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서 생활하던 17세 여고생 사망 사건
사인은 폐혈전색전증...온몸에 멍 발견
교회 합창단장 등 3명 "열과 성 다해 돌봐"
1심 징역 4년~4년 6개월...친모도 유죄
사인은 폐혈전색전증...온몸에 멍 발견
교회 합창단장 등 3명 "열과 성 다해 돌봐"
1심 징역 4년~4년 6개월...친모도 유죄
교회에서 여고생을 학대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50대 여성 신도가 지난해 5월 1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두 딸의 어머니인 A(54)씨는 지난해 1월 13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이 5개월간 투병생활 끝에 사망한 다음 날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 교단 설립자의 딸인 B(53)씨. A씨는 애도를 표하는 B씨에게 작은딸(17)이 아프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A씨의 작은딸 C양은 남편이 숨지기 하루 전 대전의 병원에서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과 함께 입원 권유를 받았다. 다른 병원에서는 "추가적 뇌질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입원 후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도 받았다. 당시 C양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불안 증세를 보였다.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거나 횡설수설하는 증상도 심해졌다.
병원 아닌 교회로..."밖으로 못 나가게 해야"
14일 검찰 공소장과 1심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이런 C양은 의료기관이 아닌 인천 남동구의 한 교회로 보내졌다. "(남편 장례 중) 아이를 보호할 곳이 없어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A씨의 말에 B씨가 "정신병원보다는 교회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제안했고, A씨가 수락했기 때문이다. A씨는 교단이 설립한 대전의 대안학교에 C양을 보낼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B씨는 교단이 세운 미국 음악학교에 진학한 A씨 큰딸이 활동하고 있는 교회 합창단의 단장이기도 했다. C양은 과거에도 언니와 교회 건물 2층에 있는 합창단 숙소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B씨는 지난해 2월 10일 C양이 세종시 집을 떠나 교회로 오자 합창단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신도 D(56)씨와 E(42)씨를 불러 "C양이 교회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잘 봐야 한다"며 "난동을 부리거나 말씀(교리)을 따르지 않을 때에는 마음을 꺾어야 한다.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D씨는 2023년 10월부터 교회에서 생활하며 합창단 지원 업무를 해온 신도였고, 합창단 소프라노인 E씨는 2014년부터 교회에서 살며 단원들 연습·외출 일정을 조정하는 관리자였다. 이들은 합창단으로부터 매달 30만~50만 원의 돈도 받았다.
"차라리 정신병원 보내달라" 했지만
운동을 가거나 병원 진료와 차량 검사를 받는 일까지 합창단장인 B씨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을 정도로 D씨와 E씨에게 B씨의 지시는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해 2월 14일부터 C양을 합창단 숙소에 사실상 감금하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C양이 "도망을 가고 싶다. 차라리 정신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이상행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2월 10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 넘게 잠도 제대로 못 자도록 했다. "자게 해달라"는 C양을 재우지 않고 복도와 방 청소, 성경 쓰기를 시켰다. "너무 자고 싶다"는 C양에게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 계단을 1시간 동안 오르내리도록 시켰다. 난동을 막는다며 팔과 다리를 등 뒤로 묶은 뒤 입을 막고 눈도 가렸다. 치매환자 억제용 밴드로 침대에 묶어놓기도 했다. D씨와 E씨는 학대와 가혹 행위를 할 때마다 B씨에게 보고했고, B씨는 '계속 일 시켜' 'ㅇ(응)' '좋아질 거야' '싸워줘' '엄청 야단쳐야 해요' 등 메시지를 보내 사실상 승인했다.
학대와 가혹 행위가 지속되면서 C양의 건강은 악화됐다. 교회에 온 지 석달이 지난 5월 2일 D씨와 E씨가 B씨에게 "많이 안 좋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같은 달 5일에는 결박으로 인한 손목의 상처도 눈으로 확인될 만큼 깊어졌다. 그러나 C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C양은 결국 열흘 뒤인 15일 오후 8시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C양은 4시간 만인 16일 0시 20분쯤 숨졌다. 원인은 다리 등에서 생긴 혈전으로 폐동맥이 막혀 발생한 '폐혈전색전증'이었다. 수사기관은 장기간 결박으로 혈류 흐름이 정체돼 혈전이 생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C양 시신 부검 결과 온몸의 멍과 함께 사망 1~3개월 전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허리뼈 가로돌기 골절이 발견됐다. 키 159㎝인 C양의 사망 당시 몸무게는 2023년 신체검사 때보다 5㎏가량 적은 48㎏이었다.
아동학대살해죄로 기소...법원 판단은 '학대치사'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해 5월과 6월 B씨 등 3명에게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완수사를 벌여 지난해 6월 이들의 죄명을 아동학대살해로 변경해 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25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B씨에게 무기징역을, D씨와 E씨에게는 징역 30년을 각각 구형했다. 또 아동복지법상 아동 유기와 방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해자(C양)는 지난해 5월 4일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6일부터는 음식을 전혀 섭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으며, 14일에는 혼자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위중했으나 교회에 감금돼 유기됐다"면서 피고인들에게 살인의 고의 내지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9일 아동학대살해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인정하면서 B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D씨와 E씨에게도 같은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과 4년을 각각 선고했다. A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B씨 등이 C양이 숨질 가능성을 예견하거나 사망의 위험을 용인할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살인 행위의 동기나 우발적 동기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다.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고의가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와 C양의 언니가 B씨 등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중증 폐혈전색전증은 발병 후 단시간 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C양이 5월 4~6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피해자를 즉시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거나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하지 않은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나 위험이 존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5월 12일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고 피고인들이 식사를 계속 챙기거나 씻겨주기도 한 것을 보면 유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가 다른 피고인에게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때리지 말 것을 얘기하고 피고인들은 수시로 피해자 상태를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인천지법.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찰·피고인 모두 항소...12일 2심 첫 공판
검찰은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해 12월 11일 항소했다. 검찰은 "1심 법원은 피고인들의 학대 고의와 공모 관계 등은 인정되나 살해의 고의까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대살해죄가 아닌 학대치사죄를 유죄로 판단했다"며 "그러나 법원이 채택한 증거를 종합했을 때 학대살해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맞섰다. 검찰은 또 "피고인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사망에 대한 죄책감을 보이지 않고 객관적 증거로 드러난 부분조차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죄에 상응하는 중한 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B씨 등은 검찰보다 먼저 항소장을 냈다. 이들은 "학대의 고의성이 없었고, 1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 등의 변호인은 앞서 1심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자신들 일상을 희생하면서까지 피해자를 열과 성을 다해 돌봤다"며 "검찰이 터무니없는 공소사실로 피고인들을 기소한 바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2심 첫 공판은 1심 선고 이후 한 달 만인 지난 12일 오전 11시 서울고법 형사 7부 심리로 열렸다. 다음 공판기일은 4월 2일 오후 2시 50분으로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