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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장안구에서 9일 오전 아버지가 투신해 숨지고 이튿날 부인과 10대 아들·딸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손성배 기자


" 부부는 금슬 좋고 아이들은 인사 잘하는 착한 가족이었는데…. "
지난 9~10일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 장안구 일가족에 대해 같은 아파트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숨진 아버지 A씨(50)는 2012년 12월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하며 영어 공부방을 운영했다. 주거 밀집 지역인데다 주변에 초·중·고교가 인접해있어 공부방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11일 경기남부경찰청과 수원중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4시 30분쯤 장안구 정자동 소재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A씨가 발견됐다. A씨와 가족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아파트 경비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은 A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A씨는 이 아파트 가장 높은 층 계단참에서 투신했다.

경찰은 이튿날인 10일 오전 11시쯤 A씨 가족 집 안방에서 부인 B씨(43)와 아들(14), 딸(12)을 발견했다. A씨가 공동주택 현관에서 발견된 지 30여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경찰은 다른 지역에 사는 A씨 형제에게 연락해 현관 비밀번호를 확보하고 집 문을 열었다고 한다. 방 안에는 불을 피운 듯한 흔적이 있었고, 세 명의 몸에선 타박상도 발견됐다.

수원중부경찰서 전경

경찰은 A씨 가족 비극의 원인을 투자 실패로 보고 있다. A씨가 해외 직접구매 대행 법인 등에 3억여 원을 투자했다가 약속된 수익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비관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A씨 부부 공동명의의 이 아파트엔 지난해 7월 7억8000여만 원의 금융기관 근저당이 설정됐다. 부동산 융자금 중 절반가량을 비슷한 시기 해외 직구 물품을 소셜커머스에서 유통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수익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이런 상황을 비관해 가족들을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수원시 등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복지 사각지대 통보 이력 등은 없었다.

이웃들은 “A씨 가족이 주말마다 자주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A씨의 SNS 프로필도 가족들 모두 함께 선글라스를 쓰고 유채꽃밭에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또 다른 주민은 “가구를 끄는 생활 소음이 더러 있었지만 큰 소리 한 번 안 나고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 보였다”고 했다. 13년 차 아파트 경비원은 “500세대가 넘는 주민 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이 인사성이 바르고 쾌활해 기억한다”고 말했다.

단지 안에서 가장 큰 평수(194㎡)에서 살던 A씨는 방 하나를 공부방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현관문엔 ‘누구에게나 특별한 유익이 허락되는 건 아니다’라는 영어 격언이 쓰여 있었다. A씨 공부방에 고등학생 자녀를 보냈다는 이웃은 “선생님(A씨)이 좋은 고등학교,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였다”며 “주말마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고 운동(골프)도 종종 다니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황망해 했다.

유족 조사를 마친 경찰은 이날 A씨 가족 시신 4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 의뢰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며 “금전 문제로 일가족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채권·채무 관계인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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