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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구속취소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거론했다는 전언에 관심이 갔다.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법적 절차를 문제삼으며 ‘영장 쇼핑’이라는 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비난할 때마다 윤 대통령의 양 전 대법원장 수사가 떠오르던 터였다. 동시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생각났다. 지금 윤 대통령을 변호하는 윤갑근 변호사 등이 검찰 재직 시절 주도했던 우 전 수석 수사는 검찰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영장 폭격
추가로 투입된 영장 판사가 발부
‘팔짱 여유’ 우병우도 결국 구속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양 전 대법원장은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영장 청구를 반복했다. 이 와중에 전기를 맞았다.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체제에서 세 명이던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를 네 명으로 늘린 것이다. 추가된 한 명은 10년 정도 검사 생활을 하다 전직한 판사였다. 그가 양 전 대법원장 관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이 수사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이 지휘했다.

공수처의 행태가 ‘영장 쇼핑’이라면 전담 판사를 달리하며 영장을 발부받았던 당시 검찰 수사는 ‘판사 쇼핑’쯤으로 명명할 수 있을까. 신생 공수처 혼자 좌충우돌한 이번과 달리 당시엔 ‘김명수 코트’가 검찰 출신 법관까지 투입했으니 검찰은 한결 든든했겠다. 김 전 대법원장은 임성근 전 판사 탄핵을 무리하게 추진한 더불어민주당 편에 선 듯한 발언이 훗날 녹취로 공개돼 충격을 줬다. 임 전 판사 탄핵소추는 어제도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재판관 전원일치 기각으로 귀결된 민주당의 ‘묻지 마 탄핵’ 시리즈 첫 회쯤으로 평가된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다. [연합뉴스]

법원의 기류 변화 속에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검사 출신 법관은 영장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후 법정에서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쪽에 달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항변했다. 비록 여러 판사를 두드리며 발부받은 영장이었어도 양 전 대법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조금 나았겠으나 법원은 지난해 1월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갈등을 빚으며 수사 대상이 된 우병우 전 수석은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 경우다. 박근혜 정부 시절 특별수사팀장이 지금 윤 대통령을 변호하는 윤갑근 당시 대구고검장이다. 우 전 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19기)인 윤 전 고검장은 엄정한 수사를 약속했으나 흐지부지 끝났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윤 대통령이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은 우 전 수석을 무섭게 몰아쳤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미 두 번 기각됐음에도 수사팀은 세 번째 영장을 강행했다. 이번에도 이 전 특별감찰관 관련 사안이었다. 결국 우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구속됐다. 수사 검사 앞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웃는 사진이 공개됐던 우 전 수석은 1년여 뒤 법정에서 “검찰이 제 개인에 대해 네 번이나 구속을 요청했다”며 “검찰이란 거대한 공권력이 우병우라는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검찰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 대통령 측의 불구속 수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구속기소하더니 법원이 구속취소 결정을 내리자 즉시항고를 하지 않고 석방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즉시항고가 필요하다고까지 밝혔으나 대검은 안 하겠다고 못 박았다.

윤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그가 독거실에서 고민한 주제가 반국가세력·전공의·헌법재판관 처단 방법이 아니라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길 바란다. 양 전 대법원장을 떠올리며 했던 생각을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은 이유다.

강주안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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