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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공개한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폐쇄회로(CC) TV 영상에서 계엄군들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가리키고 촬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 청사의 사이버보안을 담당하는 이준일씨(가명)는 지난해 12월3일 오후 6시쯤 청사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여느 날과 같은 지루한 당직근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통합관제실에서 일하던 이씨는 밤까지 뉴스를 못 봐 비상계엄이 선포된지도 몰랐다. 그에게 계엄 사실을 알려준 것은 오후 10시40분 관제실 문을 두드린 계엄군들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여기가 서버실이 맞습니까?”

이씨가 “서버실은 밖에 있다”고 말하자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던 계엄군 3명은 이씨에게 “서버실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들은 잠긴 서버실 문도 열라고 했다. 말투가 거칠지는 않았지만 이씨는 계엄군 허리에 달린 권총이 신경쓰였다. 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 이씨는 “상부에 보고해야겠다”며 계엄군의 소속을 물었다. 그들은 “이미 보고 끝났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씨가 서버실 문을 열어주자 한 명이 무전을 했다. “치익. 서버실 장악 완료했습니다.”

총 찬 군인들, 당직실 들어와 “계엄령 선포됐다”

계엄을 사전에 모의한 군사령관들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작전을 펼쳤다. 가장 중요한 작전 중 하나가 선관위 서버·직원 장악이었다. “부정선거를 저질러 거대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입법 폭거로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윤 대통령에게 선관위 장악을 통한 부정선거 수사는 비상계엄의 동기이자 명분, 목적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선관위 작전은 군·경이 크게 4개 조직으로 공조하는 형태로 전개될 예정이었다. 국군 정보사령부가 소수 요원을 선관위로 보내 우선 서버를 빠르게 확보하면 육군 특수전사령부가 경찰과 함께 대량 병력을 투입해 청사를 봉쇄하고, 이후 사이버수사 역량을 갖춘 국군 방첩사령부가 서버를 넘겨받아 수사한다는 계획이었다. 별개로 퇴역 군인 노상원씨가 지휘하는 별동 수사조직 ‘제2수사단’이 선관위 직원을 붙잡아 수사한다는 구상도 있었다.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은 그 첫 작전의 팀장으로 임관 동기인 고동희 정보사 계획처장(대령)을 낙점했다. 그는 고 처장에게 “말귀 알아듣는 참모부 소령 8명을 선발해 팀을 꾸리고 선관위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서버실 확보·출입통제·외부연락 통제 등 구체적인 임무를 내렸다. 그렇게 선관위에 침투한 정보사 요원들은 서버를 장악하는 동시에 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직원들을 청사에서 쫓아냈다. 외부에서 들어오려고 하는 직원은 막아섰다.

그날 당직실에 혼자 있던 선관위 주무관 신욱현씨(가명)도 오후 10시30분쯤 당직실에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휴대전화를 뺏겼다. 계엄군 7명가량은 당직실 유선전화 4대의 코드를 모두 뽑아 한곳에 모아놓고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게 했다. 신씨는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제지당했다. 청사 순찰을 돌던 당직 방호원 김신구씨(가명)도 얼마 뒤 당직실로 끌려왔고 휴대전화를 뺏겼다.

신씨는 검찰 조사에서 “유독 한 명이 ‘2층 서버실이 어디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계엄군이 질문을 바꿨다. “신관 2층은 어디입니까”. 검찰은 이들이 신관 2층에 서버실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물어봤다고 판단한다. 신씨가 ‘저쪽이 신관’이라고 하자 계엄군은 두 명만 남고 사라졌다. 당직실을 빠져나온 정보사 요원들은 신관 2층에서 이준일씨를 앞세워 서버실로 진입했다. 고 처장은 서버실 사진을 찍어 문 전 사령관에게 보내면서 첫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했다.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연합뉴스


서버를 장악한 계엄군은 선관위 직원들을 본격 통제하기 시작했다. 당직실과 통합관제실로 나눠 이씨와 신씨 등 당직 직원 4명을 각각 감시했다. 통합관제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다른 직원을 발견하면 즉시 찾아가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했다. 당직은 아니지만 남아서 일하고 있던 직원이 있으면 청사에서 내보냈다. 컴퓨터는 허락을 맡고 쓰도록 했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계엄군이 붙었다.

“이거 합법적인 거 맞습니까”

“선관위를 확보한다고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작전 투입 한 시간 전인 오후 9시30분쯤, 선관위 앞 검정 카니발 승합차 안 차량에서 처음 구체적인 임무를 들은 이우석(가명) 정보사 소령이 고 처장에게 되물었다. 당황한 것은 이 소령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선관위에 들어갈 명분이 무엇입니까”. 옆자리 요원이 거들었다.

현장에 투입됐던 정보사 소령들은 검찰 조사에서 “우리도 선관위 직원들만큼이나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계엄 당일 오후 처음 소집명령을 받았다. 모이고 보니 서로 모르는 사이도 많았다. 이 소령은 소집될 때까지만 해도 과거 ‘황장엽 탈북 사건’처럼 고위 탈북자를 호송하는 임무일 거라고만 짐작했다고 한다. 팀원을 선발한 서현광(가명) 정보사 중령이 이 소령에게 “주변에 ‘와꾸(외모)’ 괜찮은 친구 없느냐”고 물어봤던 것이 추측의 근거였다.

그러나 고 처장의 지시로 오후 8시 요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들은 지시는 “선관위로 출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고 처장은 시원하게 답을 못했다.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 일대에서 상황이 있는 것 같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이 소령 등은 “이거 합법적인 것이 맞습니까”라며 계속 의심했다.

고 처장과 9명의 요원들은 작전 지형을 사전에 정찰해보자며 승합차 2대를 나눠 타고 선관위로 일단 출동했다. 오후 9시30분쯤 고 처장이 돌연 문 전 사령관으로부터 “오늘 임무를 해야겠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문 전 사령관은 고 처장에게 선관위 장악 지시를 내리면서 “22시쯤 텔레비전 언론 보도를 통해 속보가 나올 텐데 그걸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고 처장은 명분과 적법성을 묻는 부하들의 질문에 “명분은 텔레비전 보면 알 수 있다”며 윗선 지시를 그대로 전했다. 이들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선관위 장악 계획을 짰다. ‘2인1조 4개팀’을 만들어 초소, 서버실, 불이 켜진 건물 좌·우측 사무실을 각각 맡기로 했다. 고 처장과 서 중령은 상황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던 도중 오후 10시30분쯤 승합차 DMB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요원들은 웅성거렸다. “우리가 선관위에 들어가는 것이 적법해질 사유가 계엄이었어?” 그러나 반대하는 요원은 없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우리가 모르는 큰일이 벌어졌구나’ ‘간첩이 선관위에 침투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서 중령이 고 처장에게 “이겁니까”라고 물었고, 고 처장은 “방송 끝났으니 바로 들어가라”고 답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국방위 긴급현안질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밤의 해프닝?…선관위 직원들 “잠 못 잘 정도로 괴로워”

현장 요원들과 사전 교감 없이 명령이 급하게 내려지자 현장은 다소 엉성하게 돌아갔다. 정보사 요원들은 선관위를 장악한 뒤 당직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것을 봤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정이 지나 12월4일 0시20분쯤, 갑자기 선관위 당직실에 사복 차림의 특전사 요원이 들어왔다. 고 처장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신욱현씨가 소속을 묻자 특전사 요원은 “특전사 제3공수여단이다. 곧 특전사 병력 110명이 더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고 처장이 황급히 대화를 중단시켰다.

고 처장이 이를 문 전 사령관에게 보고하자 문 전 사령관은 “방첩사의 정성우 처장도 갈 것”이라며 “방첩사가 오면 서버실을 인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작 방첩사 요원들은 선관위에 오지 않았다. 당일 선관위 출동 명령을 받은 송제영 방첩사 과학수사센터장(대령)은 위법한 지시일 가능성 등을 고려했고, 우선 출동한 뒤 팀원들과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이후 복귀 지시를 받고 부대로 돌아갔다.

정보사 요원들은 당직실에서 선관위 직원들과 함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 과정을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1시30분쯤 문 전 사령관이 철수 지시를 내렸다. 서 중령이 “서버는 누구에게 인계합니까”라고 묻자 고 처장은 “그냥 가자”고 말했다. 서 중령은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그런데 이 새끼들은 오기로 해놓고 왜 안 와”라는 고 처장의 혼잣말을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선관위 서버를 탈취하고 직원들을 붙잡아두려던 계엄군의 계획은 하룻밤 촌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너무 무서웠고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날 당일에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고 말했다. 신씨 역시 검찰에 “진짜 중요한 건 (계엄군이) 선거인 명부가 있는 서버에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라며 “선관위 직원들은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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