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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국가기관들 수준이 이런지 정말 몰랐다.”

검찰 출신의 한 지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한 토로였다. 수긍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그 이후 탄핵·수사·재판 과정에서 보인 국가기관들의 선택엔 동의하기 어려운 게 많았다.

물론 현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비상계엄을 ‘평시’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으로 여긴 건 경악할 일이었다. 더 경악한 건 체포 직전 “2년 반 임기를 더 해서 뭐하겠느냐”라고 한 것이다.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적인 숙명이 정치에 있다. 그 본질을 이해 못 했다면 윤 대통령은 정치 하면 안 됐다.

민주당에도 엄연한 잘못이 있다. 지금 위기의 하부구조 자체(수사권 혼란, 탄핵 등 입법 독주 등)는 민주당이 깔아놓은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법원 선고 전 대선’을 겨냥한 듯 조여드는 그물망이었다. 윤 대통령이 순진했다.
일련의 헌재 결정, 논란 키우고
수사 경쟁이 수사 망친 측면 있어
국가 아닌 이익집단 행보 아닌가

그러나 누구나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승복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상황을 심화시켜온 데엔 국가기관들의 '기여'도 상당하다고 본다. 국가가 아닌, 자기 이익(그게 어디든)에 봉직하는 듯하면서다.

먼저 헌법재판소다. 이미 초기에 ‘심판대 오른 건 헌재도 매한가지다’라고 썼다. 8년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달리 윤 대통령의 잘못이지만 윤 대통령만의 잘못은 아닌 걸 지적하면서다. 헌재가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내길, 지혜롭고 신중하길 바랐다.

헌재의 최근 결정을 보면, 그러나 그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며칠 일하지도 않은 방통위원장이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잘못을 했다고 본 재판관이 4명이나 됐다. 헌재를 9인 체제(현 8인)로 만들라고 결정했는데, 권한쟁의 청구 자격이 논란이 되자 국회에 보완하라는 ‘힌트’를 줬고, 보완했다는 이유로 인용했다. 자구(自求)였다.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선관위가 헌재와 마찬가지로 헌법기관이란 동류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란 외피를 두른 채 방만했던 건 외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8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뉴시스

헌재는 정작 국정 안정을 위해 절실한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한 판단은 미뤘다. 민주당이 내란죄도 철회했겠다, 복잡할 게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헌재의 선행 판단이 이러하다면 대통령 탄핵심판이 아무리 멀쩡하더라도 오해받기에 십상일 것이다. 그런데 절차적으로 “헌재에 상급법원이 있다면 문제 삼을 것”(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란 비판마저 나오게 진행했다. 과연 현명했나.

검찰·공수처·경찰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내란죄 수사권을 가진 정도는 동료 기자(임찬종)의 표현에 따르면 경찰〉 검찰〉 공수처다. 서로 드잡이하다가, 하면 가장 안 되는 데가 낚아채 갔다. ‘판사 쇼핑’ 논란까지 낳으며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하곤 수사는 못 했다. 복잡다단한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는 그렇게 망가져갔고 결국 구속취소 결정까지 나왔다.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직 간 경쟁심이 눈을 흐렸다.

이로 인해 불온한 공기가 더욱 불온해지고 있다.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욕을 먹게 돼 있고, 법원·수사기관은 성향 따라 고르는(또는 욕하는) 대상이 됐다. 미래를 내다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해도 이후 법원에서 공소제기 절차를 문제 삼아 공소기각 판결을 하는 가능성(최재형·김웅)까지 걱정하게 생겼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든 특검이든 수사해 기소하면 된다지만 그 혼란은 어떻게 할까. 만에 하나 일부 헌법학자들의 주장대로 법원에서 내란죄에 의문을 표시한다면?

한때 우리도 어느 정도 국가 수준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아니었다. 누구보다 국가의 높이에서 성찰해야 할 위기에, 국가기관이 개인이나 조직·집단 수준에서 행동했다.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이끄는 기관들이 오히려 위기를 키웠고 키우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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