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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결정 나자 '박사모', "차벽 밀어버려라"
경찰버스 탈취… 대형 스피커 떨어져 사망
차벽 고정·에어매트 훈련… 폭력엔 '무관용'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버스 위에 오르는 등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 헌법재판소로 쳐들어갑니다. 오늘 헌재를 박살 냅시다. 돌격, 돌격, 돌격."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라고 낭독문을 읽자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 '탄핵 반대 집회' 진영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대규모 인파 사이에서 "(경찰) 버스를 당길 인력이 부족하니 지원해 달라"는 외침이 나왔다. 헌재 주변을 둘러싼 '경찰 버스 벽'을 무너뜨리자는 신호였다.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제지하던 경찰관, 이 광경을 취재하던 기자까지 폭행했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헌정사 최초 대통령 파면의 역사에는 '사망 4명, 부상 63명'의 아픈 기록도 함께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임박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 헌재 인근에 4,000명 넘는 경찰을 투입하고도 대규모 사상자 발생을 막지 못했던 경찰은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8년 전 난동 상황 영상을 분석해 취약 지점을 점검하는 등 인명피해를 한 건도 내지 않겠다는 각
오다.


"차벽 밀어버려" 그날 헌재 앞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된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경찰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가 2017년 헌재 인근 난동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의 판결문 등을 살펴본 결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장 정광용씨와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대표 손상대씨가 지지자들을 자극한 게 사태를 촉발한 측면이 있다. 파면 결정 직후인 오전 11시 41분 정씨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고 우리는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며 운을 띄웠고, 손씨는 "오늘 다 죽어도 된다. XX 오늘 헌법재판소가 죽든, 우리가 죽든 돌격, 돌격, 돌격"이라고 외쳤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낮 12시 10분 손씨는 경찰을 향해 "헌재로 쳐들어가는데 막으면 너희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차벽을 안 트면 트럭으로 밀어버리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경찰 버스 한 대가 움직였다. 문이 열린 채 키가 꽂혀 있던 버스 안으로 친박 집회 참가자 정모(당시 66세)씨가 침입한 것이다. 정씨는 2분간 50여 차례 차벽을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차벽 뒤 경찰 소음관리차가 크게 흔들렸고 소음관리차 지붕에 있던 100㎏짜리 대형 스피커의 고정장치가 부서지고 떨어져 아래에 있던 박 대통령 지지자 김모(72)씨를 덮쳤다. 두개골이 함몰된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버스 문을 열어놓은 경찰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참사였다.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 주차된 경찰 버스 유리창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차벽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쇠파이프로 버스 유리창을 깨트린 후 깨진 틈이나 바퀴 부위 등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겼고 제지하는 경찰관들을 향해 각목, 보도블록, 쇠파이프 등을 던졌다. 오후 1시 30분쯤 정씨는 "
지금은 뒤에서 버스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데
당길 인력이 좀 부족하다"며 "남성분들이 지원해달라
"고 말했다.


이날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씨 외에 나머지 3명도 당시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박 대통령 지지자였다. 부검 결과 외상은 없었고 심장 이상 소견이었다. 부상자도 63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의무경찰 24명을 포함해 33명이 경찰이었다.

폭력 집회를 부추긴 자들은 무거운 처벌을 피했다. 정광용씨와 손상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버스탈취범 정모씨는 특수폭행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나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만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재판에 넘겨진 30명(구속 8명, 불구속 22명) 대부분이 벌금형이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재판관 보호 위해 경찰특공대 배치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경찰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8년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 선고를 마주한 경찰은 '초긴장' 상태다. 경찰청은 탄핵 선고 당일 전국에 '갑호비상'을 발령해 가용 가능한 경찰력을 총동원한다고 14일 밝혔다. 갑호비상 시엔 모든 경찰관의 연가가 중지된다.

'헌재 사수' 작전의 핵심은
△헌재 인근 100m 이내 '진공상태' △경찰병력 인해전술
이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앞서 "헌재로부터 100m 이내는 집회 금지구역이라 차벽으로 둘러싸서 진공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근 초중고, 특수학교 등 11개교도 선고 당일 휴교한다.

경찰은 선고 당일 전국에 337개 기동대 2만여 명을 투입한다. 특히 헌재 인근엔 8년 전(4,600여 명)의 두 배인 9,000여 명을 배치한다. 재판관 신변 보호를 위해 전담경호대·형사·경찰특공대도 출동한다. 헌재가 위치한 종로·중구 일대를 8개 권역으로 나눠 '특별 범죄예방강화구역'으로 설정해 빈틈없는 치안유지에 나설 방침이다. 선고일 전후 헌재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이라 드론 비행이 제한된다. 헌재 담장 일부 구간에는 월담 방지를 위해 원형 철조망까지 설치됐다.

경찰이 14일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대비 계획. 그래픽=이지원 기자


경찰은 무엇보다
차벽 저지선이 가장 중요
하다고 보고 있다
. 차벽을 이중 삼중 세우고, 버스가 물리력에 흔들리지 않게 바퀴에 밧줄을 달아서 고정할 계획이다. 시위대가 버스 위로 올라갈 경우에 대비해 에어매트도 깔린다. 시위대가 에어매트로 스스로 뛰어내리도록 조치하는 가상 훈련도 실시했다.

주요 기관 시설물 안전을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경찰은 국회·법원·수사기관 등 국가 주요기관과 언론사·정당당사(시·도당사)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경찰력과 장비를 선제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선고 전날 0시부터 선고 날 3일 후 정오까지 닷새간 경찰관서에 보관 중인 민간소유 총기 8만6,811정의 출고도 금지된다.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 주재로 '탄핵 선고 대비 상황점검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박시몬 기자


폭력시위엔 '무관용' 대응한다.
기동대는 신체보호복을 착용하고, 필요할 경우 현장 지휘관 판단에 따라 캡사이신(고추 추출물) 사용도 가능하다. 캡사이신 사용 허가는 2017년 탄핵 선고 날 이후 처음이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해 세부 경비 대책을 논의한 뒤 헌재 인근 현장 점검에 나섰다. 그는 "경찰의 질서유지 안내와 통제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부탁드리며 선진국 국격에 어울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시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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