년 7월 말 쌀 재고는 전년 동기보다 40만t 적은 82만t으로 집계됐다.

“비축미를 방출하지 않은 결정엔 잘못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사카모토 테츠시 당시 농림수산상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여름, 정부 비축미를 시장에 방출하자는 여론의 압박에도 농림수산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9~10월 벼 수확 시기가 다가오면 쌀 유통이 안정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카모토 농수상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햅쌀이 풀려도 쌀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은 점점 올랐다. 쌀 5㎏ 평균 소매가격은 2024년 11월 3445엔(약 3만3861원)으로 뛰더니 이듬해 1월 3628엔(약 3만5780원)으로 더 올랐다. 1월 가격은 전년 같은 달(2030엔·약 2만20원)보다 78% 높아진 수치다.

이는 시장에 풀린 쌀이 줄어든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농업협동조합(JA)이 집계한 쌀 집하량은 215만7000t으로 2023년보다 20만6000t 줄었다.

쌀 집하량이 줄어든 이유는 불명확하다. 역설적이게도 2024년 쌀 생산량은 679만2000t으로 전년보다 9만1000t(2.7%) 늘었다. 생산량은 늘었는데 시장에 나온 쌀이 줄어든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쌀이 시장에서 행방불명된 이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관광객 증가에 따라 쌀 소비량이 많아져서’, ‘난카이 대지진을 우려한 사람들의 사재기’,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은 쌀 직거래가 증가해서’ 등 근거가 약한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유통업자가 매점매석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왔으나, 통계로 입증된 사실은 없다.

결국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13일, 정부 비축미 20여만t을 풀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15만t을 먼저 방출하고, 이후 유통 상황을 조사해 구체적 추가 방출량을 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3월 10일 비축미 입찰을 시작했고, 쌀은 3월 말이 돼서야 마트에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14일 일본 도쿄에 있는 쌀 가게 매대에 쌀 포대가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농업 정책 손 뗀 일본 정부, 이번 사태 초래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카모토 농수상의 안일한 태도가 보여줬듯이, 농림수산성은 지난해 비축미 반출을 피했다. 유통업자들에게 재고분을 풀라고 촉구했을 뿐이다. 에토 다쿠 농림수산대신은 지난 1월에도 “농림수산성은 솔직히 새 쌀이 나오면 시장이 진정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농산물 생산량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농림수산성 관료 출신인 와타나베 요시아키 니가타식량농업대 명예학장은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주간문춘)’에서 “과거 수만명에 이르던 쌀 통계조사원이 예산 등 문제로 숫자가 줄어 현재 매우 작은 표본으로 전체 쌀 생산량을 추측하고 있다”며 “쌀 생산량과 유통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쌀 수급 관리를 점차 민간 시장에 맡기면서 가격 통제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던 일본은 원래 쌀 시장을 강하게 통제했다. 1942년 식량관리법을 제정해 쌀 생산, 집하, 배급량을 사실상 정부가 모두 계획했다. 생산이 과해지자 1971년에는 정부가 논 면적을 정하고, 이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한 이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감반제도를 도입했다.

쌀 수요가 줄고 외국과 무역협정을 하나둘씩 체결하면서 일본은 점차 쌀 관리에서 손을 놓았다. 식량관리법은 1995년 폐지했다. 2018년 감반제도도 없애면서 쌀 생산 계획은 중앙정부가 아닌 각 지자체가 농가와 협의해 결정하기 시작했다. 변동직불금(목표 가격 미달 시 차액 일부 지급)과 고정직불금(재배 면적당 주는 보조금)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농업이 ‘각자도생’ 기조로 접어들면서 농민 조직력도 약해졌다. 이는 생산자·정부보다 유통업체가 물건 가격을 정할 권한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케이신문은 과거 식량관리제도 시대에 쌀 전체 생산분 중 JA가 집하한 비율은 약 90%에 달했지만, 유통망이 다양화된 현재 50% 정도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장기적으로 쌀이 귀한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후위기, 농업인구 감소로 생산량 자체가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레이와 쌀 소동’은 남의 일이 아니다. 쌀농사의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점은 한국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오르는 농자잿값, 변덕스러운 날씨, 불쑥 나타나는 해충, 농촌을 떠나는 젊은이 등 캄캄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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