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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일본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승객들이 발권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김범준 기자


장면1.

“작년만 해도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아기용품을 사오기도 했는데 이젠 비용이 더 클 것 같아 다른 지역을 고민 중이에요.”(30대 여행객 A 씨)

장면2.

60대 주부 B 씨는 작년에 엔화에 투자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880원이 되자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한 금액은 100만 엔. 그는 올해 2월 100엔당 950원이 되자 은행 앱을 통해 엔화를 전부 원화로 바꿨다. 70만원 정도 이익을 봤다.

장면3.

월급의 일부를 주식과 채권 등에 꾸준히 투자하는 C 씨는 최근 일본 뉴스를 챙겨보고 있다. 주목하는 단어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여부와 엔캐리트레이드. 작년 7월 기준금리 깜짝 인상의 여파가 엔캐리트레이드 청산까지 이어지며 일본은 물론 미국과 한국 증시까지 발작했다. C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이후 사들인 일본 상장지수펀드(ETF)에선 요새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일본 엔화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ETF인데 엔화 강세에 수익률이 좋더라구요.”

일본 엔화 가치가 강세다. 일본의 금리인상 기대가 퍼지면서 원·엔 환율이 1000원(100엔당)에 근접하고 있다. 3월 4일(서울 외환시장) 원·엔 환율은 장중 981원까지 오르며 2023년 5월 이후 약 21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올해 초(935원)와 비교하면 두 달 만에 5% 가까이 급등했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67% 하락(엔화 가치는 상승)한 149.36엔을 기록했다.

원화와 엔화를 직접 교환하는 시장은 따로 없어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이용해 간접 계산한다.

◆日 금리인상 가능성에 엔화 강세

엔저현상은 수십 년 이어졌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하락)에 빠졌다. 일본 정부가 꺼내든 경기부양책은 엔저(낮은 엔화 가치)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BOJ가 시중은행의 장단기 국채를 사거나 주식을 매입하는 등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 엔저를 유지했다. BOJ는 2016년 마이너스 금리(금리가 0% 이하인 상태)도 도입했다. 2021년 코로나19,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과 이에 대응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국면에서도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계속했다.

엔화의 초약세로 일본 여행 열풍이 불었고 관광 후 엔화를 환전하지 않고 묵혀 두거나 엔화를 사는 등의 엔테크(엔+재테크)족도 크게 늘었다. 글로벌 은행과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등 기관은 일본에서 대출을 받아(거의 공짜) 금리가 높은 국채나 테슬라·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주 등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 저금리에 엔화를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였다.

엔저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신호는 2024년 3월에 나왔다.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끝내고 17년 만에 금리를 0~0.1% 인상했다. 장기금리를 낮게 조절하기 위해 국채를 대량 매입했던 ‘수익률 곡선 관리’(YCC) 정책도 폐지하고 주식시장 부양을 뒷받침하던 ETF·부동산투자신탁(REIT) 매입도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해 3월엔 “무이자 시대를 끝내겠다(엔저 탈출)”는 예고를 많이 날려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작년 7월 31일 기준금리 깜짝 인상의 여파는 컸다. 일본 금리는 오르는데 미국은 8월 1일 금리를 동결하자 한 달 만에 엔·달러 환율이 12% 넘게 떨어졌다. 엔화 가치 상승이었다. 미국의 경제지표도 영향을 줬다. 미국의 실업률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고 제조업 지표도 부진하게 나타나면서 8월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대출 이자값이 오르자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이어지면서 전 세계 증시를 흔들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취임 후 급격한 금리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속도가 늦춰지면서 엔화의 강세 전환은 미뤄졌다.

하지만 2025년 1월 24일 일본은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했다. 0.25%에서 0.5%로 올렸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의 달러 대비 엔화 환율 전망치는 2024년 3월 말 154엔에서 12월 말 151.7엔으로 낮아졌다(국제금융센터).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얘기다. 올해 3월 엔·달러 환율은 149엔 선이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엔고의 배경은 일본 경제 부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엔저를 배경으로 반도체 제조 장비와 자동차 등 수출이 성장을 이끌었다.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지난 1년간 약 19% 상승했다. 1989년 거품경제 정점 시기 고점(3만8915)을 35년 만에 깨트리고 2024년 3만9894.54로 폐장했다. 작년 7월 11일엔 사상 최고치인 4만2224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상장사 시가총액 1위 도요타자동차는 2024년 1082만여 대의 신차 판매 실적을 기록해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경상수지는 역대 사상 최고인 29조6215억 엔을 기록했다.

기초체력을 갖췄다고 판단한 일본은 물가로 눈을 돌렸다. 수입 물가가 오르며 국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는 엥겔계수(가계 소비지출 중 식비 비율)가 28.3%로 1981년 이후 43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엥겔계수 상승은 생계유지 외에 쓸 돈이 부족하거나 물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말이다. 실제 지난해 2인 이상 가계의 평균 소비지출(가구당 30만243엔)은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0%(신선식품 제외 3.2%) 올랐다. 지난 30년간 디플레이션만 경험한 일본인들에겐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고 불만이 쌓여갔다. BOJ는 물가가 2%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임금도 함께 상승할 경우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무라 나오키 BOJ 심의위원은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후반에는 금리를 적어도 1% 정도까지 올려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메이지야스다 종합연구소의 고다마 유이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체적으로 (일본) 경제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BOJ는 점진적인 금리인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지하는 것은 오랫동안 경제성장 전략 중 하나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약세 통화가 수출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켜 소비자의 구매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엔저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이끌었고 일본의 가계 소비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도 부담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전통적 동맹국인 일본을 지목해 “(두 나라가)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미국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며 달러 대비 통화 가치가 약세인 나라에는 관세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은 “통화 약세 정책을 쓰지 않고 있다”고 즉각 반박했고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엔·달러 환율은 3월 4일 오전 한때 150엔대에서 148.63엔까지 떨어졌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엔캐리 청산 재발할까

엔캐리트레이드는 엄청난 규모라고 짐작만 될 뿐이다. 정확한 금액도 알 수 없다. 한국은행은 전체 엔캐리 자금 잔액을 506조6000억 엔으로 추정했다(지난해 3월 말 기준). 한은은 이 중 6.5%인 32조7000억 엔을 청산 가능 규모로 분석했다. UBS 글로벌 전략가 제임스 맬컴은 2011년 이후 누적된 달러-엔캐리트레이드 규모가 5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일본의 금리인상 이후 약 2000억 달러어치가 청산됐으며 이는 예상 청산 규모의 4분의 3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올해는 대규모의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낮게 점쳐진다. 지난해와 달리 미·일 금리차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미국의 금리는 연내 2회 인하도 불투명한 상황이고 일본은 앞으로 1회 정도 추가 인상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달러값이 비싼데 달러를 팔고 엔화를 되살 유인이 적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 투자사 레드스톤 오라클의 마르친 카즈미에르작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엔화 가치 상승은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을 다시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벚꽃 시즌인데…일본 여행 감소

“고객 4명 중 1명꼴로 일본 여행을 갈 정도로 뜨거웠는데 예약이 팍 줄었어요.”(여행사 직원 D 씨)

엔데믹 이후 일본은 한국인 여행객 수요가 가장 많았던 여행지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26.7% 증가한 881만78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방일 외국인 관광객의 24%다(일본 관광청). 올해 1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12.8% 늘어난 96만7000명으로 월 방문객 기준 역대 최대다. 하지만 2월 들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하나투어의 지역별 해외 패키지 상품을 보면 지난 2월 일본 관광 비중은 23.7%로 지난 1월(28.9%)과 비교해 5.2%포인트 감소했다. 1년 전보다는 4.2%포인트 줄었다. 모두투어도 지난 2월 일본 여행 비중(20.1%)이 작년 2월(22%)보다 감소했다. 여행업계에선 벚꽃 여행 수요가 몰리는 3~4월에도 일본행 여행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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