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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대통령 당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당시 이 발언을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핵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 ‘비핵화 원칙을 철회한 것 아니냐’ 등의 우려가 터져나왔습니다. 이후 미국 백악관에서 ‘북한 비핵화 원칙은 변함없다’고 진화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가라앉았는데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또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 언급했습니다. 지난 1월의 자신의 발언이 몰고 온 파장을 모르지 않을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발언을 또다시 한 배경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 “북한은 핵보유국” 발언 왜 자꾸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올라가고 있는데 첫 임기 때 맺었던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를 다시 재구축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렇다(I would)"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이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라면서 "확실히 그(김정은)는 뉴클리어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또 과거 미소간 핵군축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 "김정은은 핵무기를 많이(a lot) 갖고 있다"라면서 "인도나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기사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 북한을 또 핵보유국이라 지칭하다’에서 대동소이합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주는 충격이 컸기 때문인데요. 무엇보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정말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먼저 나옵니다. 미국의 역대 정부들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아왔는데요. 국제사회에서 외교·군사적 파장을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지난 1월의 핵보유국 발언 당시에도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됐었죠. 그래서 당시 미국 조야에서는 외교 전문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국이란 명칭을 정확한 개념에 입각해 사용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신호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임을출/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바이든 정부 같은 경우는 사실상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아예 협상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던 건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하는 토대 위에서 북한하고 대화를 하겠다고 얘기를 하는 거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북한의 호응 가능성을 첫 단계에서 높여주는 그런 포인트라고 볼 수가 있는거죠.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관행에 따라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인정하는 것과 비핵화 원칙이 모순되는 접근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북한 비핵화는 북핵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북핵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긴 여정이라는 설명인데요. 일단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 목표는 장기적, 그러니까 트럼프 임기 이후까지 추진하는 걸로 설정, 핵군축 협상부터 조금씩 진행시킨다는 바로 이른바 ‘스몰딜’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미북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정성장/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지금은 트럼프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 보다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욱더 고도화가 됐잖아요. 핵 투발 수단도 늘어나고 그래서 비핵화는 그때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훨씬 더 어려워졌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자신의 4년 임기 내에 북한을 완전히 비핵화시키겠다라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고 그러니까 미 본토를 위협하는 그런 어떤 ICBM 위협 같은 것부터 일단 제거하겠다는 거죠.

■ 인도, 파키스탄 언급 이유

그런데,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비교한 부분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핵보유국입니다. 이 두나라의 특징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핵보유 국가라는 점입니다.

NPT 조약에 서명하는 각국 외교관들

NPT, 핵확산방지조약은 히로시마 원폭 이후 핵무기 사용에 경각심을 갖게 된 세계정상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1970년에 발효됐습니다. NPT 체제 하에서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의 다섯 개 국가입니다. NPT의 목표는 이 다섯 개 국가 이외에는 핵 보유를 막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국제 원자력기구인 IAEA와 협조해 각 나라의 핵보유 상황을 감시, 사찰, 통제합니다. 북한은 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바 있습니다.

KBS뉴스 1998.05.13

그런데 NPT체제 밖에서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한 나라가 바로 인도와 파키스탄입니다. 인도는 NPT결성 이후 1974년에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평화적 용도의 핵폭발물’의 이용을 막는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들어 NPT가입을 거부했고요. 이후 국제사회의 제제를 받다가 1998년 다시 핵실험을 했고, 이후 2006년 미국과 IAEA의 사찰을 용인하는 내용의 원자력협정을 맺으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 파키스탄 총리

파키스탄은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안보위기를 느끼다 1988년 핵실험으로 일곱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됩니다. 1972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가 핵무기 개발 계획을 공식 승인했는데요. 당시 "파키스탄도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을 보유할 것이다"라는 그의 선언이 유명하죠, 북한의 핵보유 주장을 많이 접한 우리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구호입니다. 파키스탄도 미국의 강력한 반대와 국제사회의 제재에 부딛혔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됐고 미국은 핵실험 금지를 조건으로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언급하면서 이 두 나라의 예를 든 데에는 특별한 외교적 제스쳐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파키스탄하고 인도는 초기에 핵 개발 과정에서 핵 보유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제재를 받고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핵 보유를 승인해 준 케이스거든요. 그리고 승인 이후에 관계가 오히려 이제 미국 친화적으로 이제 변화된 국가들이고 그래서 이 두 국가를 언급했다라는 거는 굉장히 매력적인 시그널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그걸 신뢰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상당히 전향성을 가질 수 있는 여지 이것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북한에게 '너희도 미국과 잘 협상하면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이 NPT 밖에서 핵보유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이었다는 건데요. 이 경우 북한의 핵무기를 코앞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선 당혹스러운 상황을 넘어 매우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대통령의 손짓에 북한은 전향적 태도를 보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이 확정될 때까지 상황을 관리하며 관망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전략무기나 핵을 이용한 무력 도발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기대인데요. 특별히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도 없고 북러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지금 외부의 환경에 긴장을 조성하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한미가 연합연습을 진행하는 있는 가운데 나오는 북한의 대미 비난 발언도 기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왼쪽 리처드 그레넬 대북 특사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대북 물밑 접촉이 이미 진행중이라는 전제하의 분석인데요. 일각에서는 리처드 그레넬 대북 특사가 벌써 물밑에서 움직인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1기 때 양국 정상이 편지를 주고 받는 이른바 ‘편지 외교’를 27통이나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같은 물밑접촉을 시작했고 빠르면 올해 안에 만남을 추진할 거라는 전망입니다. 이 경우, 오히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은 더 높다는 분석입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북한은 물밑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반영이 안 되면 역설적으로 도발로 나올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계속 로우키(Low-key)로 간다는 보장은 없고요. 자신들의 요구가 물밑에서 관철되지 않으면 중거리 탄도 미사일은 물론 ICBM 카드도 꺼낼 수 있다고 봅니다.

■ 우리의 역할은?

2025 APEC 경주 이미지

트럼프의 핵보유국 발언 이후 북미관계의 급진전을 전망하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올해 10월 말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고, 그 길로 판문점으로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그림도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상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죠. 다른 전문가도 올해 가을부터는 본격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현재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우려입니다. 국제정치는 일개 장관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국가 리더들이 움직이는 고도의 정치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2기 북미대화에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후에 기여를 주장하려면 지금부터 국내 정세를 정비하고 준비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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