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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동해사업장(왼쪽 사진)과 대한전선 당진사업장 전경. 각 사 제공


국내 전선업계 1, 2위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특허 침해 소송이 5년7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전력 인프라 수요 증가로 국내 전선업계도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타 호재인데 두 기업은 왜이리 오래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지난 13일 특허법원 제24부(부장판사 우성엽)에서는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특허침해 항소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의 청구 소송 2심 재판에서 LS전선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피고 대한전선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대부분 유지하면서도 대한전선이 LS전선에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 규모를 15억원으로 상향했습니다. 또 대한전선의 본점, 사업소, 영업소 등에서 보관 중인 이 사건과 관련한 완제품과 반제품을 폐기하도록 했습니다.

이 소송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LS전선은 자사 하청업체 A사에서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직원이 2011년 대한전선으로 이직한 후 대한전선이 유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2019년 8월 대한전선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습니다.

2022년 9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LS전선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 41억원 중 4억9623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LS전선은 배상액이 적다는 이유로, 대한전선은 특허를 침해한 적이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대한전선은 자사의 버스덕트용 조인트 키트가 LS전선 제품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미국과 일본 등의 선행발명을 참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버스덕트는 긴 상자처럼 생긴 금속 케이스 안에 전도체를 넣어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신개념 배선 시스템입니다. 조인트 키트는 이 버스덕트들을 연결해주는 부품이고요. 버스덕트는 조립식으로 설치하기 때문에 전선보다 설치와 이동이 간편하고 전력 사용량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화재와 외부충격 등에 강해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공간에서 버스덕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LS전선의 미국 자회사 LS그린링크의 미국 버지니아주 공장 조감도. LS전선 제공


LS전선은 2심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LS전선의 기술력과 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임직원들이 수십 년간 노력과 헌신으로 개발한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해 기술 탈취 및 침해 행위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대한전선은 “특허법의 과제해결원리와 작용효과의 동일성 등에 대한 판단 및 손해배상액의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 향후 판결문을 면밀하게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다른 형태의 조인트 키트를 사용하고 있어 이번 판결이 버스덕트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두 기업은 버스덕트용 조인트 키트의 특허 침해 소송 외에도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기술 유출, 기아 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등을 둘러싸고도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해 7월부터 LS전선의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1~4동)의 건축 설계를 전담한 설계업체와 대한전선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축설계 업체가 대한전선으로부터 설계물량을 받기 위해 LS전선의 공장구조와 설비배치 등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공장의 레이아웃은 해외 설비업체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적인 기술 사항이 아니다”라며 “기술 탈취 목적으로 경쟁사의 레이아웃과 도면을 확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두 기업은 지난 2018년 9월 기아 화성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를 둘러싼 책임 소재를 두고도 갈등 중입니다. 당시 약 5일간 정전으로 차량 생산설비 가동이 중단되고 약 182억원의 손해를 입은 기아는 2019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송전선로 시공을 맡은 LS전선과 엠파워, 전선 공급 업체인 대한전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LS전선의 단독 책임이라고 판단했지만 LS전선은 대한전선 등과 공동 책임을 주장하며 상고한 상태입니다.

미국에서 케이블 포설작업하는 대한전선. 대한전선 제공


견제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전선의 모회사인 호반그룹은 지난 12일 LS전선의 모회사인 ㈜LS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호반그룹의 ㈜LS 지분 매입을 LS전선 견제 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기업의 회계장부 등을 열람할 수 있고 주주제안 등 경영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 간 법적 분쟁 이면에는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케이블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있습니다. 매출 측면에서는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앞섰지만 대한전선이 지난 2021년 호반그룹에 인수된 이후 빠르게 추격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빠른 발전과 함께 데이터센터, 노후 전력망 교체 등 전력 인프라 확충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변압기와 전선 등 K전기 설비 수출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파이를 좀 더 많이 차지하려는 양사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LS전선과 대한전선은 해외 시장 확장 및 수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LS전선은 오는 4월 미국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시에 미국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을 착공합니다. 지난해 8월 멕시코 중부 케레타로주 코레이도라 산업단지에 착공한 버스덕트와 전기차 배터리 부품을 생산할 두 개 신규 공장은 올해 완공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미국에서만 약 7300억원의 신규 수주를 달성했습니다. 영국, 스웨덴 등 유럽 시장에 이어 싱가포르에서도 800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지난해 사상 최고치인 3조7000억원에 달하는 신규 수주를 기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전선업계 호황기에 두 기업의 계속되는 법적 공방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과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하루빨리 법적 분쟁을 해결하고 기술 혁신과 글로벌 시장 확대에 주력해 한국 전선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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