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머스크 리스크
일론 머스크가 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 도착한 뒤 마린 원에서 내려 백악관 남쪽 뜰을 걸으며 ‘정부효율부(DOGE)’라고 적힌 티셔츠를 선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 대장’ 격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내외부 인사를 가리지 않고 충돌을 이어가면서 안팎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9일(현지시각) 머스크는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장관과 공개 언쟁을 벌였다. 그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스타링크 시스템은 우크라이나군의 중추다. 내가 스타링크를 끄면 우크라이나의 전선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라고 썼다. (…) 지난 6일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각료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공무원 해고 건을 두고 공개 말싸움을 벌였다. 그는 국무장관에게 “당신은 아무도 해고하지 않았다”며 “티브이에선 잘하더라”라며 비꼬았다. 트럼프는 회의 직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부처별 인력 감축은 각 부처가 결정할 문제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머스크를 공개 제지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설계자인 스티브 배넌은 지난 7일 자신이 진행하는 ‘워 룸’(War Room) 방송에서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기생적인 불법 이민자”, “악랄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테슬라 시설에서 최소 12건의 폭력·파괴 행위가 발생했으며 테슬라 매장, 충전소, 차량 기물 파손 등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한 테슬라 매장에 한밤중 총격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겨레 3월11일 보도
Q. 세계 최고 부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이던 머스크가 왜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서 저렇게 논란이 되는 거야?
A. 무엇보다도 머스크가 수장인 정부효율부(DOGE)가 추진하는 연방기구 구조조정과 공무원 해고 때문이지. 트럼프 행정부에서 출범한 정부효율부는 대통령의 임의적 자문기구인데, 2차대전 이후 연방정부 기구에 대한 최대 감축을 추진하고 있어.
미국 대외원조 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쇄해 국무부에 합쳐버리고, 9천여명 직원 중 100여명 이하로 남긴 것이 대표적이지. 중남미 원조기구인 미주재단(IAF)은 직원을 한 명만 남기겠다고 하네. 국세청에서는 절반인 4만5천명, 보훈부는 약 8만명, 연금인 소셜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소셜시큐리티청(SSA)는 4천명 삭감 등이야. 정부효율부 누리집을 보면, 10일 현재까지 구조조정과 해고로 약 1050억달러가 절약돼서, 납세자 1명당 652달러가 절약됐다고 주장해.
이런 대대적인 기구 폐쇄 및 해고는 당연히 반발이 일겠지. 해고된 공무원뿐만 아니라 해당 부처들도 기능 마비를 우려해 불만이 하늘을 찌르지. 특히, 정부효율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임의적인 자문기관에 불과한데, 이런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는데 우려가 크지.
Q. 그런데, 왜 그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거야?
A. 머스크는 지난 2월26일 내각 회의에 참석해 “우리는 국가로 지속될 수 없다. 현재 2조달러 (재정) 적자가 있다”며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로 1조달러를 쓰는데, 이것이 지속되면 이 나라는 사실상 파산한다”고 말했어. 재정적자 등 국가부채 때문이라는 거지.
그의 말대로 미국의 부채는 심각해.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지난해 9월30일에 종료된 미국 연방정부의 2024년 회계연도에서 연방정부는 1조8천억달러의 예산적자를 보고했어. 전년도보다 8%인 1380억달러가 늘어난 거야. 이런 적자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4%에 해당해. 미국은 5년 연속 1조달러가 넘는 예산 적자 상태야. 연방 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2023년 96%에서 2024년에는 98%로 늘어났어. 미국의 2024년 국내총생산은 29조1670억달러야. 국가의 총부채로 보면 더욱 심각해.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2월28일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약 36조2200억달러야.
이 국가부채로 인해 연방정부는 1월 기준으로 약 3922억달러의 이자가 발생해.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연간 이자부담은 2025년 회계연도에 9520억달러에 달해. 2035년에는 1조8천억달러까지 늘 수 있어. 올해에 하루마다 26억달러의 이자를 내는 셈이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정부 구조조정에 나서고,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를 물리는 관세 전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이런 부채 문제가 있어.
Q. 그런데, 트럼프가 왜 머스크에게 그런 일을 맡긴 거야?
A. 트럼프는 공직자보다는 외부의 기업인이 내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호하게 일을 처리할 것으로 생각했겠지. 또,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머스크를 내세워, 정부 효율화를 대중에게 선전하려는 목적도 있겠어. 그런데, 머스크가 악역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임무를 선뜻 맡은 것에는 다른 목적도 있다는 지적도 있어. 정부 효율화를 명분으로 각 부처의 중요 데이터들을 받아내서, 자신이 개발하는 인공지능에 활용하고, 그 인공지능으로 기존의 정부 인력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지.
머스크의 정부효율부는 출범 이후 국세청 등 중요 정부기관의 데이터를 보겠다는 실랑이를 벌여왔어. 머스크는 수백만명의 사망자에게도 소셜시큐리티 연금이 여전히 지급되고, 가자에 수백만달러어치 콘돔을 지원하고 있다는 등 기존 정부 부처의 부정부패와 비효율을 주장하며, 자신이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어.
Q. 머스크의 그런 주장이 사실이야?
A. 과장된 주장이거나 가짜뉴스에 불과해. 우선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연금을 받는다는 주장은 가짜뉴스야. 비용 부족으로 고치지 못한 컴퓨터 코딩의 에러야. 머스크는 기존 1125개 계약 중 417개를 취소해 예산을 절약했다고 하는데, 취소된 계약의 대부분은 이미 지출이 완료된 것이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5천만달러어치의 콘돔을 보낸 일도 없어. 다만, 가자에 가족계획프로그램 및 긴급 피임 등을 포함해 의료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을 위한 지원은 있었지.
Q. 그런데, 머스크의 정부 구조조정이 미국의 부채를 줄일 수 있는 거야?
A. 머스크는 내각 회의에서 7조달러 예산의 15%인 1조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가 미국의 부채를 줄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야. 머스크가 지금까지 한 거로 보면, 삭감될 비용은 양동이에 가득 찬 물 한두 방울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미국 연방정부가 2024년에 지출한 7조달러에서 60%가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비용이야. 즉, 연금인 소셜시큐리티,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및 메디케어(노년층), 퇴직군인 연금, 실업보험수당, 빈민층을 위한 영양지원 프로그램 등이 예산 지출의 60%를 차지하지. 13%는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이야. 14%만이 임의 지출로, 이론적으로 트럼프에게 가처분되는 비용이야. 그중에서도 사실상 절반 이상은 지출할 수밖에 없는 비용들이지.
현재 부채 구조에서, 예산의 60%에 달하는 소셜시큐리티 등을 손대지 않고서는 감축은 거의 불가능하지. 문제는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나 당선 이후에도 소셜시큐리티 등 중하류층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어. 트럼프의 지지층인 이른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마가)의 구성원들이 대부분이 소셜시큐리티나 메디케어 등에 의존하는 백인 중하류층들이기 때문이야.
더구나 트럼프는 감세를 약속했어.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가 지난 2017년 집권 때 실시했던 감세안 시한이 다가오자, 연장을 넘어 아예 영구화시키려고 하고 있어. 이 감세안이 유지되면, 향후 10년 동안 약 4조달러의 세수 손실이 발생하지. 2035년까지는 5조5천억달러의 세수 손실이 예상돼. 트럼프와 머스크가 국가부채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늘려 놓고 나갈 가능성이 더 크지.
Q. 트럼프는 이도 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겠네.
A. 머스크는 지난 2월28일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서 “소셜시큐리티는 전 시대의 최대 폰지 사기”라고 극언을 퍼부었어. 미국 시민들이 받는 노후 연금을 부정한거지. 이 때문에 미국 백인 중하류층들이 주축인 마가 운동의 대변인인 스티브 배넌이 그를 격렬히 비난하는 거지. 머스크라는 억만장자와 중하류층의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지.
트럼프가 보수 정당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국방비 삭감까지 꺼낸 것은 그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거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향후 5년 동안 매년 국방 예산의 8%를 삭감할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어. 올해 국방부 예산은 약 8500억 달러인데, 8%면 680억 달러 정도가 삭감되고, 5년 뒤에는 미국 국방예산은 올해의 거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가 될 거야. 미국과 트럼프가 국방예산을 삭감할 수 있을까?
월가의 헤지펀드 거물 레이 달리오는 지난 3일 블룸버그와 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 못 하면, 3년 안에 미국이 심각한 부채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어.
미국의 재정적자 등 국가부채는 1970년대 초반부터 고질병이야. 하지만, 미국은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믿은 다른 나라들이 사주면서 건재했지.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이 모든 나라와 관세전쟁을 벌이고 동맹국에 대한 방위를 포기하겠다면, 다른 나라들은 더이상 미국 국채를 사려고 하지 않을 거야. 여기에 트럼프 이후 미국 부채의 심각성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