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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국제학술지에 세계 첫 공식 보고
삵 사냥 시도 후 뉴트리아의 집단방어도 포착
국감 질타 뒤 후속연구 중단…추가 연구 필요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 논문 ‘포식자와 먹이 간 역학관계의 새로운 통찰: 삵이 뉴트리아를 사냥한다는 첫 증거(New insights into predator–prey dynamics: First evidence of a leopard cat hunting coypus)’에 실린 사진. 삵 한 마리가 2015년 11월 경남 김해 화포천 습지생태공원에서 뉴트리아 아성체(새끼)를 입에 물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 동물인 삵이 생태교란종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장면이 국내 연구진에게 포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과거 삵이 뉴트리아를 포식한다는 주장은 여러 번 제기됐지만 실제로 삵이 뉴트리아를 공격하는 모습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4일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박희복 박사 연구팀은 경남 김해 화포천습지 생태공원에서 삵이 뉴트리아 새끼를 물고 있는 모습과 삵이 성체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포착했다. 해당 자료는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에 ‘포식자와 먹이 간 역학관계의 새로운 통찰: 삵이 뉴트리아를 사냥한다는 첫 증거’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2월 발표됐다.

연구팀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삵은 성체 뉴트리아를 덮쳐 제압에 성공한다. 다만 근처에 있던 다른 뉴트리아 성체가 곧바로 반격하자 사냥했던 뉴트리아를 놓고 도망친다. 이후 다시 화면에 등장한 삵은 다른 뉴트리아들에게 재차 공격을 당하고 다시 도망간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삵이 뉴트리아의 자연적 포식자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도 “뉴트리아가 협력해 방어하는 행동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 논문 ‘포식자와 먹이 간 역학관계의 새로운 통찰: 삵이 뉴트리아를 사냥한다는 첫 증거(New insights into predator–prey dynamics: First evidence of a leopard cat hunting coypus)’에 실린 영상. 2017년 1월 경남 김해 화포천 습지생태공원에서 삵(주황색)이 성체 뉴트리아(파란색)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내 다른 뉴트리아(빨간색)에 반격당해 퇴치당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뉴트리아는 1980년대 말 식용 및 모피용으로 국내에 수입돼 사육됐으나 수요가 적어 대부분 버려졌다. 이후 뉴트리아는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번식해 강 상류 지역인 대구·경북은 물론 한때 충청과 제주에서도 관찰됐다. 개체 수가 가장 많았던 2015년에는 서식지 16곳에서 100㎡당 1.79마리가 관찰됐다.

뉴트리아는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유해 동물이다. 벼, 고구마, 양배추 등 농작물과 수생식물을 가리지 않고 하루 1㎏을 먹어치운다. 활동 반경이 4㎞에 이르고 땅에 15~20m의 굴을 뚫고 산다. 이 때문에 넓은 지역에 걸쳐 농작물 뿐만 아니라 댐이나 둑, 제방 등 시설물 피해도 유발한다. 뉴트리아가 2009년 포유류 가운데 처음으로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된 이유다.

앞서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뉴트리아 개체수 감소를 위한 국내 토종 포유류 포식자를 찾는 데 주력해왔다. 과거 생태교란종의 대명사였던 황소개구리가 왜가리나 가물치, 메기 등에 의해 숫자가 줄어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국내에서 뉴트리아와 서식지가 겹치는 삵과 수달, 너구리를 포식자 후보로 삼고 연구를 벌여왔다. 약 1년간 3개 종의 배설물 800개 가량을 수집해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포식자가 될 가능성이 확인된 건 삵이 유일했다. 박 박사는 “수달의 경우 오히려 뉴트리아를 피하는 모습이 관찰됐다”며 “너구리는 배설물에서 뉴트리아 잔존물이 일부 나오긴 했지만 카메라 트랩(무인 촬영장치)에서 구체적인 사냥 장면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 논문 ‘포식자와 먹이 간 역학관계의 새로운 통찰: 삵이 뉴트리아를 사냥한다는 첫 증거(New insights into predator–prey dynamics: First evidence of a leopard cat hunting coypus)’에 실린 영상 캡쳐 사진. 2017년 1월 경남 김해 화포천 습지생태공원에서 삵(주황색 화살표)이 성체 뉴트리아(파란색 화살표)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내 다른 뉴트리아(빨간색 화살표)에 반격당해 퇴치당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해외에선 삵과 뉴트리아가 대면하는 일 자체가 드물다. 삵은 주로 러시아나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에 서식하는데 이 지역 대부분에는 뉴트리아가 없다. 일본의 경우 삵과 뉴트리아가 발견되지만 한국과 달리 두 종의 서식지가 겹치지 않는다. 반면 국내 삵은 뉴트리아가 발견되는 낙동강 습지 부근에도 살고 있고, 수영도 잘해 물가로 도망치는 뉴트리아를 사냥할 수 있다.

삵이 뉴트리아를 먹이로 삼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단시간에 개체수를 줄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멸종위기종인 삵의 개체 수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박 박사는 “삵이 많으면 당연히 뉴트리아 개체 수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뉴트리아 서식지인 수변 지역은 도로가 발달해 삵이 유입되더라도 로드킬로 죽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트리아 억제를 위해서라도 삵을 보호하는 게 절실한 셈이다.

해당 연구로 삵의 뉴트리아 포식 생태가 밝혀졌지만 이후 생태 변화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논문에 실린 사진과 영상도 각각 2015년과 2017년 촬영분 뿐이다. 생태원 관계자는 “후속연구가 진행되지 못했기에 약 10년 전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 생태가 어떤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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