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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병 케어닥 대표 인터뷰
박재병 케어닥 대표를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케어닥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2018년 3명으로 시작한 이 에이지 테크 스타트업은 강남 오피스에만 80여 명의 정규직이 근무하는 회사로 컸다. 전민규 기자
박재병(36) 케어닥 대표는 한국 1세대 여행 인플루언서다.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ROTC 장교로 제대한 후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아일랜드부터 볼리비아·호주·미국·일본까지 전 세계를 거의 무전 여행하며 쓴 SNS와 블로그 글로 당시 2030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이런 이력만 보면 집에 돈 좀 있는 한량 아닐까 싶지만 정반대다. 집에서 차로 1시간이나 떨어진 초등학교 분교 입학 전까진 부지깽이 연탄 때는 9평(30㎡) 초가집에 살았고, 중학교 가서야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봤다. 원래 넉넉하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 아버지의 뇌졸중, 어머니의 독박 병시중이 겹쳐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며 더 가난해졌다. 이때부터 가난은 그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어떻게 이 대를 잇는 운명과도 같은 빈털터리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
흔히 2030은 이미 선진국 된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이자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거라고들 한다. 그런데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에 태어나고도 웬만한 60~70년대생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박 대표는 "부의 세습에 따른 양극화, 계층 사다리 단절" 운운하는 자조적 한국 사회 분위기를 뚫고 혼자 힘으로 보란 듯 가난의 고리를 끊었다. 지난 2018년 원룸 보증금 500만원 빼서 시작한 노인 돌봄 스타트업 '케어닥'이 2023년까지만 31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흙수저 3세 가난 탈출 프로젝트
운명 바꾸려 떠난 세계 무전여행
결국 노숙자·쪽방촌 할머니가 답
500만원을 수백억 투자 만든 비결

지난 5일 서울 선릉역 케어닥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나 4시간 가까이 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농업적 근면 성실을 가르쳐준 아버지와 시어머니 치매 독박 간병에 이어 남편 병시중 중에도 가족 몰래 장롱에 한글 연습장 두고 독학했던 무학의 어머니를 필두로 방랑길에서 만난 노숙인, 부산 쪽방촌 할머니까지 그가 방랑길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어떻게 그의 스승이 됐는지도 흥미로웠다. 남다른 여정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가난과 연민, 아버지 어머니 대대로 쌀농사 짓던 경남 진주 덕오리 박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키우던 소 외양간보다 작은 아홉 평 초가집에서 부모님과 누나 넷까지 일곱 식구가 살았다. 이웃 20여 가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농기계 실은 트럭이 아니라 세단 타는 부모 둔 친구들 보며 빈부 격차를 처음 실감했다.

급기야 보일러 때는 집으로 이사한 후 기름값 아낀다고 겨울 냉골에서 주무시던 아버지 혈관이 터져 뇌졸중이 오면서 가세는 더 기울었다. 아버지가 석 달 병원에 입원할 동안, 어머니 혼자 새벽에 차로 1시간 떨어진 병원에 가서 남편 수발드느라 수확한 토마토 내다 팔기도 어려웠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수년간 시어머니 독박 치매 간병도 모자라 집안일과 농사일, 남편 병시중까지 드는 어머니가 불쌍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할 순 없었다. 퇴원 후 성치 않은 몸임에도 농업적 근면 성실함은 여전했다. 또 배움은 짧았지만 농사에 관한 판단은 빨랐다. 쌀농사에서 비닐하우스로, 토마토에서 딸기로 발 빠르게 전환하면서 몇 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대대로 가난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정적 월급 나오는 지역 농협 텔러, 아니면 교사를 권했다.
지난 2015년 세계 무전 여행 중 현지 스시집에서 청소 알바하던 모습. [사진 박재병]
자식들 생각은 달랐다. 어느 날 누나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우리도 가난할 게 뻔한데 취업해서 고작 한 달 100만~200만원 벌어봐야 달라지지 않는다"며 "너는 좀 다르게 살아라"고 했다. 이때부터 '가난의 대(代) 끊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누나들은 막내에 '몰빵'할 마음이었고, 난 가난 끊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찾은 답은 대기업이었다. 형님뻘 동네 어른이 '삼성전자 연구원 됐다'고 동네에 플래카드 걸렸던 게 떠올랐다. 세단 타고 와서 1000원 아닌 1만 원짜리 용돈 쥐여주는 걸 보고 "대기업 가면 인생이 바뀌는구나" 싶었다. 삼성 가려면 좋은 대학을,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고3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한테 MP3와 인터넷강의 수강권, 문제집을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남들이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기에 난 매일 3당4락 마음으로 살았다. 국어 3, 영어 6, 수학 7등급이던 성적을 수능 때 수학(3등급) 빼고 모두 1등급으로 올려 부산대 경영학과에 갔다.
사회적 냉담, 노숙자 대기업 가기 위한 스펙 쌓으려면 회계학 같은 전공 학점을 잘 받아야 했는데 어려웠다. 감이 왔다. 공부로는 안 된다. 다른 경쟁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뚫은 돌파구가 리더십이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학생회장하고, 대기업 취업에 유리하다는 ROTC를 했다.

전역 무렵 삼성물산·CJ·이랜드에 합격해 이 대기업 다니는 ROTC 선배들을 만났는데, 그 삶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인생 바꿀 꿈을 꿨던 선배들이 연봉과 시계·차 타령하는 걸 보니 첫 질문으로 돌아갔다. "왜 돈을 벌려고 했지, 아니 왜 태어났지?"

일단 한국을 뜨기로 했다. 회피와 도피를 순례와 수행으로 포장했다. ROTC 하며 모은 2000만원 들고 나선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아일랜드 더블린을 택했다. 홈스테이하며 어학원 다니면 1년은 버틸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잔고가 바닥났다. 지금껏 어렵게 살아온 데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술 먹고 클럽 다니며 탕진해버린 거다.

일본 레스토랑에 무작정 찾아가 제안했다. "무급으로 일할 테니 밥만 줘. 일주일 시켜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잘라. 신고 안 할게. "

수 셰프(부주방장)가 청소를 맡겼다. 무급이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며 새것처럼 닦았다. 그걸 본 사장이 유급 자리를 제안했고, 난 "다른 매장 청소까지 하겠다"고 역제안했다. 거기에 재료 준비까지 맡으면서 하루 18시간씩 8개월을 일했다. 돈은 벌었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없을까 봐 무섭기도 했다.

당시 쉬는 짬짬이 길에서 노숙자들이랑 담배 나눠 피며 사는 얘기할 만큼 친해졌는데, 한 젊은 노숙자가 "넌 우리를 절대 모른다"길래 아일랜드 떠나기 전 딱 일주일만 노숙하기로 객기를 부렸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그 컵으로 구걸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난 그냥 없는 사람이었다. 반나절 만에 공포가 엄습했다. 그날 밤 공원에서 만난 나이 든 한 노숙자 아저씨가 "젊은 친구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며 자기 밥 나눠주며 돈 몇 푼 쥐여줬다. 사람대접받곤 눈물이 터졌다.
지난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LA에서부터 워싱턴까지 오토바이 여행을 했다. 끝내 오바마는 못 만났지만, 이 여행을 통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진 박재병]
노숙은 바로 접었지만 이를 계기로 사람을 더 만나기로 했다. 모아둔 800만원, 여기에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를 내걸고 모은 크라우드 펀딩(와디즈)까지 더해 2년 동안 비행기 17번 타고 히치하이킹하며 여행을 이어갔다. 최종 목표인 오바마 미 대통령 만나기는 실패했지만, 돈 없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사각 속 돌봄, 쪽방 할머니 긴 여행 끝에 인생을 바꿀 답은 못 찾은채 한국에 돌아왔다. 페이스북 팔로워 8만, 때로 1000만 뷰 이상 나오는 '대박' 포스팅으로 얻은 유명세를 바탕으로 선배 형과 부산에서 여행사를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이상하게 저소득층 교육 관련 볼리비아 자선단체에서 봉사하던 때가 생각났다.

카메라 들고 부산 쪽방 할머니들 사는 동네에 출사를 갔다. 넉살 좋게 물 얻어 마시겠다고 집에 가보니 이런 참상이 없었다. 그런데 말 몇 마디 걸어줬다고 할머니들은 숨겨둔 쌈짓돈 5만원을 내줬다. 다시 안 갈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버스 대절해서 같이 여행가는 등 내 돈 수천만 원은 족히 쓰며 봉사했는데, 할머니들 삶은 1년 전과 똑같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정부는 왜 이걸 알면서도 내버려 둘까.
3년 가까운 해외 방랑을 마치고 귀국해 여행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부산 쪽방촌 봉사를 열심히 했다. 그 시절인 2017년 만난 할머니와 함께. [사진 박재병]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평생 고생한 엄마에 대한 연민이 겹치며 노인 문제가 갑자기 가족 문제, 내 문제로 훅 다가왔다. 가뜩이나 유명세 팔아 탐탁지 않은 여행 상품 파는 게 싫었던 터라, 여행사를 나와 창업했다. 뭐든 노인 문제를 하자.

문제는 또 돈이었다. 원룸 보증금 뺀 500만원이 전부였다. 여행 중 알게 된 사람 소개로 어찌어찌 개발자 2명을 찾긴 했는데 월급 줄 돈은 없었다. 꿈을 팔았다. "토스, 배달의민족 될 거야. 보장은 못 하지만 나랑 하자. "

이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회사 첫 매출은 창업한 2018년 12월 무슨 대회 상금 80만원이었다. 닥치는 대로 대회에 나가 5000만원을 벌었다. 어떤 대회에서 누가 "투자자"라며 명함을 주길래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진짜 큰 투자를 하는 곳이었다. 2019년 3월 1억 1000만원을 투자받았다. 투자심사역 4명 중 3명이 반대했는데, 나머지 1명이 "노인 스타트업은 서울대·카이스트나 의대 나온 고상한 애들 말고 미친놈이 해야 한다"고 관철했다고 한다. 그 "크레이지 가이"가 나였다.

요양시설 찾기 플랫폼, 간병인 매칭에 이어 최근엔 KB 등 굵직한 금융회사와 현대건설 등 대기업 계열 건설사, 글로벌 사모펀드까지 뛰어든 시니어 하우징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각종 규제는 여전하고, 덩치 큰 기업 공세는 점점 거세지만 난 자신 있다. 이 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크레이지 가이'라서다. 가끔 회사 팔라는 제안이 온다. 100억, 아니 500억원에 회사를 사 가면 노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까, 그보단 수익화만 좇을 거 같다. 가난의 고리를 끊고 한국 현안을 해결해 내 애국심까지 충족시킬 인생의 답을 여기서 찾은 만큼 어려워도 버틸 거다.
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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