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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중복상장 77개 모회사 주가 분석
전체 72% 기업 지수 대비 주가 하회
주주들은 핵심 사업 보고 투자했다가 뒤통수
기업은 지분율 손해 없이 손쉽게 자금 확보
주가 하락. 증시 폭락. 경제 불황. 게티이미지뱅크


핵심 자회사를 분할해 별도로 상장하는 중복상장 문제가 한국 주식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루아침에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의 주가는 자연스럽게 내리막길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언제든 이런 위험 속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개미들을 국내 주식에서 손을 떼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9일 한국일보가 최근 5년간(2019~2024년 상반기) 중복상장이 발생한 77개 모회사의 상장일부터 6개월간 주가를 분석한 결과, 55개 기업(72.7%)에서 같은 기간 해당 주식이 상장된 유가증권(코스피) 및 코스닥 지수보다 부진한 성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복상장이 있었던 모회사의 경우 평균 3.5%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및 코스닥은 평균 5.5% 성장했다
.

중복상장이란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회사가 알짜 사업 부문을 분할한 뒤 이를 상장하는 것으로, 모기업과 자회사가 동시 상장되는 것을 말한다. 글로벌 주요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으로, IBK투자증권의 추산에 따르면 국내 증시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에 달한다. 이는 미국(0.35%), 일본(4.38%), 대만(3.18%)뿐 아니라 중국(1.98%)보다도 훨씬 높은 비율이다.

증권가에선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따른 이익 더블카운팅(중복계산) 문제가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복상장이 주가 할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이익이 두 번 집계되기 때문"이라며 "국내 지수 밸류에이션(평가) 시 보수적으로 순이익의 10~15% 수준을 할인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 판단한다"고 말한다.

모·자회사 이익 더블카운팅…기업가치 왜곡

중복상장 발생한 모회사와 상장 지수의 6개월 주가 추이


대표적 사례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LG화학 지분율 81.8%)이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2020년 1월 주가가 30만 원대에서 2021년 2월에는 100만 원을 넘어서 '황제주'에 등극했다. 하지만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이었던 LG에너지솔루션이 물적 분할한 후 상장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졌고,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이후 LG화학의 주가는 한 달 만에 16.6% 빠졌다. 현재 LG화학의 주가는 22만 원 수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일 대비 삼분의 일 토막 났다. 당시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고 호소한다.

2023년 11월 17일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상장하자 모회사 에코프로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자회사 상장 당일 13만5,800원이던 에코프로 주가는 6개월 후 9만9,700원으로 26.5%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이 7% 상승한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두산과 두산로보틱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3년 10월 5일 두산로보틱스는 상장한 첫날 주가가 97.79%나 오른 반면 모회사인 두산은 19.4%나 하락했다. 미래가 유망한 자회사가 상장하면서 두산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논란에도 자회사 중복상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상장한 LG CNS 역시 지주사인 LG와의 중복상장이란 비판이 불거졌다. 실제 LG의 주가는 LG CNS 상장 한 달 사이 8.06% 하락했으며, 1년 전과 비교해서는 30% 이상 빠졌다.

"의결권 피해 없이 손쉽게 자금 확보"

주요국 중복상장 비율


개인 주주들이 그토록 중복상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기업이 중복상장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배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피출자회사가 상장이 아닌 유상증자로 자본을 조달할 경우 지배주주가 자금 부족으로 증자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의결권 지분이 희석되는 위험을 안게 된다"며 "반면 피출자회사가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면 동일인 등은 추가 자금을 들이지 않고 지배권을 유지하는 효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이 2019~2024년 6월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 중복으로 상장한 78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복상장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동일인 등은 의결권 지분율 5.01~9.52%포인트가 감소하는 것을 피했다.

이처럼 재벌 기업이 손쉽게 영역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중복상장을 수십 년간 자행하면서 국내 증시는 구조적으로 저평가를 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SK그룹에는 가장 많은 20개의 상장사가 있으며 삼성(17개), 현대백화점(13개), 현대차(12개), LG(11개), 한화(11개), 롯데(11개), 카카오(10개) 순으로 그룹 내 상장사가 많은데 상당수가 중복상장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외상장, 중복상장 논란 피하려는 꼼수?

현대차는 2024년 10월 22일 인도 뭄바이 인도증권거래소(NSE)에서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 기념식을 개최했다. 현대차 장재훈(왼쪽부터) 사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인도증권거래소 아쉬쉬 차우한 최고운영자(CEO) 등이 타종식을 하는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이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현지에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현지 시장 개척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주주들은 그로 인해 국내 모기업의 주식 가치는 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실제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은 현지에서 상장에 성공했고,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를 현지 상장했다. LG전자와 CJ대한통운도 인도법인의 상장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모자회사 중복 상장의 논란에 대한 감독당국의 엄격한 잣대, 투자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피해 해외 상장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며 "기업가치가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국내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는 밸류업 아닌 밸류파괴"라고 했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자 중 현대차에 투자하려다 인도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현대차 인도법인에 투자할 수 있는 요인이 생긴 것"이라며 "단일로 모여도 주가가 오를까 말까 하는데 모회사와 자회사 나눠서 상장하다 보니 수요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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