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탄핵 찬반 '극한 대립' 속 역할 커져
집회 현장 곳곳서 성난 시위대 달래
"주7일 출근···너무 힘들땐 침묵 유지"
격무에 '베테랑'들마저 번아웃 심화
"인력 증원·심리상담 확대 시급" 진단
대화경찰. 연합뉴스

[서울경제]

‘욕받이’가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대화경찰로 근무하는 A 경감은 최근 본인만의 업무 원칙을 세웠다. 집회 참가자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최소 10분 동안은 묵묵히 들어주자는 것이다. 경찰이 화를 내면 될 대화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내린 결론이다. 그는 “예전에는 보수 어르신들은 그나마 호의적이었는데 이제는 양 진영 모두 우리를 적대시한다”며 “수 년간 이 일을 했지만 요즘엔 정말 하루만 집회에 나가도 진이 다 빠진다”고 한탄했다.

최근 탄핵 찬반 집회 현장에선 형광색 점퍼를 입은 경찰이 성난 시위대를 달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점퍼를 자세히 보면 ‘대화경찰’이라는 문구가 옷 앞뒤로 붙어 있다. 계엄 이후 집회가 급증하면서 현장에서 시위대·시민과 소통하는 대화경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현장 경찰들은 “보람이 크지만 고된 감정 노동과 고질적 인력난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총 8만 8823건의 집회 중 8만 3585건에 대화경찰이 투입됐다. 비율로 따지면 94.1%로 2020년의 55.4%에 비해 40%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대화경찰 투입이 늘어난 것은 현장에서의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한국경찰학회보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대화경찰을 투입한 관서의 경우 그렇지 않은 관서에 비해 위법시위가 약 54.5% 줄었다. 탄핵 정국 들어선 찬반 세력간 대립 격화로 대화경찰의 역할은 더 커졌다.

특히 집회 단골 장소인 서울 도심에는 ‘베테랑’ 대화경찰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더욱 노련하게 갈등을 풀어낸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구속에 반발해 분신한 시민이 결국 사망하자 탄핵 반대 측에서 불법 분향소를 설치하려던 것을 설득 끝에 막아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장에 나온 구청 직원들과 말다툼을 벌이던 이들은 “(설치를 강행하면) 공무집행방해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시민들 눈에도 과격 단체로 보일 수 있다”는 남대문서 경찰 설득에 결국 기자회견만 하고 현장을 떠났다.

다만 현장 경찰들은 침착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용산서 소속 이동훈 경위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아예 ‘자체 침묵 모드’를 켜고 참가자들의 말만 듣고 있다”고 말했다. 소음 공해와 장시간 입식 근무도 이들에겐 큰 고통이다. 남대문서 소속 이선우 경사는 “주변 동료 상당수가 이명과 하지정맥류를 달고 산다”며 “최근엔 사실상 주 7일 근무가 기본값이 되면서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고 전했다.

현장 경찰들은 한목소리로 인력 증원이 시급하다고 손꼽힌다. 보통 정보과 소속 경찰들이 대화경찰 업무를 겸임하는데 전담 직제로 전환하거나 타 부서에서 인력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기적인 심리상담·치료 등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도 크다. 대화경찰을 위한 ‘군중심리 대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올해 예산은 총 4000만 원으로 지난해(4500만 원)보다 깎였다. 조영일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대화경찰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이라며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은 물론 직장 인근 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경찰의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879 [Today’s PICK] 외환보유액 굴리는 한은…“비트코인 편입 검토 안해” 랭크뉴스 2025.03.17
44878 국내 ‘핵무장론’ 방치한 정부···미국 ‘민감국가 지정’ 외교력 한계 노출 랭크뉴스 2025.03.17
44877 “직원 수천 명 잘려 곡소리 나는데”…사무실서 '패션쇼' 벌인 美인사국 대변인 랭크뉴스 2025.03.17
44876 1500명 모인 북마케도니아 나이트클럽서 화재 참사…59명 사망 랭크뉴스 2025.03.17
44875 한동훈·안철수 “탄핵심판 승복해야”···탄핵찬성파 주자들 조기 대선 채비 랭크뉴스 2025.03.17
44874 당신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진짜 이유…의지력 탓 아닌 '이것' 때문이었다 랭크뉴스 2025.03.17
44873 尹 선고 먼저냐 李 2심 먼저냐…예측불허 헌재, 정치권 뒤집다 랭크뉴스 2025.03.17
44872 "美유권자 54% 트럼프 경제정책 지지안해…'경제상황 좋다' 18%" 랭크뉴스 2025.03.17
44871 민주당 “권성동 ‘승복’ 선언은 ‘불복 선동 본색’ 감추려는 연막” 랭크뉴스 2025.03.17
44870 윤석열 운명의 날, 이르면 20~21일…‘역대 최장기간 숙고’ 헌재의 선택은 랭크뉴스 2025.03.17
44869 美, 계란 가격 폭등에 밀수 시도 급증 랭크뉴스 2025.03.17
44868 통풍 무시 마세요… 방치하면 무서운 ‘이 병’ 부릅니다 랭크뉴스 2025.03.17
44867 美국무 "현 무역 불공정…상호관세 후 양자협상 통해 새 협정" 랭크뉴스 2025.03.17
44866 연봉 4억 뒤로 하고… 시골서 봉사 택한 참된 의사 선생님 랭크뉴스 2025.03.17
44865 김병주, 홈플러스에 사재 출연…‘MBK 책임론’ 달래기 랭크뉴스 2025.03.17
44864 40대 여성 몸에 불 붙였다…독일 트램서 벌어진 잔혹 범행 랭크뉴스 2025.03.17
44863 ‘배우자 상속세 폐지’ 불붙었지만… 탄핵 변수에 표류 가능성 랭크뉴스 2025.03.17
44862 "환자 두고 갈 수 없어서"…'월급 300만원' 응급의료계 거장, 4억 연봉 포기한 이유 랭크뉴스 2025.03.17
44861 작년 1100억달러 넘겼던 서학개미 美 주식 보관액, 900억달러대로↓ 랭크뉴스 2025.03.17
44860 입시정책 불확실성이 사교육 부추겨… ‘컨설팅비’ 1년새 14%↑ 랭크뉴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