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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조정 에비타 기준 흑자
쿠팡 인수 이후 1년 만에 가시적 성과

조직 슬림화·고객 경험 개선 등 집중
강도 높은 구조조정 이어져
[케이스 스터디: 성공에서 배운다]


2023년 세계 최대 명품 플랫폼 파페치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였다. 한때 기업가치 250억 달러(32조원)에 달했지만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며 한 해 적자만 1조원을 넘어섰다. 5억 달러(약 7000억원)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한 파페치는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 쿠팡은 파페치 지분 80.1%를 5억 달러에 사들였다. 시장에서는 ‘실패한 투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명품 플랫폼 산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쿠팡은 1년 만에 파페치를 턴어라운드시키는 데 성공했다. 분기 기준 ‘에비타(EBITDA, 상각 전 영업이익) 흑자’를 만들었다. 실적 발표 때마다 ‘파페치를 제외한’ 수익성을 강조하던 쿠팡의 태도도 달라졌다.
◆ 파페치가 달라졌다쿠팡의 손에서 파페치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조정 에비타는 3000만 달러(약 436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에비타 흑자는 세금과 이자 등을 제외하기 전의 영업이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업활동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조정 에비타는 비상장사 중심의 이커머스 업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증명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파페치가 분기 기준 에비타 흑자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쿠팡이 인수한 지 약 1년 만이다. 앞서 쿠팡은 2023년 12월 18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파페치를 인수한다고 공시했고 이튿날인 19일 파페치의 상장 폐지 절차를 개시했다. 인수를 완료한 시점은 2024년 2월 1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쿠팡의 파페치 인수를 부정적으로 봤다. 조정 에비타 흑자도 5년 이상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1년 만에 이런 숫자를 발표했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업계에는 당초 쿠팡의 파페치 인수가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투자 규모는 크지 않아도 6년(2017~2022년) 누적 적자만 26억 달러(약 4조원)에 육박하는 탓에 원금 회수 가능성조차 낮게 봤기 때문이다.

파페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900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분기별 조정 에비타는 △1분기 3100만 달러(약 450억원) 적자 △2분기 3100만 달러(약 450억원) 적자 등이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다. 3분기 에비타 적자가 200만 달러(약 30억원)로 크게 줄어들었으며 4분기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쿠팡도 예상보다 빠른 파페치의 흑자전환에 놀랐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파페치는 강조할 만한 성과”라며 “파페치의 손실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가우라브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분기에 성장 사업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달성했다”며 “파페치가 그 주인공이다. 파페치는 우리의 계획보다 일찍 손익분기점에 가까운 수익성을 달성했다. 우리는 고객 감동과 운영적 우수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데 계속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 비효율 없애고 고객 편의성 높였다실적은 표면적으로 계절적 성수기의 영향을 받았다. 명품 플랫폼 업계는 11~12월에 연중 최대 할인행사에 돌입한다. 이 시기 다양한 명품 브랜드 제품을 최소 50%부터 최대 90%까지 할인한다. 재고를 털어내고 연말 선물 수요를 잡기 위한 움직임이다.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구매할 수 있어 플랫폼의 거래액과 MAU(월간활성사용자)가 급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난드 CFO는 “매년 4분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계절성과 수익성, 특정 일회성 조정으로 이번 분기에 수혜를 입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파페치의 성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패션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쿠팡이 파페치를 잠재적인 파산으로부터 구해냈다”며 “쿠팡의 물류와 마케팅 역량을 활용하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절적 요인이 핵심은 아니다. 파페치는 지난 1년간 △조직 슬림화 △고객경험(CX) 개선 △운영 우수성(OE) 개선 등 3가지에 집중했다. 쿠팡은 재정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우선 파페치의 체급을 줄였다. 필요없는 비용을 걷어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C레벨 임원을 대폭 줄였다. 지난해 초 조제 네베스 창업자를 포함해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플랫폼책임자(CPO), 최고제품책임자(CP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이 사임했다. 창업자인 네베스는 인수 당시 파페치에 남을 것이라 밝혔으나 인수가 완료된 직후 사임했다. 현재 파페치는 김범석 의장이 총괄하고 있다.

영국 패션 매거진 드레이퍼스(Drapers)는 지난해 초 “파페치 영국과 포르투갈 등 임직원 2000명 중 25~30%에 감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네베스 CEO를 비롯한 상품과 마케팅, 재무 등을 책임진 기존 임원들도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비효율 사업부도 없앴다. 중국 명품전문매체 징데일리와 패션 전문지 등에 따르면 파페치는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에 기술이나 물류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파페치 플랫폼 솔루션스’ 사업부를 폐쇄했다. 가상시착체험 기술 회사 워너비(Wannaby)는 AI 기반 뷰티 업체인 퍼펙트콥(PERFECT CORP)에 매각했다. 워너비는 증강현실(AR) 3D 뷰어를 이용해 상품의 세부 정보를 보는 기술 기업으로 파페치는 이 회사를 영업적자가 1조원에 육박한 2022년 2450만 달러(약 317억원)를 주고 인수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동시에 앱 사용 편의성도 높였다. 사용자 이탈을 막기 위해 고객 경험을 적극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파페치의 고객 유입세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범석 의장은 “파페치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4900만 명이 매달 방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파페치를 하이엔드 K패션의 거점 플랫폼으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송지오, 김해김, 이명신(로우클래식) 등 여러 한국 신진 디자인 브랜드들이 입점한 상태이며 다양한 브랜드들의 입점이 논의되고 있다.

파페치는 쿠팡의 핵심 신사업이다. 김 의장은 “파페치, 알럭스와 함께 매력적인 글로벌 럭셔리 시장을 공략할 독보적인 입지를 갖추고 있다”며 “500조 규모의 글로벌 명품시장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명품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며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파페치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업계 1위 파페치, 어떤 기업?파페치가 등장한 2000년대에는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던 비중은 2%에 불과했다.

2007년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공한 포르투갈 출신의 사업가 조제 네베스는 온라인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판단했고 2007년 영국에서 ‘파페치’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멀다는 의미의 ‘파(Far)’와 가져오다라는 뜻의 ‘페치(Fetch)’를 합친 것으로 ‘멀리 있는 아이템도 빠르게 전달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패션에서 최고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으로도 최고는 아니지만 두 분야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패션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하고 싶었고 업계를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파페치는 2010년 첫 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며 2015년 DST글로벌파트너스가 주도한 투자에서 8600만 달러(약 1125억원)를 유치하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의 비상장사)으로 인정받았다.

2018년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도 성공했다. 상장 당일 주식은 공모가(20달러)보다 훨씬 높은 30.6달러까지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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