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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방치된 서울 대방동 주택가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일 찾아간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주택가 일대에는 집 2채가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천장은 나무로 된 구조물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외벽은 폭탄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창문도 없는 상태로 집안 내부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주변 공터에는 쓰레기와 고양이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2011년부터 아무도 살지 않고 15년째 누구도 손대지 않는 흉물로 변했다. 주민 김모(48)씨는 “빈집과 인근 골목에까지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며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위험하진 않을까 늘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빈집이 지난 4일 쓰레기로 뒤덮인 채 방치돼 있다. 이서현 기자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흉물

장기간 비어 있는 집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주택가의 흉물이 된 것은 재개발 관련 법과 관련 있다. 방치된 빈집을 정비하는 사업이 있지만 재개발이 예정된 빈집은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대방동 일대 주택은 2009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김씨는 “이 일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곳 재개발을 위해 2009년부터 지역주택조합이 설립됐지만 번번이 재개발 사업이 엎어지면서 조합비 납부에 부담을 느낀 주민들이 동네를 떠났다고 한다. 대방동 지역주택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조합비를 내지 않는 등 비협조적으로 나오며 점차 사람들이 떠나갔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이처럼 방치된 빈집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정비할 수 있다. 2017년 제정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이 그 근거다. 소규모주택정비법은 지자체장이 빈집 정비사업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장은 ‘1년 이상 사용되지 않는 주택’이 그대로 방치하기에 부적절한 경우 시장과 군수 등이 빈집 소유자에게 빈집 철거를 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시나 국토교통부의 가이드라인이 대방동 일대 빈집 철거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국토부의 ‘빈집 정비 계획수립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재개발이 예정된 구역의 빈집’은 빈집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빈집 소유주의 이해관계가 재개발 여부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020년에 고시 해당 가이드라인은 소규모주택정비법 시행에 따라 방치된 빈집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정비하고자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과 함께 마련했다.

서울시도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개발 지역 내 빈집을 굳이 정비하지 않았고, 관할 구청인 동작구청 역시 해당 빈집들은 정비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14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추후 재개발이 진행된다는 의미”라며 “따라서 따로 빈집 관리를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집 정비사업의 실질적 수립권자인 각 구청은 이 같은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개발이 예정된 빈집을 정비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관할 구에 ‘위험한 빈집을 정비해 달라’고 요청하더라도 ‘해당 빈집 일대가 재개발 구역에 속해 있어 빈집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예정된 재개발이라도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방동 빈집 일대는 2009년 7월부터 지역주택조합이 설립돼 재개발 시도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이 제시한 재개발안은 구청의 건축 심의를 받지 못했다. 2022년에야 지구단위 건축계획이 확정돼 구청 측의 건축 심의를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심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결국 16년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외됐다는 이유로 재개발 구역 내 빈집들은 시·도별 빈집 실태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현황조차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지자체 차원의 안전조치 시급
동작구 다른 빈집의 담벼락이 무너져 있는 모습. 독자 제공

사각지대 속 방치된 빈집들에 대해 지자체 차원에서 우선적인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개발 구역의 경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환경 개선이 쉽지 않다”며 “대방동 사례처럼 안전상 문제가 있는 지역은 서울시에서 일차적으로 정비를 해두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빈집 환경개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재개발 구역 내 빈집을 정비대상에 포함시키려면 장기간 진행되지 않은 재개발 구역의 지역주택조합을 해체해야 하는데, 조합 인가를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달 중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인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많은 정비조합이 부실화되면서 주민의 피해와 도시환경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출구전략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표류하는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지자체의 직권취소 권한 부여는 사실상 중단된 정비사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주택법상 장기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 조합은 총회 의결을 거쳐 해산(사업종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총회를 개최하지 않거나 총회를 개최하더라도 정족수 미달이 되는 경우 해산할 수 없다. 이에 개정안은 시장·군수·구청장이 장기간 사업 지연에도 불구하고 해산의결을 하지 못하는 조합에 대해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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