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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때 엄마의 물건들은 치우지 않았어요.
이번에 전부 치우려고 합니다.”

‘이번엔’ 남동생이 죽었다.
중년 여성의 의뢰였다.
‘한꺼번에’ 가족들의 유품 정리를 부탁한 것이다.
지난 5년간 쌓인 슬픔, 고통, 후회, 죄책감이 목소리에 잠겨있었다.
그 무거운 감정에 짓눌려 그녀의 존재는 아예 푹 가라앉은 것 같았다.

고인은 사후 3개월 만에 발견됐다고 했다.
현장은 여럿이 주거하는 빌라였다.
한 층에 두 집이 있는 구조.
시취가 다 퍼졌을 텐데 이웃들은 어떻게 그간 몰랐을까.

이지우 디자이너

의뢰받은 3층까지 올라가면서 냄새는 점점 심해졌다.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시취….
미리 받아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순간,
계단 통로에서 맡았던 시취와는 차원이 다른 악취가 들숨에 코를 찔렀다.

“빨리 문닫아!”
같이 간 직원에게 서둘러 문을 닫게 했다.
우리는 악취 속에 감금됐다.

방은 2개, 거실 겸 주방과 욕실이 있는 구조였다.
꽤 널찍한 베란다도 있었다.

각 방들을 둘러보고 욕실문을 열었다.

사고 현장이었다.

시신에서 녹아내린 부패물이 욕실 바닥에 흥건했다.

부패물은 여전히 끈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수구가 다 막혔겠다. 시신 수습하는 사람들 고생이 많았겠네.”
부패물이 이 정도라면 시신의 형체도 참혹했을 것이다.

욕실이 자욱해지도록 소독약을 뿌렸다.
지금 시취가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다.
부패물을 걷어내려 긁어내기 시작하면,
석 달 넘게 응축된 악취가 맹렬하게 ‘독’을 뿜어낸다.

“안 되겠다. 비닐 좀 많이 잘라서 테이프 붙여서 갖고 와.
환풍기부터 틀어막고 시작하자.”

공동주택들은 같은 위치에 욕실이 시공돼 있다.
그 위아래로 환풍기도 전부 연결이 된다.
지금 그대로 엉겨붙은 부패물을 긁어대기 시작하면,
상상 못할 악취가 각 세대로 뿜어져 나간다.
그 냄새는 코를 넘어 뇌에 새겨질 정도일 게다.
평생의 악몽으로 남을 악취 공포.

이웃들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환풍기에 조치를 하는 것이다.
비닐로 꼼꼼히 막는다 한들 냄새는 번질 거다.
그래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환풍기를 틀어막고 소독약을 들이부었으니 산소가 부족해진 느낌이었다.
냄새도 덜해질 텐가. 어찔한 느낌이었다.
한 겨울이지만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잠깐 나갔다 오자. 마스크도 푹 젖었네. 바꿔야겠어.”
신선한 공기를 핑계 삼아 1층으로 내려왔다.
냉기가 바늘처럼 뺨에 꽂히는 차가운 공기가 반가웠다.

오랜만의 험한 현장에 손가락이 움찔했다.
담배 생각이 난 것이다.
겨우 겨우 참아 7달 금연에 성공하고 있었지만,
이런 장면을 보고나면 한 대 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 청소하러 오셨나봐.”
추운 날씨에도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네, 여기 사세요? 오늘 좀 시끄러울 거예요.
냄새도 좀 날 수밖에 없고요. 저희가 최대한 빨리 청소할게요.”

“괜찮아요. 힘든 일을 하시네.
여기 예전에 아줌마가 살았어요. 5년 전에 돌아가셨거든.
그 전까지 오며가며 친하게 지냈지.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들 때문에…”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웃은 갑자기 스윽 다가와 소근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만날 아들 때문에 제명에 못 산다고 하더니만…”

의뢰인인 고인의 누나로부터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다.
자식 때문에 투신자살을 했다니.

“여기 청소하러 오셨데?”
빌라에서 또 다른 입주민이 나왔다.

“아유, 여기 사는 놈이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눈만 마주쳐도 무슨 미친 개마냥 달려들었잖아.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어.”

“맞아맞아, 여기 아줌니 계실 때 반찬이라도 좀 나눠드릴려고 하면
우리가 거지냐고 막 소리지르고 아주 난리였었지.”

이웃들은 주거니받거니 고인의 욕을 한참 이어갔다.
이젠 내가 슬슬 자리를 비울 차례였다.
욕실부터 치우고 나서 유품을 정리해야만 했다.

(계속)
‘미친개’라 불린 아들의 방에서는 뜻밖의 물건이 나왔습니다.
김새별 작가는 그제서야 그가 포악해진 전말을 알게됐습니다.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786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웃음 가스는 죽음 가스 됐다, 옥탑방 청년 ‘기묘한 배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4511

“나쁜 새끼” 아내는 오열했다, 11층 아파트의 ‘피칠갑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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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다락방 꾸미던 할아버지…죽음은 ‘악마의 설계’같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003

"두 시신, 장례식장 따로 잡아" 한날 죽은 예비부부의 비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3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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