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다양화로 새 소비층 공략
대용량 ‘역슈링크’로 불경기 대응
“소비 패턴 변화 맞춰 변화”
‘술병 크기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아라.’
차별화에 목마른 주류업계가 ‘용량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 심화와 경기 침체 속에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존 제품과 눈에 띄게 다른 다양한 용량의 제품을 내놓는 모습이다.
1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대전·충청 향토 소주 업체 선양소주는 지난 4일 참나무통 숙성 원액을 희석식 소주에 섞은 ‘선양 오크’를 GS25 편의점에서 출시했다. 이 제품은 일반 소주(360ml)보다 78% 큰 640ml 용기에 담아 판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역슈링크(逆shrink·용량을 늘리고 평균 가격은 내림) 전략이라 부른다. 양을 줄이면서 가격을 그대로 둬 ‘꼼수 인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슈링크플레이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선양소주는 지난해 3월 GS25와 참나무통 숙성을 하지 않은 일반 소주를 640ml 대용량으로 시험 판매했다. 편의점 판매가를 기준으로 375ml 소주는 1ml에 약 6원 정도다. 선양소주 제품은 용량을 늘려 1밀리리터에 4.7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선양소주에 따르면 이 제품은 젊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출시 50일 만에 첫 주 대비 매출이 95% 가까이 증가했다.
360ml 소주병에 담긴 ‘7.2잔’의 비밀
소주병 크기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했다. 현재 표준은 360ml다. 1980년대 500ml, 1990년대 375ml를 거치며 점차 줄어든 결과다.
소주병 360ml는 50ml 소주잔으로 따르면 7.2잔이 나온다. 한 병에 7잔 반이라는 애매한 숫자는 소비자들에게 ‘한 잔 더’ 심리를 자극한다고 주류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소주 1병 용량이 한국 전통 측정 단위 ‘홉’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진로소주가 처음 등장한 1924년 당시, 시판하는 음료 한 병은 보통 2홉(약 360ml)이었다. 이제 홉 단위가 사라지고 리터가 보편화됐지만, 이 용량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작아진 병, 커진 매력... 소형 용량의 반격
반대로 주종에 따라 표준 사이즈보다 작은 용량이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다.
편의점 업계에는 2022년 1인 가구를 위한 반병(375ml) 와인이 등장했다. 2022년은 팬데믹으로 혼술과 집술 열풍이 확산하면서 한창 와인이 많이 팔렸다.
그러나 상당수 소비자가 와인 750ml 1병을 한 번에 다 마시기 어려워했다. 남겨둔 와인은 맛과 향이 변하는 특성 때문에 혼술 후 남은 내용물을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소주 제조기업 대선주조는 소주병에 와인을 담아 파는 식으로 편의성을 더했다. 와인은 소주보다 도수가 낮아 소주 1병(360ml) 양을 한 번에 마셔도 부담이 덜 하다. 소주병은 손으로 간단하게 돌려 딸 수 있어 코르크를 따기 위해 오프너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
대선주조는 칠레산 와인을 수입해 권장 판매 가격을 편의점 기준 3000원에 맞췄다.
조우현 대선주조 대표는 “‘반병 와인’은 실속과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와 부담 없이 와인을 팔고 싶어 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기획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2021년 참이슬 포켓이라는 200ml 소형 제품을 출시해 등산이나 스포츠 관람처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그 이전에는 테라 미니캔(250ml)을 선보였다. 현재 맥주는 330ml, 또는 미국식 355ml와 500ml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12온스(355ml)에서 따왔다. 테라 미니캔은 기존 제품보다 성인 남성 기준 두 모금 정도 양이 적다. 여성이나, 음주량이 적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일본계 맥주회사 기린이나 아사히는 250ml보다 더 작은 135ml 제품도 판매한다.
용량 변화의 경제학... ‘경영학적 승부수’
18세기 프랑스 와인 최대 수입국이었던 영국에서는 리터 법이 아닌 ‘임페리얼 갤런(약 4.54리터)’을 단위로 사용했다. 프랑스 상인들은 운송과 회계 편의를 위해 1갤런을 1더즌(다스) 절반인 6병으로 나눴다.
물체는 정사각형에 가까울수록 포장 효율성이 좋다. 현재 와인을 750ml 6병 단위로 포장하면 2박스만 붙여도 정사각형에 근접한다. 일정 공간에 1갤런을 가장 효과적으로 싣기 좋은 단위다. 로마 시절부터 달력과 시간에 두루 사용하던 단위라 계산도 어렵지 않다.
주류 용량 변화에도 세심한 경영 전략이 숨어있다. 제품 용량을 줄이면 전체적인 소비량은 줄 수 있어도, 구매빈도가 높아진다. 기존 용량이 버겁거나, 부족했던 새 소비자층을 유인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대중적인 주류 용량을 바꾸려면 상당한 비용과 도전 요소가 따라온다. 새로운 용량을 도입하려면 용기 생산라인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해당 용기 입구에 맞는 새 충전 장비도 필요하다. 세심하게 개편하지 못하면 HACCP(해썹) 같은 품질관리 과정 기준에 어긋나기도 한다.
주류업계는 용량 외에도 용기 재질, 글자체까지 세분화하며 소비자 취향에 맞춘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주류도매업중앙회 관계자는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술을 마시는 시대”라며 “프리미엄 주류는 소형 고급화로, 대중 주류는 대용량 가성비로 ‘용량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대용량 ‘역슈링크’로 불경기 대응
“소비 패턴 변화 맞춰 변화”
‘술병 크기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아라.’
차별화에 목마른 주류업계가 ‘용량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 심화와 경기 침체 속에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존 제품과 눈에 띄게 다른 다양한 용량의 제품을 내놓는 모습이다.
1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대전·충청 향토 소주 업체 선양소주는 지난 4일 참나무통 숙성 원액을 희석식 소주에 섞은 ‘선양 오크’를 GS25 편의점에서 출시했다. 이 제품은 일반 소주(360ml)보다 78% 큰 640ml 용기에 담아 판다.
GS25가 선보인 대용량 ‘선양 오크 소주’(오른쪽). /GS25 제공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역슈링크(逆shrink·용량을 늘리고 평균 가격은 내림) 전략이라 부른다. 양을 줄이면서 가격을 그대로 둬 ‘꼼수 인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슈링크플레이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선양소주는 지난해 3월 GS25와 참나무통 숙성을 하지 않은 일반 소주를 640ml 대용량으로 시험 판매했다. 편의점 판매가를 기준으로 375ml 소주는 1ml에 약 6원 정도다. 선양소주 제품은 용량을 늘려 1밀리리터에 4.7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선양소주에 따르면 이 제품은 젊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출시 50일 만에 첫 주 대비 매출이 95% 가까이 증가했다.
360ml 소주병에 담긴 ‘7.2잔’의 비밀
소주병 크기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했다. 현재 표준은 360ml다. 1980년대 500ml, 1990년대 375ml를 거치며 점차 줄어든 결과다.
소주병 360ml는 50ml 소주잔으로 따르면 7.2잔이 나온다. 한 병에 7잔 반이라는 애매한 숫자는 소비자들에게 ‘한 잔 더’ 심리를 자극한다고 주류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래픽=정서희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소주 1병 용량이 한국 전통 측정 단위 ‘홉’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진로소주가 처음 등장한 1924년 당시, 시판하는 음료 한 병은 보통 2홉(약 360ml)이었다. 이제 홉 단위가 사라지고 리터가 보편화됐지만, 이 용량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작아진 병, 커진 매력... 소형 용량의 반격
반대로 주종에 따라 표준 사이즈보다 작은 용량이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다.
편의점 업계에는 2022년 1인 가구를 위한 반병(375ml) 와인이 등장했다. 2022년은 팬데믹으로 혼술과 집술 열풍이 확산하면서 한창 와인이 많이 팔렸다.
그러나 상당수 소비자가 와인 750ml 1병을 한 번에 다 마시기 어려워했다. 남겨둔 와인은 맛과 향이 변하는 특성 때문에 혼술 후 남은 내용물을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소주 제조기업 대선주조는 소주병에 와인을 담아 파는 식으로 편의성을 더했다. 와인은 소주보다 도수가 낮아 소주 1병(360ml) 양을 한 번에 마셔도 부담이 덜 하다. 소주병은 손으로 간단하게 돌려 딸 수 있어 코르크를 따기 위해 오프너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
대선주조는 칠레산 와인을 수입해 권장 판매 가격을 편의점 기준 3000원에 맞췄다.
조우현 대선주조 대표는 “‘반병 와인’은 실속과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와 부담 없이 와인을 팔고 싶어 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기획했다”고 했다.
대선주조 '반병 와인'. / BGF리테일 제공
하이트진로는 2021년 참이슬 포켓이라는 200ml 소형 제품을 출시해 등산이나 스포츠 관람처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그 이전에는 테라 미니캔(250ml)을 선보였다. 현재 맥주는 330ml, 또는 미국식 355ml와 500ml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12온스(355ml)에서 따왔다. 테라 미니캔은 기존 제품보다 성인 남성 기준 두 모금 정도 양이 적다. 여성이나, 음주량이 적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일본계 맥주회사 기린이나 아사히는 250ml보다 더 작은 135ml 제품도 판매한다.
용량 변화의 경제학... ‘경영학적 승부수’
18세기 프랑스 와인 최대 수입국이었던 영국에서는 리터 법이 아닌 ‘임페리얼 갤런(약 4.54리터)’을 단위로 사용했다. 프랑스 상인들은 운송과 회계 편의를 위해 1갤런을 1더즌(다스) 절반인 6병으로 나눴다.
물체는 정사각형에 가까울수록 포장 효율성이 좋다. 현재 와인을 750ml 6병 단위로 포장하면 2박스만 붙여도 정사각형에 근접한다. 일정 공간에 1갤런을 가장 효과적으로 싣기 좋은 단위다. 로마 시절부터 달력과 시간에 두루 사용하던 단위라 계산도 어렵지 않다.
주류 용량 변화에도 세심한 경영 전략이 숨어있다. 제품 용량을 줄이면 전체적인 소비량은 줄 수 있어도, 구매빈도가 높아진다. 기존 용량이 버겁거나, 부족했던 새 소비자층을 유인하는 효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맥주 캔 공장에서 완성된 대용량 킹캔(710ml) 맥주캔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대중적인 주류 용량을 바꾸려면 상당한 비용과 도전 요소가 따라온다. 새로운 용량을 도입하려면 용기 생산라인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해당 용기 입구에 맞는 새 충전 장비도 필요하다. 세심하게 개편하지 못하면 HACCP(해썹) 같은 품질관리 과정 기준에 어긋나기도 한다.
주류업계는 용량 외에도 용기 재질, 글자체까지 세분화하며 소비자 취향에 맞춘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주류도매업중앙회 관계자는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술을 마시는 시대”라며 “프리미엄 주류는 소형 고급화로, 대중 주류는 대용량 가성비로 ‘용량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