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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세탁기. 경향신문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그가 유도한 대로 ‘미국 생산 확대’로 귀결될 경우 국내 경제가 입을 타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0여년 전의 한미 ‘세탁 분쟁’은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 국외 이전’으로 마무리 된 바 있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만큼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4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재호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보고서를 통해 “(이번) 통상분쟁이 오랜 시간 수출 감소로 인한 피해를 남긴 채 미국 현지생산 확대로 종결될 수 있다”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 지역 경기침체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과거 ‘미국 생산 확대’로 끝난 통상분쟁 사례로 14년 전 시작된 한·미 세탁기 분쟁을 꼽았다. 2011년 미국은 한국의 삼성·LG 세탁기가 미국의 월풀 등을 위협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리자 반덤핑 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2013년 2월부터 두 기업의 세탁기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를 물렸다. 반덤핑 관세는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할 경우 부과하는 관세를 말하고 상계관세는 수출국의 보조금 지급 효과를 상쇄하기 위한 관세를 말한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조사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해 2016년 승소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덤핑 관세를 유지했다. 이에 한국은 WTO로부터 미국에 8481만 달러의 보복관세를 매길 권한도 승인받았지만 보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에게 맞불을 놓기가 쉽지 않았고, 설사 보복관세를 매긴다 해도 세탁기 기업의 피해 복구로 직결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세탁기 산업과 연관된 산업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수입이 제한되지 않는 이상 피해를 본 세탁기 산업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이런 이유로 다수의 국가가 보복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세탁기 산업은 결국 ‘생산시설 미국 이전’으로 출구를 찾았다. 미국이 WTO 판정에도 불구하고 반덤핑 관세를 이어간 데 이어 2018년엔 한국 세탁기에 ‘세이프 가드’(수입 제한)조치까지 취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이 조치를 전후해 미국으로 세탁기 생산기지를 옮겼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LG전자는 테네시주에서 미국 시장에 내놓는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세이프 가드에 대해서도 WTO에 제소해 2023년 최종 승소했으나 이미 생산시설이 미국으로 옮겨진 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한국 세탁기 공장의 이전을 자신의 치적으로 꼽기도 했다. 두 기업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테네시주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세이프가드가 발동되기 전이다. 다만 세탁기 분쟁이 ‘생산기지 이전’으로 귀결된 관세 압박의 대표 사례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세탁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미국 현지 생산 추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내 산업 공동화 및 지역경기 침체 등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또 미국 관세전쟁에 대해 보복관세로 대응하는 대신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를 개선해 줄 방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 규모는 660억달러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인 2017년(228달러)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대미국 수입 상위 품목들은 원유, 액화천연가스, 프로판 등 기초 원재료로 수입이 불가피한 것들”이라면서 “이들 품목의 수입 증대를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개선할 여지가 있다. 유럽연합이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액화천연가스와 대두 수입 확대로 관세갈등을 해결한 바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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