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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과 공허로 자식의 독립 방해
죄책감 시달리는 아들, 배반과 달라
‘어머니 감정’과 거리 둘 수 있어야
마음돌봄, MZ가 MZ에게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벗어나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리는 과제가 대두된다. 이 과정에서 내면화된 부모와 내적 갈등이 생긴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고부 갈등에 끼여 있는 남편입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이름 있는 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아들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시니 아내를 데려왔을 때 성에 안 차 하셨습니다. 무시하고 유세 부리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처가 어른들께도 무례하게 구셨습니다. 똑같이 일하고 돈 버는 아내에게 “이렇게 착한 아들이 돈까지 착착 잘 벌어다 주는데 집안일까지 시켜 먹냐?”는 구박도 번번이 하셨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혹여나 바가지 긁힐까 봐 아내를 단속하신 듯합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울화통 터져 했습니다. 자신이 뭐가 못나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워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임에 발을 끊었습니다. 명절에도, 생신에도 아이만 데리고 저 혼자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어머니에게 면목 없고, 제가 백번을 대신 사과해도 마음을 풀지 않는 아내가 야속합니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전부였던 분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니 어머니를 가엾게 봐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해봤지만 늘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싱크대에 물이 샌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본가에 갈 채비를 하는 제게 아내가 화를 냈습니다. 그게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달려가야 할 일이냐고요. 하지만 제게는 어머니도 가족입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아버지 탓에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이제 저도 생겼으니 힘이 닿는 한 보답하고 싶습니다. 손주 보는 낙도 많이 누리게 해드리고 싶고요. 하지만 아내는 제가 아이를 집에 데려가는 것도 못마땅해합니다. 고부 갈등이 있으면 저도 어머니의 어려움을 못 본 척하고 제 아들도 할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커야 하는 건가요? 강민성(가명·35)
너무 가까이 있어 괴로워하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부모와 자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영화 ‘블랙 스완’의 케이크 장면이 떠오릅니다. ‘백조의 호수’​의 주역으로 뽑힌 딸 니나를 축하하기 위해 엄마 에리카는 케이크를 준비합니다. 니나가 다이어트 중이라며 거부하자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찼던 엄마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합니다. 화가 난 엄마는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합니다. 놀란 니나가 결국 케이크를 한입 먹어 엄마를 달랩니다.

영화에서 엄마 에리카는 젊은 시절 발레를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지독히 파괴적인 부모 자식 관계를 담고 있는 영화라 어쩌면 ‘우리 모자가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이 민성님이나 어머니와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 분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요?

영화에서 니나는 엄마를 넘어서는 눈부신 성취를 이뤘음에도 엄마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엄마 에리카 역시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자식을 어린아이 다루듯 통제합니다. 엄마보다 커졌음에도 여전히 엄마보다 작은 니나의 모습은 심리적 독립을 이루는 것도, 부모가 이를 허용하는 것도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성하여 이미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어머니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민성님과 어머니의 심리적 엉킴과 흡사하지요.

흔히들 분리불안을 어린아이만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어른도 분리불안을 겪습니다. 자녀의 결혼은 자식이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개별화되는 과정이기에 양쪽 모두에게 분리불안을 야기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공허함, 자식이 더는 내 곁에 없다는 상실감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자식의 독립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며느리를 ‘아들 등골 브레이커’로 깎아내리면서도 정작 어머니 자신은 배관공이 아닌 아들에게 전화해 고장 난 싱크대를 고쳐달라고 의존하는 모순은 아들을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며 분리를 거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녀의 분리불안은 영화 속 니나처럼 대개 죄책감으로 경험됩니다. 결혼하면 부모의 기대나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리는 과제가 대두됩니다. 이 과정에서 내면화된 부모와 내적 갈등이 생깁니다. 부모에게 ‘좋은 아이’로 남고 싶은 소망과 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독립을 마치 부모를 배반하거나 버리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결혼 뒤에 갑자기 효자, 효녀가 되는 배경에는 독립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성님도 무의식적인 죄책감으로 인해 독립을 부모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심리적으로 분리된다는 것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부모님의 어려움에 눈감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어디까지가 부모의 마음이고, 어디부터가 나의 마음인지 인식하고 적절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잘 분리되지 못하면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것과 실제 민성님이 원하는 것이 뒤범벅되는 것이지요.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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