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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판사가 지귀연보다 못할까

랭크뉴스 2025.03.12 09:58 조회 수 : 0

[전문가리포트] 최한수의 경제현안 풀어보기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금요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지귀연·김의담·유영상)의 구속 취소 결정은 많은 이들에게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만큼이나 큰 충격을 줬다. 재판장을 맡은 지귀연 부장판사 자신도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법 문언상 ‘열흘’로 규정된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해, 윤 대통령을 9시간45분 초과 구금했다는 사실을 구속 취소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확립된 실무 관행과 법 해석의 일반론에서 한참 벗어난 논리 전개는, 오히려 판사가 석방이라는 결론을 먼저 정하고 논리를 짜맞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스스로 답해야 한다. 본인이 담당한 형사사건 가운데 동일한 사유로 석방을 한 다른 피고인이 있었는가.

이번 판결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깊은 분노 뒤에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법부 오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유효한 수단이 없다는 무력감이 놓여있다. 무력으로 헌법 질서를 뒤흔든 내란 세력에게는 탄핵과 형사 처벌, 선거라는 도구가 있지만, 판결을 통해 공화국의 질서를 위협한 판사에겐 그런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판사에게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다수결만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소수자 권익과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법부가 특정 집단 이익을 대변하거나, 심지어 스스로가 권력을 남용하는 이익 집단으로 전락할 때 발생한다. 이때, 판사에게 부여된 독립성은 ‘통제받지 않는 권한’으로 변질되어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시민적 가치와 동떨어진 사법부의 편향성이 첫번째 문제다. 하버드와 스탠포드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사는 변호사보다 보수 성향이 강하고, 특히 연방 법원과 주 대법원에선 보수성이 더욱 강하다. 가장 보수적인 연방 항소법원 판사들의 평균 이념 점수는 0.39로, 미국 변호사 평균 -0.5 대비 더 보수적(양수는 보수, 음수는 진보)이다. 이같은 정치 성향의 편향성은 공화당 행정부의 독주에 대한 법원의 견제 기능 약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 법조계가 미국보다 훨씬 더 동질적인 엘리트 집단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서오남’(서울대·법대·50대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대법관 구성, 법조일원화 뒤에도 ‘강남 출신-SKY 로스쿨-대형 로펌’으로 수렴되는 판사 지원자들의 획일화된 경력 경로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법원은 지난 10년간 법조일원화 제도를 시행하면서, 임용 경력의 법정 하한선인 최소 5년의 법조 경력을 “최적의 경력”으로 간주하여, 35살 이상 지원자의 법관 임용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35살을 기점으로 지원자 대비 합격률이 현저히 하락하는 패턴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법원이 나이와 무관하게 공정하게 지원자를 평가한다면 쉽게 나타날 수 없는 통계적 현상이다. 이러한 법조 인력 구성은 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보수 편향된 법조 기득권층 공고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법부 책임성은 어떻게 담보해야 하는가? 2004년 두명의 노벨 경제학상(장 티롤, 에릭 매스킨 교수) 수상자는 “언제 판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선거제도가 판사로 하여금 당선을 위해 유권자의 입맛에 맞춘 나머지 소수자 보호라는 가치를 망각한 대중영합적 판결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하지만 법원이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폐해가 심할수록 선거의 긍정적 효과는 강해진다. 유권자가 문제 법관을 사후적으로 심판할 기회를 제공하여, 사전적으로 유사 행태의 재발을 막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판사 선거제도가 유권자의 눈치를 과도하게 살피는 판결을 양산하여, 법원의 신뢰도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 우려한다. 하지만 현재 사법 시스템에서 판결은 어떠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연방 항소법원 판사들은 선거와 무관하게 선출되는 종신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판사보다 더 강한 신분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도 눈치를 본다. 그중 하나가 승진이다. 대법관 승진을 앞둔 미국 연방 항소법원 판사들의 판결을 분석한 한 연구는 연방 대법관 공석 발생 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판사들이 △대통령 이념과 일치하는 판결을 더 빈번히 내리며 △정부가 소송 당사자인 사건에선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확률이 2배나 올라가며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빈도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굳이 미국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발생한 ‘사법농단’ 사건의 본질은 대법원장이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인사권을 통해 부당하게 동원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에 연루된 다수 판사들이 합당한 징계나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현행 헌법상의 사법부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작동 불능임을 방증한다. 따라서 법원 선거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유권자가 직접 판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서초동 법원 앞에서는 자신의 사건번호와 판결을 내린 판사 실명을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단 이번 판결뿐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 반복될 때마다 시민들은 인공지능 판사를 대안으로 거론한다. AI 재판이 인간의 재판보다 더 공정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판결이 사실과 증거 확정, 법 해석에 근거한 객관적 판단이라고 강변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수많은 연구들은 △같은 사건이라도 판사에 따라 결과가 상이하고(왜 윤 대통령의 구속 기간만 시간으로 계산하는가) △같은 판사조차 비법적 이유로 결론을 뒤바꾸며(윤석열 이전에도 구속 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했는가) △법적 증거 해석마저 판사 개인 철학과 시대 상황 등 비법률적 요인에 영향받는다는 점(탄핵 반대 집회가 없었다면 이런 판결이 가능했을까)을 지적한다.

AI 판사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은 알고리즘 편향성 문제이다. AI 판사는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하여 사회적 차별을 심화시키고,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며, 맥락과 정황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 판사 또한 편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판사의 장점은 오히려 무오류성이 아닌 개선 가능성에 있다. MIT와 시카고 대학의 연구자들은 사법 체계에 적용되는 알고리즘 설계상 한계는 데이터 선택 편향 개선, 알고리즘 목표 재설정, 설명 가능한 AI 도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알고리즘은 불완전해도 끊임없이 개선 가능한 반면, 직관적 판단, 사회적 맥락, 정치적 신념 등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리는 인간 판사의 사고는 교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판사 선거 제도와 AI 판사 도입이 단시간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귀연 부장판사가 내린 이번 결정과 같은 문제적 판결이 되풀이될수록, 사법부에 대한 주권자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것이다. 머지않아 법관 선거제 도입 주장이 거센 여론을 형성하고, AI 판사 도입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급진적 변화가 사법 체계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제도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이견 또한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극심한 제도 불신 속 개혁은 합리적이며 사려 깊은 대안 모색보다, 파괴적 포퓰리즘적 해법으로 기울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난 유권자들이 기존 사법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위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이 모든 책임은 법원 스스로가 져야 할 것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사법부는 직시해야 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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