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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일곱색깔 무지개’로 분리된다는 것을 증명한 이는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1672년 뉴턴은 깜깜한 방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으로 바뀌고 볼록렌즈로 합친 빛이 두번째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시 백색광으로 바뀌는 실험을 했다. 이것이 가시광선(可視光線)이다. 사람들은 이 가시광선만이 빛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1800년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셀(1738~1822)은 프리즘을 통과해서 색깔별로 나눠진 빛의 띠를 조사하다가 ‘빨간색 띠 너머’(적외·赤外)에 열이 나는 구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CT(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 국보 ‘청자어룡 모양 주전자’는 여러 부위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보였다. 물레로 만든 항아리를의 옆면을 자른 다음 물을 따르는 용머리(주전자 입구)를 따로 제작해 붙였다. 물고기 모양의 몸체와, 연꽃 봉오리와 연잎이 달린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 날개처럼 솟은 지느러미 부분 등도 별도로 제작해 접합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적외선(赤外線)’이다. 1801년 독일 화학자 빌헬름 리터(1776~1810)는 ‘보라색 빛 너머’(자외·紫外)에서 형광작용을 일으키고 피부를 태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빛’을 확인했다. ‘자외선(紫外線)’이다.

1895년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1845~1923)이 ‘미지의 빛’을 발견했다. 전기 방전관으로 기체의 방전 현상을 연구할 때 시안화백금산바륨을 바른 마분지(두꺼운 종이)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뢴트겐은 이 빛을 ‘X선’(미지의 빛)이라 했다. 며칠 뒤 뢴트겐은 아내의 손을 X선으로 찍었다. 아내는 손뼈가 드러난 자신의 X선 사진을 보고 “내 죽음을 보았다”고 외쳤다. X선은 빠른 전자를 물체에 충돌시킬 때 발생하는 전자기파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아 물질 내부에 깊숙하게 투과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5년 뒤(1900) 프랑스 화학·물리학자인 폴 빌라드(1860~1934)가 라듐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을 연구하던 중 감마선을 발견했다.

국보 ‘청자 참외 모양 병’의 경우 참외 모양의 세로 골은 육안으로는 균일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CT 이미지의 각도를 측정해본 결과 147~156도로 확인되었다. 절정기에 이른 고려청자 장인의 손맛을 CT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 병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의 장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진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눈으로 본 국보경

문화유산을 논하면서 왜 ‘보이지 않는 빛’ 타령인가. 물론 가시광선으로도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또 외형을 분석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

카메라와 광학 현미경 등을 쓰면 된다. 단적인 예로 전복껍데기를 두께 0.3~0.8mm 정도로 가공해서 장식한 ‘고려나전’ 등은 어떤가. 나전 경전함의 경우 무려 2만5000개의 나전 조각이 사용되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때는 그래도 고려시대 아닌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중인 고구려 개마총의 벽화 조각을 적외선 및 초분광 촬영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넓은 띠 안에 구름 무늬와 함께 해 안의 삼족오가 그려진 것이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자그만치 2300년전 그와 같은 극초정밀 예술이 절정을 이뤘다. ‘국보경(국보거울)’으로 통하는 ‘정문경(다뉴세문경)’이다. 이 국보경(기원전3~2세기) 위에 그려진 선만 1만3000개가 넘는다. 선의 간격은 0.3~0.34㎜, 원의 간격은 0.33~0.55㎜에 불과하다. 그중에는 ‘아차! 실수’와 ‘인간미 듬뿍’의 흔적이 보인다. 우선 거푸집의 재료인 모래가 거울의 앞 뒷면에 걸쳐 혼입되고, 쇳물을 붓는 과정에서 거푸집이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박혀있는 현상 등 몇가지 흠결이 나타난다.

동심원의 한가운데를 장인의 손으로 ‘대충’(?)그린 흔적도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다치구 컴퍼스로 그린다해도 한가운데 부분은 동심원으로 표시하기 어렵다. 당대의 장인은 동심원을 정교하게 다 그려넣은 다음 마지막 원은 손으로 그려넣었을 것이다. 일말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2300년 전 장인의 센스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하나 착안점이 있다.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끈을 매달아 사용한 마찰 흔적이 두 고리(紐)에서 확인됐다. 이는 한 사람이 정문경을 하나의 끈을 두 개의 고리에 걸어 매달아 사용했음을 암시해준다.

개마총 벽화의 ‘천인상’에서는 뿔 모양의 머리장식에 펄럭이는 천의를 입은 사람이 확연하게 보였다. 행렬도 벽화에서는 양손을 다소곳이 모아 쥔 여성 4명이 주름치마에 두루마기를 걸친 모습으로 관찰됐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가시광선의 세계

최근에는 ‘가시광선+카메라’를 이용한 최첨단 기법까지 등장했다. ‘반사율 변환 이미지 분석(RTI·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이다. 이 기법은 조명의 각도를 조절함으로써 사물의 표면 반사율에 따라 생기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서 3차원 이미지를 얻는 촬영기법이다.

한마디로 카메라를 이용해서 360도 돌며 다양한 빛을 쪼아 문화유산의 표면 정보(글자 등)가 가장 잘보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법이다.

최치원(857~?)의 초상화(‘운암영당고운선생 진영’)를 X선 및 적외선으로 촬영한 결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은 ‘비밀 코드’가 드러났다. 적외선 촬영 결과 ‘초상화가 건륭 58년(1793년) 하동 쌍계사에서 제작되었다…’는 등 제작 시기·장소를 알리는 글이 모습을 드러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19년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공동으로 1979년 발견된 충주 고구려비문을 이 기법으로 읽었다. 그동안 마멸된 비석을 읽어내기가 지난한 과정이었는데, 이때 새롭게 19곳에서 23자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때 한 연구자가 비석의 윗부분에서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8글자 가로 제목을 판독했다. 즉 비문 내용은 ‘영락 7년(광개토대왕·397)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밝혀주는 중차대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주사(走射)전자현미경도 이용된다. 말 그대로 전자빔을 쏴서 피사체에 반사된 전자로 물체의 입체구조를 관찰하는 현미경이다.

최치원 초상화의 X선 촬영 결과 육안이나 적외선 촬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그림을 찾아냈다. 최치원의 좌우에 덧칠된 부분에 동자승 2명이 숨어 있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속살을 보려면…

가시광선의 한계는 유물의 속살까지 들춰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빛’으로써 물체를 투과할 수 있는 X선과 적외선, 자외선, 감마선 등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중 가시광선이 비해 파장이 긴 적외선은 공기 중에서 흩어짐이 적고 표면층을 투과할 수 있다. 나무의 표면에 스며있던 먹을 인식하기에 명문 목간의 판독에 유용하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형광 작용을 일으킨다. 때문에 도자기나 금속 문화유산 등의 수리된 부분을 찾는데 보조수단으로 이용된다. X선은 다른 빛에 비하여 파장이 훨씬 짧다. 때문에 강력한 물체 투과력을 갖고 있다.

‘X선 형광분석’으로 ‘숨은 그림’을 분석했더니 초상을 처음 그릴 때 사용했던 채색안료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1793년 제작 당시 최치원 초상화는 두 동자승의 공양을 받는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뜻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하지만 물질의 종류나 두께에 따라서 투과력은 달라진다. 따라서 X선으로 문화재의 내부 구조나 상태 그리고 성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X선의 한계가 있다. 물체(인체)의 내부를 한 장의 평면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컴퓨터 단층촬영(CT·Computed Tomography)’이다. 1970년대 개발된 CT의 원리는 방사선량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X선을 360도에 걸쳐 일정한 각도로 회전하면서 물체(인체)에 투사하고, 처음 쏜 방사선량 중 물체를 투과한 방사선을 측정한다.

최치원은 유·불·선 3교에 두루 통달한 인물로 전해진다. 이 초상화도 하동 상계사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최치원은 문묘(공자 사당)에 배향된 인물이다. 아마도 초상화가 쌍계사에서 화개 금천사-하동향교-최씨 문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교의 흔적(두 동자승)을 훼손되고, 그 부분에 책과 붓받침을 그려 ‘유학자 최치원’을 강조했을 것이다.


이 촬영 과정에서 얻은 수천 장의 2차원 X선 이미지는 재구성 과정을 거쳐 3차원 입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물질의 성분을 알아보려면 ‘X선 형광분석법(XRF)’을 적용한다. 즉 물질에 X선을 쐈을 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특성에 따른 고유의 형광X선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한 X선은 모든 원소마다 고유의 에너지 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측정하여 물질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CT를 통해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마라’는 경계의 뜻으로 만든 ‘계영배(戒盈杯)’의 속살도 들여다봤다. 계영배는 술이 70% 정도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관찰결과 계영배에는 잔을 기울이지 않고도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서 구부러진 관을 이용하여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사이펀(siphon)의 원리’가 담겨있었다.


■사라진 동자승

문화유산의 점검은 이러한 다양한 첨단장비로 교차 측정한 뒤에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다.

최치원(857~?)의 초상화(‘운암영당고운선생 진영’)가 대표적인 사례다. X선 및 적외선 촬영결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은 ‘비밀 코드’가 드러났다. 적외선 촬영 결과 초상화가 ‘건륭 58년(1793년) 하동 쌍계사에서 제작되었다…’는 등 제작 시기·장소를 알리는 글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X선 촬영으로는 최치원의 좌우에 덧칠된 부분에 ‘숨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명의 동자승이었다. 왼쪽 동자승은 반신상, 오른쪽 동자승은 손을 턱까지 들어올려 최치원을 공양하는 전신상이었다. ‘X선 형광분석’(XRF)으로 숨은 그림을 분석했더니 최치원 초상을 처음 그릴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채색안료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1924년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말 탄 인물 모양 도기’의 CT 결과 깔대기 모양의 구멍 안에 물이나 술을 넣고 다시 말 가슴에 있는 대롱을 통하여 물을 따를 수 있는 주전자로 제작된 것임을 확인했다. 금령총은 5살 정후의 왕자 무덤으로 추정된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793년 제작당시 최치원 초상화는 두 동자승의 공양을 받는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책을 베개로 삼고 풍월을 읊었으며,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했다”는 <삼국사기> ‘열전·최치원’ 기록과 “어느날 아침 갓과 신발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고운집> 등의 내용을 토대로 ‘신선 최치원’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누군가 의도적으로 두 동자승을 지우고 그 위에 다른 그림(오른쪽 하단에는 서책을 쌓아놓고, 왼편에는 붓꽂이와 향로가 놓인 사방탁자 및 붓 받침)을 덧칠한 것이 틀림없다. 누가, 왜, 언제 그랬을까.

최치원은 유·불·선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여겨졌다. 1793년 완성된 최치원 초상화는 사찰(쌍계사)에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치원은 ‘동방의 문종(文宗·문장과 문학의 비조)’으로써 문묘(공자 사당)에 배향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사찰의 벽에, 그것도 동자승의 공양을 받는 신선으로 그려져 있었으니 유생들의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아마도 이 초상화가 사당(화개 금천사·1825)-하동향교(1868)-운암 영당(1924) 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교의 흔적(동자승)을 지우고 그 부분에 책과 붓받침을 그려 ‘유학자 최치원’을 강조했을 것이다.

CT로 국보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사발’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꽃(국화)무늬를 찾아냈다. 분석결과 그릇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유약의 두께가 두꺼워지고(1.00㎜), 내부 바닥에는 아예 유약층이 고여있었다. 그 유약층 때문에 꽃무늬가 가려진 것이다. 그걸 CT가 잡아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비격진천뢰의 비밀

평양 석암리 9호분 출토 ‘순금제 띠고리’(국보)는 어떨까. 이 띠고리는 얇은 금판을 두드려서 표면에 용 문양을 표현한 후, 푸른색의 터키석과 붉은 색의 안료로 장식하여 만든 허리띠 장신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사(走射)전자현미경’과 X선, XRF 등을 동원하여 순금제 띠고리의 성분과 제작기법을 밝혀냈다. 그랬더니 금의 순도는 순금(24K)에 가까운 22.8~23.8K로 측정됐다. 관찰결과 바탕 금판의 두께는 약 0.3~0.7㎜, 표면을 장식한 금선의 두께는 0.2~1.1㎜ 정도였다. 특히 용의 표현에 쓰인 금알갱이의 지름은 0.3~1.6㎜에 불과했다. ‘미시 세계의 금알갱이’라 할만하다.

조선시대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는 어떠한가. 비격진천뢰는 목표물까지 날아가 터지는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조선 시대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시한폭탄’이 비격진천뢰이다. CT 촬영과 감마선 투과 촬영 결과 비격진천뢰의 단면에 기공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진에 떨어져 잘 터지게 만든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런데 박물관의 CT 촬영과 감마선 투과 촬영 결과 비격진천뢰의 단면에 기공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진에 떨어져 잘 터지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또하나 착안점이 있었다. 비격진천뢰의 벽 두께가 부위에 따라 달랐다. 즉 쇳물 주입구와 살상용 쇳조각 및 심지를 꽂아넣는 뚜껑 부분은 두껍게 한 반면, 옆면은 상대적으로 얇게 설계했다. 이유가 있었다. 쇳물 주입구와 쇠조각을 넣은 뚜껑 부분이 두꺼워야 한다. 그래야 폭탄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폭발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반면 옆면은 되도록 얇게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목표물에 떨어진 비격진천뢰가 그 얇은 부분으로 일시에 터지게 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본체는 잘 깨지는 주조기법으로, 뚜껑부분은 질기고 강한 단조기법으로 제작했다. 이런 세심함 덕분에 일본군이 벌벌 떨만큼 위력적인 시한폭탄을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격진천뢰는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폭탄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터지면 안되었다. 그러려면 쇳물 주입구와 쇠조각을 넣은 뚜껑 부분이 두꺼워야 한다. 반면 땅에 떨어진 뒤에는 일시에 터져야 한다. 그래서 옆면은 얇게 제작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비격진천뢰의 본체는 잘 깨지는 주조기법으로, 뚜껑부분은 질기고 강한 단조기법으로 제작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고려 장인의 손맛

국립중앙박물관은 2017년 국내 최대 전압의 ‘컴퓨터 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CT)’ 장비를 도입했다.

얼마전 2017년부터 7년간 CT 장비로 조사한 770여건의 문화유산 중 대표적인 재질의 소장품을 정리한 결과를 책자(<컴퓨터 단층촬영(CT)을 이용한 문화유산의 해석과 이해>)로 꾸며 발간했다. 이중 눈길을 끄는 사례는 국보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와 국보 ‘청자 참외 모양 병’이다.

적외선 촬영으로 백제 무령왕비의 베개 위에 쓰여진 ‘甲(갑)’ ‘乙(을)’자를 확인했고, 경주 천마총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의 또렷한 갈기 문양을 찾아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먼저 ‘어룡 모양 주전자’를 보자. CT 촬영 결과 이 주전자는 여러 부위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역력했다.

몸체는 물레를 이용하여 항아리를 만들어 한쪽 측면을 자른 다음 주머니 형태로 좁혔다. 여기에 물을 따르는 용머리(주전자 입구)를 따로 제작해 붙였다. 물고기 모양의 몸체와, 연꽃 봉오리와 연잎이 달린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 날개처럼 솟은 지느러미 부분 등도 마찬가지였다.

국보 ‘청자참외모양병’은 고려청자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작품이다. CT 결과 몸체를 물레 성형한 다음 눌러서 참외 모양으로 만들고 목을 따로 제작하여 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참외 모양의 세로 골은 육안으로는 균일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CT 이미지의 각도를 측정해본 결과 147~156도로 확인되었다. 절정기에 이른 고려청자 장인의 손맛을 CT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국보 반가사유상의 속살은 감마선 촬영으로 확인했다. 그중 7세기 초 제작된 반가사유상(옛 국보 78호)의 경우 두 개의 철심틀로 머리와 몸체를 따로 빚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면 그보다 50여 년 정도 늦게 제작된 반가사유상(옛 83호)은 1개의 칠심틀로 몸체와 머리를 한번에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사이펀의 원리, 계영배의 교훈

CT를 통해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마라’는 경계의 뜻으로 만든 ‘계영배(戒盈杯)’의 속살도 들여다봤다.

계영배는 술이 일정한 한도(70%)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잔을 기울이지 않고도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서 구부러진 관을 이용하여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사이펀(siphon)의 원리’가 담겨있다. 계영배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상도>에서 ‘주인공 임상옥(1779∼1855)이 늘 이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도 큰 재산을 모았다’고 기술한 데서 유명해졌다. ‘계영배’ 교훈의 유래는 멀리 공자 시대까지 올라간다.(<공자가어> 등)

즉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둘러보다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그릇을 발견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 그릇은 속을 비우면 기울어지고, 반쯤 채우면 바르게 서 있으며, 가득 채우면 엎어져 쏟아진다”면서 “그래서 명석한 군주는 항상 이 그릇을 곁에 두고 지극정성으로 모신다”고 했다.

공자는 “차면 양보하고, 겸손으로 지키면 그릇은 엎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2300년 전 제작된 청동거울인 ‘국보경’이 압권이다. 거울 위에 그려진 선만 1만3000개가 넘고, 선의 간격은 0.3~0.34㎜, 원의 간격은 0.33~0.55㎜에 불과하다. 인간미도 엿보인다. 다치구 컴퍼스로 그린다해도 한가운데 부분은 동심원으로 표시하기 어렵다. 당대의 장인은 동심원을 정교하게 다 그려넣은 다음 마지막 원은 손으로 그려넣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가려진 꽃무늬

CT로 밝혀낸 비밀은 국보 ‘말 탄 인물 모양(기마인물형) 명기’(1924·금령총 출토)에서도 드러난다.

겉으로는 그저 말을 탄 사람을 형상화한 조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CT 결과 인물 뒤에 있는 깔대기 모양의 구멍 안에 물이나 술을 넣고 다시 말 가슴에 있는 대롱을 통하여 물을 따를 수 있는 주전자로 제작된 것임을 확인했다. 말 내부의 체적을 계측한 결과 240㏄ 정도의 액체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또한 CT로 국보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사발’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꽃(국화)무늬를 찾아냈다.

이 사발의 외부에 국화무늬가, 내부에 넝쿨무늬가 장식돼있다. 궁금증이 생긴다. 고려 시대 장인이 애써 그렸을텐데 왜 보이지 않았던걸까. 유약 때문이었다. 분석결과 그릇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유약의 두께가 두꺼워지고(1.00㎜), 내부 바닥에는 아예 유약층이 고여있었다. 그 유약층 때문에 고려 장인이 새긴 ‘회심의 마무리’ 솜씨가 ‘아뿔싸!’ 가려진 것이다. 그걸 CT가 잡아냈다.

‘국보경’을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끈을 매달아 사용한 마찰 흔적이 두 고리(紐)에서 확인됐다. 국보경을 두 개의 고리에 걸어 매달아 사용했음을 암시해준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78호 반가사유상의 반전매력

CT뿐이 아니다. 옛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7세기 초반 제작)에 대한 감마선 촬영을 통해 육안은 물론 X선 촬영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흠결을 찾아냈다.

반가사유상의 등 부위에 반타원형 동판을 따로 붙인 흔적을 확인한 것이다. 주조할 때 생긴 구멍을 동판으로 붙여 수리한 흔적이었다.

내부의 칠심틀이 분리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즉 78호 반가사유상은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됐다. 철심틀에 점토로 불상의 원형을 정교하게 빚고 그 위에 밀랍을 입혀 원형대로 조각한 다음 재차 점토를 바른 후 청동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철심틀이 분리되었다면 점토로 맨처음 형상을 만들 때 몸체와 머리 부분을 각각 따로 만들어 붙였다는 뜻이다. 반면 78호보다 50년 정도 늦게 제작된 83호 반가사유상은 1개의 철심틀로 머리와 몸체 등을 한번데 빚었다.

가시광선 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은 공기 중에서 흩어짐이 적고 표면층을 투과할 수 있다. 나무의 표면에 스며있던 먹을 인식하기에 명문 목간의 판독에 유용하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 뿐이 아니었다. 왼발의 연화좌(불상이 앉는 자리) 역시 따로 제작해서 붙였다. 본체와 떨어져있는 천의 자락과 보관 장식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따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고, 그 사이에 청동 쇳물이 흘러들어가 까칠까칠한 부분이 생겼다. 왜 이런 흠결이 생겼을까. 78호 반가사유상의 두께(4㎜)가 너무 얇아 청동쇳물이 발끝, 머리끝까지 제대로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체와 천의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적은 청동 쇳물로 큰 불상을 만들기 위한 고육책이었을까. 아니면 그 당시 트렌드가 ‘날씬한 불상’이었을까. 이것도 반전의 매력이다. 6세기 중후반 활약한 78호 장인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육안은 물론 X선 등으로도 구별할 수 없는 절정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반가사유상을 만든 것이다.

X선은 다른 빛에 비하여 파장이 훨씬 짧아서 투과력이 강하다. 물질의 종류나 두께에 따라서 투과력은 달라진다. 따라서 X선으로 문화재의 내부 구조나 상태 그리고 성분 등을 파악할 수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적외선에 비친 삼족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중인 고구려 벽화 개마총의 조각편을 적외선 및 초분광(가시광선 너머 적외선 영역을 수백개의 구역으로 나눠 잘게 쪼개는 기술) 촬영 등을 통해 넓은 띠 안에 구름 무늬와 함께 해 안의 삼족오가 그려진 것을 확인했다. 또 천인상 벽화에서는 뿔 모양의 머리장식에 펄럭이는 천의를 입은 사람과, 양손을 다소곳이 모아 쥐고 주름치마에 두루마기를 걸친 여성 4명이 관찰됐다.

햇빛이 ‘일곱색깔 무지개’로 분리된다는 것을 증명한 이는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 이후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가시광선 외에 적외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발견되었다.


또 적외선 촬영으로 백제 무령왕비의 베개 위에 쓰여진 ‘甲(갑)’ ‘乙(을)’자를 확인했고, 경주 천마총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의 도렷한 갈기 문양을 찾아냈다. 언급한 사례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고고학 발굴로 깜짝 놀랄만한 자료를 찾는 것도 물론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자료와, 기존 수장고에 보관된 수많은 유물의 숨은 가치를 찾고, 병든 부위를 고치며, 제대로 복원·관리하는 일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수장고를 발굴하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히스토리텔러[email protected]

(이 기사를 위해 곽홍인·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허일권 학예연구사, 이영범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윤용이 명지대 명예교수, 장남원 이화여대 박물관장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참고자료>

최현욱·곽홍인·신용비, ‘비파괴 분석을 통한 최치원 진영의 도상 및 채색재료 연구’, <박물관 보존과학> 24집, 국립중앙박물관, 2020

박학수,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거푸집의 조각 도구와 방법’,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2019

김해솔·허일권,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출토 비격진천뢰의 제작기법과 보존처리’, <박물관 보존과학> 24권, 국립중앙박물관, 2020

민병찬,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방법 연구-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미술자료> 89, 국립중앙박물관, 2016

국립중앙박물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이용한 문화유산의 해석과 이해>, 2024

국립중앙박물관,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특별전 도록), 2020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보존과학 이야기>, 2013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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