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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 없는 영미권 자본시장에선
주주 가치 보호가 일반 '상식'처럼 여겨져
한국선 "중복상장 문제면 주식 사지마"
제도개선과 함께 지배주주 인식 변화 수반돼야
뉴욕 맨해튼 소재의 구글 사무실. 뉴욕=AF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금융선진국에서도 물적분할에 따른 상장에 제한을 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중복상장이 유독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해외에서 "중복상장은 주주 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다"는 시장의 인식이 강해, 중복상장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대표적이다. 알파벳은 구글과 유튜브, 딥마인드, 웨이모 등 유수의 기업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지만 알파벳 하나만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의 모회사인 메타, 홀푸드·아마존웹서비스·트위치 등을 보유한 아마존 등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들은 중복상장을 단순히 외부 자금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쉬운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발언이다. 구 회장은 5일 한 행사에서 그룹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 이슈를 언급하며 "작은 회사들이 성장하려면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투자를 위해서는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제한적"이라며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안 사면 되는 것"이라고 해 논란을 자초했다. 해당 발언으로 다음 날 LS그룹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사소송 등이 활성화돼 있는 미국에선 소액 주주의 권리 훼손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해 중복상장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반대로 한국에선 일반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명시적으로 중복상장을 규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이들 국가는 거래소 심사 등을 통해 자산 및 영업범위의 중복성 등을 통과해야만 상장을 허가하거나, 모기업과의 지배관계를 중단해야 상장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 연일 중복상장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한국 자본시장이 아직 후진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금융당국도 LG에너지솔루션 중복상장 논란 당시 제재에 나섰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물적분할 후 5년 내 자회사 상장 시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정도의 제한만 둔다. 하지만 자본시장연구원이 2010~21년 기간 신규 상장기업 788곳 중 물적분할로 상장한 17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분할 기일부터 상장까지 평균 4.4년 소요됐다. 상장까지 복잡한 절차를 겪다 보면 5년이란 기간이 그다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앞으로도 CJ올리브영(CJ), 티맵, 원스토어(SK스퀘어), SK에코플랜트(SK),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 SSG닷컴(신세계·이마트), 한화금융서비스(한화생명), HD현대오일뱅크(HD현대) 등의 중복상장이 예고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 논란처럼 소모적인 논쟁 대신 정치권도 소액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전반적인 제도 손질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수단이 부재한 만큼 일본의 사례처럼 거래소 가이드라인 등을 통한 지배주주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자본시장법 개정과 더불어 상속세 개편 등의 논의 또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의 해묵은 중복상장, 순환출자 등 지배구조 문제가 경영권 승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주사 하나만 상장해 밸류업 프로그램의 모범생으로 꼽히는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조정호 회장이 승계를 포기하고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난 이후 주주환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면서 주가가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6일 기준 조 회장의 주식평가액은 12조4,334억 원으로, 종전 1위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2조1,666억 원)을 뒤로하고 국내 주식부자 1위를 차지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복상장을 단순 금지하는 식의 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한 일반법 개정과 함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지배주주 등 근본적인 자본시장 인식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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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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