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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땅(Mutin) 홍강석 셰프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한국 미식계의 최신 이슈와 셰프들의 특별 레시피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프랑스 식당 '뮤땅'의 홍강석 셰프. 그는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요리하기보다는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시끌벅적한 주방에서 일하기를 선호한다. 장준우 제공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단지 '좋은 분위기'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을 때 요즘은 '바이브가 좋다'라고 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골목에 위치한 '뮤땅'(Mutin)에 들어서면 바이브가 차고 넘치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캐주얼 와인바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문지방을 넘었을 뿐인데 공기와 온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 경계 없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오픈 주방과 홀, 그 사이를 가득 메운 경쾌한 음악과 웃음소리, 주방에서 고기 익는 소리와 달그닥거리는 접시들의 마찰음, 군침 돌게 하는 냄새와 바쁘게 오가는 스텝들, 집중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미소 짓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한 공간에 얽키고설켜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운 바이브를 뿜어낸다.

유행 따라 잠깐 생겨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살벌한 외식업계에서 6년째 순항 중인 뮤땅을 만들어낸 홍강석 오너 셰프을 만나러 가는 길, 일단 이 질문부터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바이브를 만들어 냈을까.' 대학 중퇴와 취사병, 스위스 유학, 그리고 오너 셰프로서의 방황까지. 홍 셰프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공간의 정체성을 완성한 비법을 알 수 있었다.

'뮤땅'은 오픈 키친이라 손님들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는 '음식이든 와인이든 즐기는 사람이 편안해야 한다'는 홍강석 오너 셰프의 요리 철학을 반영한다. 장준우 제공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고요.


"고등학교 땐 막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만 있었어요.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는데 성향이 좀 안 맞더라고요. 그즈음 제빵에 관심이 생겨 홈베이킹을 해봤는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서점에서 우연히 '사브리나 시리즈'라는 프랑스 요리책을 봤죠. '재료와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게 너무 흥미로웠어요. 내가 몰랐던 세계가 여기 있구나 싶어 결국 요리에 빠지게 됐죠."

-요리를 본격적으로 한 건 언제예요.


"취사병으로 군에 지원했어요.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전역 후엔 요리로 길을 정하고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어요. 결국 부모님 몰래 자퇴서를 냈죠. (웃음) 대신 직업학교에서 조리기능사 과정을 밟고 한국에서 2년 반 정도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에서 일했습니다."

-그 이후에는요.


"원래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비자 문제가 있었어요. 요리 학위를 주면서도 인턴십 제도가 탄탄한 스위스 요리학교 CAA(Culinary Arts Academy Switzerland)에 갔어요. 3년 중 1년은 현장 인턴으로 일할 수 있어 좋았어요. 스위스의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정통 프랑스 요리법을 배웠습니다. 졸업 후엔 런던과 파리의 미슐랭 스타 음식점인 '알랭 뒤카스'에서 일하며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어떻게 세계 정상급 요리를 만들어 내는지 곁에서 지켜봤죠."

-유럽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고 제대로 다루는 과정을 배운 게 지금 제 요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생오리나 소 반 마리를 통째로 받아 부위별로 발라내고, 우리고, 졸이는 등 프렌치 요리의 기본을 확실히 익힐 수 있었으니까요. 반면 좋은 재료로 만든 정통 프랑스 요리가 어떤 건지 아니까 오히려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를 하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재료 수급과 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럴 땐 재료적 한계를 아이디어로 보완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이걸 그대로 구할 수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맛을 끌어낸다든가, 있는 재료를 다양하게 변주해보는 식이죠."

-오너 셰프로서 고민은 무엇인가요.


"어느 정도 사업이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면, 음식보다는 운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내가 이런 걸 하려고 요리를 시작한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도 들고요. 한때는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가게를 만들자는 생각에 메뉴를 단순화하고 매뉴얼화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고민 끝에 '그렇게 하면 과연 이게 내 가게가 맞나' 싶어 관뒀어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프랑스 식당 '뮤땅'의 내부. 장준우 제공


-'뮤땅'은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어로 '장난기 있는, 편안한'이란 의미로 쓰는데, '반항적인'이라는 뜻도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당시 한국에 있던 프렌치는 엄숙한 파인 다이닝과 푸근한 가정식 두 갈래였어요. 알랭 뒤카스에서 파인 다이닝을 하면서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좀 편하고 자유롭되 맛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프렌치 요리의 편견을 깨주는 그런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손님들 반응은 어땠나요.


"오픈 한 달 정도는 정말 조용했어요. 그러다가 내추럴 와인이 유행하고 분위기가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갑자기 바빠졌죠. 처음에는 직원도 없이 거의 직접 모든 준비와 요리를 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가 오히려 참 재밌었어요. 모든 게 손끝에서 탄생하는 순간을 늘 확인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뮤땅의 바이브를 얘기해요.


"오픈 키친이라 주방과 홀이 완전히 소통된다는 점, 내추럴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늘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소믈리에와 매니저, 스텝들의 태도 등 여러 요소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결과라고 봐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요리에 방해가 되진 않나요.


"그렇다고 정적이고 긴장감이 감도는 주방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내가 지금 이 순간 즐기면서도, 음식 퀄리티를 놓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거예요. 직원들과 농담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리의 완성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죠. 음식이든 와인이든 즐기는 사람들이 편해야 해요."

'뮤땅'에 구비된 내추럴 와인. 홍강석 셰프는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봤을 때 제 요리 같이 느껴졌다"며 "맛을 전혀 예측 불가할 수 없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장준우 제공


-뮤땅에서 다양한 내추럴 와인을 맛볼 수 있어요.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봤을 때 제 요리같이 느껴졌어요. 보통 와인들은 특정 빈티지와 생산 지역, 품종의 특징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편이지만, 내추럴 와인은 맛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맛 그 자체로 대화거리가 된다는게 매력이에요. 내추럴 와인이 다소 융통성 있게 음식과 어울려주니까 요리의 폭도 훨씬 넓어질 수도 있고요."

-레시피는 어떻게 구상하세요.


"항상 재료에서 출발합니다. 제철에 나는 재료들을 서로 조합해요. 재료의 여러 가지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으려 노력하죠. 최근엔 퀄리티 좋은 그린빈 농장을 찾았는데 잎까지 쓸 수 없느냐고 여쭤봤어요. 식물들의 잎에도 재료의 향이 스며 있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요즘 나오고 있는 그린빈 요리예요. 그린빈 잎을 숯불에 구워 구운 그린빈의 맛과 향을 더했습니다."

'뮤땅'의 홍강석 셰프는 "음식만 잘한다고, 분위기만 좋다고 해서 식당이 오래 가긴 어렵다"며 "요리의 맛이나 완성도, 서비스, 와인, 분위기 중 어느 하나 허투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뮤땅의 요리 핵심은 무엇인가요.


"프렌치라면 아무래도 쥐(jus)나 퓌레, 소스가 핵심이죠. 재료를 갈고 끓이고 졸이는 과정에 다른 요리들보다 공을 많이 들여요. 저는 무엇보다 음식의 밸런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쥐, 퓌레, 소스는 일종의 맛의 기본 바탕을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그 바탕 위에 재료를 쌓아올리며 식감과 풍미, 재료의 맛을 더하는 식이죠. 한 접시 안에서, 식감과 풍미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조립하는 거죠. 장난스러운 캐주얼 요리 같아도 '이때 소금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나'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구워야 하나' 같은 디테일은 철저합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일본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60대 셰프들이 여전히 주방에 서 있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그전에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자문했지만 지금은 저도 그 나이까지 즐겁게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더 배우고 탐구하면서 매번 '이걸 이렇게 바꿔볼까?'라는 창의적인 장난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뮤땅'이 추구하는 요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단새우와 라비고트 소스를 곁들인 그린빈'. 장준우 제공


단새우와 라비고트 소스를 곁들인 그린빈◆단새우와 라비고트 소스를 곁들인 그린빈◆

<재료>
그린빈 60g
마늘쫑 40g
단새우 6마리
그린빈 잎 1장

<만드는 법>
1. 마늘쫑과 그린빈을 잘게 잘라서 잘 섞어준다
2. 단새우도 손질해서 먹기 좋게 다이스로 자른다.
3. 숯 위에서 그을리듯이 마늘쫑과, 그린빈을 구워주고 80% 익으면 단새우를 넣고 가볍게 익혀서 마무리 한다.
4. 접시 위에 구운 단새우, 마늘쫑, 그린빈을 올리고 그 위에 라비고트 소스를 올린 다음 딜, 처빌을 가볍게 오일에 버무려 접시에 담는다.
5. 그린빈 잎을 숯불 위에서 태우듯이 구워 위에 올린다.

◆라비고트(Ravigote) 소스◆

<재료>
디종머스타드 60g
화이트와인비네거 50g
베지터블 오일 300g
다진 케이퍼 28g
다진 코니숑 피클 40g
다진 파슬리 8g
다진 딜 6g
다진 처빌 6g
다진 샬롯 30g
후추 1g
소금 7g

<만드는 법>
1. 볼에 디종과 화이트와인비네거를 잘 섞은 다음에 오일을 넣어가면서 유화시킨다.
2. 허브와 피클 찹을 넣고 잘 섞은 다음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글·사진=장준우 셰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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