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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야당의 줄 탄핵
0%.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4일 현재 야권이 가결한 탄핵소추의 헌법재판소 인용률이다. 앞서 헌재는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를 무더기로 기각했다. 헌재로 넘어간 탄핵소추 13건 중 8건이 기각됐으며 나머지 5건(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손준성 검사)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자연 현상에 비유하자면 ‘줄 탄핵’은 급격한 기후변화다. ‘뉴노멀’로 자리 잡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번 국회에선 개원 9개월 만에 18건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87년 체제 이후 국회에서 32년간 발의한 건수와 같다. 국회당 2.6건이었고 ‘동물 국회’로 악명 높았던 18대 국회도 1건(신영철 대법관)에 불과했다.

탄핵소추가 급격히 증가한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거대정당인 민주당이 야당이 되면서다. 2023년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시작으로 29건이 발의됐다. 극단적인 진영정치와 과반 야당의 존재가 1차적 배경이지만, ‘다수 법조인이 지배하는 정치’와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1993년 14대 국회에선 8.4%(299명 중 25명)가 법조인이었지만 이번 국회에선 20.3%(300명 중 61명)가 됐다.



의원 20% 법조인 출신정치적 해법 외면, 툭하면 “법대로”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하원은 29.9%, 영국 하원은 7.2%, 프랑스는 4.8%, 일본은 3%가 법조인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대개 한 자릿수에 그친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인구의 약 0.07%만 법조인인 걸 감안하면, 과대 대표되고 있는 셈이다.

법조인들의 양적 우위는 질적 우위로도 이어지고 있다. 수뇌부부터 법조인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여권의 차기주자군(오세훈·한동훈·홍준표)에도 상당수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민주당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국민의힘은 검찰 출신 인사를 영입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전장이 만들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며 “(이들이) 정치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매사를 ‘법대로’를 외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법정을 그대로 국회로 옮긴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20명, 더불어민주당은 37명의 법조인이 당선됐는데, 국민의힘은 검사가 9명, 민주당은 변호사가 23명으로 가장 많다. 민주당 변호사 출신 의원 23명 중 14명이 민변 출신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1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법조계 출신 의원이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양대 정당의 이념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세를 주도하는 의원 중에 법조인들 출신도 많다. 최근의 줄 탄핵도 법조인 특유의 ‘법대로’ 접근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정치-법조계를 잇는 ‘비즈니스 생태계’도 드러났는데, 탄핵심판 수임 양태가 일례다. 민주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에 국회 측 변호인단으로 선임한 장주영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민변 회장 출신이다. 한덕수 총리 탄핵심판에는 법무법인 양재 소속 한택근, 황희석 변호사가 참여했다. 한 변호사 역시 민변 회장 출신이고 황 변호사는 한동훈 전 대표의 ‘유시민 계좌 추적’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전 법무부 인권국장 출신이다. 민변 창립 멤버 최명보 변호사와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양재에 있었다.

또, 문재인 정부 때 급성장한 법무법인 LKB는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 심판 청구인 변호인단으로 선임됐다. 설립자는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광범 변호사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청구인 변호인단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 탄핵심판엔 억대의 수임료가 지급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선 약 2억4420만원이 지급됐는데, 22대 국회에선 9개월 만에 이를 초과한 3억1724만원이 쓰였다. 20대(5건)에서 지출한 비용(1억6500만원)의 2배가 됐다. 모두 세금으로 지급되는 비용이다. 탄핵심판은 아니지만 국민의힘도 21대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안호영 국회 환노위원장 등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법무법인 소백을 선임했는데, 이곳 대표인 황정근 변호사는 지난해 국회도서관장으로 취임했다.

‘줄 탄핵’으로 초래되는 업무 공백도 큰 손실이다.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키면 즉시 업무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 당하면서 발생한 13명의 업무 공백은 14일 현재 2077일이다. 이들이 탄핵심판 결과를 기다리며 업무에서 배제되는 동안 월급은 지급된다. 국민 입장에선 이중삼중 부담인 셈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민주당이 국회의 탄핵소추 권한을 오·남용을 함으로써 국가기관 업무수행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소추되더라도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이 즉시 업무 배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거나, 소추안 오·남용이 인정되는 경우 책임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정치권에선 아랑곳없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헌법을 중대히 위반해 탄핵받아야 할 대상은 감사원장과 검사들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라며 “이러한 범법 세력들이야말로 이제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탄핵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29번의 줄 탄핵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 반성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 대표가 해야 할 일은 3가지”라며 ▶대국민 사과 ▶한덕수 국무총리·박성재 법무부 장관 탄핵 철회 ▶감사원·검찰 삭감예산 복원 등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가 12일 “우리도 아무 잘못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도 잘못한 게 있지 않냐’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한 걸 고리로 삼아서다.

하지만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의 검사 탄핵 결정문에 ‘탄핵소추권 남용을 단정할 수 없다’고 쓰인 걸 부각하며 “(헌재가 최 원장 등이)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한 위반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국회가 충분히 탄핵할 만한 사유가 있고 (탄핵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줄 탄핵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허위 선동으로 파면을 막지 못한다”고 맞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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