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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연

다양한 LED 전구들. 소켓의 규격과 전구의 색상, 밝기 등의 정보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모호연 제공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진화론 신봉자가 천지창조 이야기를 좋아한다니 어불성설 같지만, 오히려 믿지 않기에 낭만을 느끼고, 옛사람이 느꼈을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또 하나의 불경한 짓을 고하자면 어두운 방의 불을 켤 때 가끔 “빛이 있으라” 하며 이 집의 창조주처럼 군다는 것이다(이 집의 조명등을 내가 설치하기는 했다).

어떤 빛은 공해와도 같다. 형광등처럼 밝은 조명에서 발생하는 블루라이트는 우리 몸을 과도하게 긴장시키고 수면을 방해한다.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에 노란 조명을 켤 수는 없어서 작업실 천장에는 스마트 조명을 달았다. 낮에는 주광색(하얀색)으로, 일하지 않을 때는 전구색(오렌지색)으로 켠다. 리모컨으로 빛의 색상을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요즘은 휴대폰 앱으로도 전등 켜는 시간과 끄는 시간을 정하고 빛의 색을 바꾸는 스마트한 시대라, 스마트 조명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등 기구 설치 시 주의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전기를 차단해야 하므로 밝은 낮에 작업하자. 그래도 어둡다면 헤드랜턴을 쓰거나 충전식 조명을 동원한다. 젖어 있거나 헐렁한 고무장갑은 금물. 고무 코팅된 장갑을 낀다. 주머니 있는 앞치마를 입으면 볼트나 공구를 넣을 수 있다. 대부분의 천장 등은 각재(나무) 부위에 설치되어 있다. 나사못을 박을 때 나무가 제일 튼튼하게 고정되기 때문이다. 석고보드나 콘크리트에 설치한다면 천장용 앵커를 함께 쓴다(전동드릴 필수). 욕실에는 반드시 방습 등을 달자. 일반 조명을 달았다가는 습기가 침투하여 전기가 차단되거나 불이 날 수 있다. 설치는 혼자서 능히 할 수 있으나, 등 기구를 들어주거나 사다리를 붙잡아 줄 한 사람이 있으면 일이 한결 수월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다. 1인 가구라면 집수리를 도와주는 동지를 만들면 서로에게 이롭다.

신경 쓰이는 문제는 설치 이후에 발생한다. LED 기판이 장착된 등 기구는 고장이 나면 전등 전체를 갈아야 한다(직접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원이 낭비됨은 물론, 수리 과정이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러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전구를 끼우는 조명을 고르는 편이다. 불이 나가도 전구만 갈아 끼우면 되니 관리도 쉽고 자원도 아낄 수 있다.

얼마 전 당근마켓에서 전등갓이 깨져 방치된 벽 등을 구입했다. 안 팔리고 버려질 확률이 높은 물건이라 서둘러 사들였다. 자원도 아끼고, 종이접기로 전등갓 만드는 재미도 느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설치 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2700K(캘빈) 전구를 끼웠다. 조명은 아름다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색온도와 밝기가 어느 정도인지, 그 조명이 어떤 장소에 쓰이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실내 공간의 빛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아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최애’ 색온도는? 전구 하단에 깨알같이 새겨진 사양을 살펴보고 바꾸어 끼워가며 시험해 보자. 분명 당신이 머무는 공간이 더 좋아질 것이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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