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기금서 1조6000억 써
노동자 업무재해 보상에 ‘구멍’
기금·특별회계서 총 17조 전용
국회 예산 심의권 침해 지적도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기금 돌려막기’를 하면서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보상하기 위한 산재보험기금에서까지 1조6000억원을 끌어다 쓴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환경개선특별회계 등에서도 1조8000억원 등 5조원이 넘는 기금을 가져와 썼다. 세금이 부족하자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금’까지 끌어다 썼다는 비판과 함께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노동자 업무재해 보상에 ‘구멍’
기금·특별회계서 총 17조 전용
국회 예산 심의권 침해 지적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공개한 기재부의 ‘2024년 세수결손 대응 집행 내역’ 자료를 보면, 기재부는 지난해 31조원의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기금·특별회계 가용재원을 총 17조원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가 지난해 10월 세수결손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예고한 14조~16조원보다 실제 ‘기금 돌려막기’ 규모가 최소 1조원 더 커졌다.
세부 내역을 보면, 기재부는 산재보험기금 등에서 5조5000억원을 추가로 발굴해 세수결손에 메웠다. 산재보험기금에서 1조6000억원, 환경개선특별회계 등 기타 기금에서 1조8000억원, 교통시설특별회계에서 1조1000억원, 예금보험기금채권 상환기금에서 1조원 등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세수결손 대응방안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항목들이다. 정부는 이처럼 5조5000억원의 기금과 특별회계를 전용하는 대신 일반회계 재정사업 불용액을 애초 보고한 7조~9조원에서 6조1000억원으로 줄였다.
산재보험기금은 노동자의 산재 보상을 위해 써야 하고 재원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에서 나온다는 면에서 정부가 세수결손 대응을 위해 목적과 달리 쓰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환경개선특별회계란 미세먼지 저감, 환경오염 방지, 폐기물 처리 등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쓰는 것이 원칙이다.
주택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에선 기존 발표액(2조~3조원)보다 최소 2000억원 많은 3조2000억원을 전용했다. 기재부는 주택도시기금 예산으로 세수결손을 메우면서 올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지난해보다 2조5000억원(15.4%) 삭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외환 방파제’인 외국환평형기금에서도 예고한 대로 4조원을 끌어썼다. 정부가 2년 연속 외평기금을 세수결손을 메우는 데 쓰면서 정부의 환율 방어 능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세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기금을 사용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추경 등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세수결손에 대응할 경우 국회에 예산 심의·확정권을 부여한 헌법의 취지에서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정 의원은 “정부가 당초 세수결손 대응의 투명한 집행을 약속하고도 산재기금까지 끌어다 쓴 사실을 국민과 국회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금 결산이 2월 말에 끝나서 지난달 기재위에 큰 틀에서만 구두로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며 “(환경개선특별회계 등에 관련해선) 통상적인 불용 범위 내에서 예산을 줄였기에 특별회계 사업 비용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4년 세수결손 관련 기금 및 특별회계 전용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