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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리세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워싱턴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 도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리세션’(Trump recession)이 다가온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댕긴 ‘관세 전쟁’이 제 발등을 찍어 상대국은 물론 미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적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 미국 경제가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관세 정책’ 부메랑…1분기 역성장 전망도

미국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지디피나우(GDPnow)는 지난 6일(현지시각) 올해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2.4%(전기 대비 연율 기준)로 제시했다. 지난달 28일 -1.5%로 내린 데 이어 추가 하향조정했다. 지난달 3일 전망값(3.9%)과 비교하면 한달 만에 무려 6.3%포인트 낮춘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발표된 부정적 경제지표들을 반영한 결과다. 특히 국내총생산을 구성하는 개인소비지출(PCE)과 민간투자, 순수출(수출-수입) 전망치를 대폭 하향조정했다. 애틀랜타 연은은 “무역 전쟁 우려가 물가(인플레이션)에서 성장 위험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나 홀로 성장(미국 예외주의)을 이어온 미국 경제가 트럼프의 관세·이민 정책으로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것이다.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2.3%로 잠재성장률(약 1.8%)을 웃돌았다. 미국 경제가 역성장한 건 2022년 1분기(-1.0%)가 마지막이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정책 영향으로 미국 경제성장률이 0.7~1.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알리안츠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연초 10%에서 최근 25~30%까지 증가했다고 봤다.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연방정부 인력 감축으로 고용이 위축될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업·소비지표 위축…주식 등 달러 자산 약세

미국 제조업과 소비지표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와 상대국의 보복 조처가 물가상승과 수요 및 소비 위축을 부를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3으로 전월 대비 0.6포인트 하락해 시장 예상치(50.5)를 밑돌았다. 이 지표가 기준선인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을, 밑돌면 수축 국면을 뜻한다. 티머시 피오리 공급관리협회 회장은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이 기업들의 신규 주문 적체, 공급업체의 납품 중단과 재고 등에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미국의 관세가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려 미국 내 신차 수요를 12%가량 위축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소매판매와 소비심리는 동시에 악화했다. 미 상무부 발표를 보면, 지난 1월 미국의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9% 줄었다. 폭설 등 일시적 영향이 있었지만 시장 전망값(0.2% 감소)을 크게 밑돌며 6개월 만에 감소 전환했다. 미시간대학이 발표한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0%(73.2→67.8) 가까이 급락해 2023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물가상승 우려로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4.3%까지 올랐다.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달러와 주식 가격이 약세로 돌아서고 국채 가격은 급등(금리 하락)했다. 올 들어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는 109.96(1월13일)까지 올랐으나 2월 이후 하락해 지난 5일에는 104.27까지 떨어졌다. 하락률이 5.2%에 이른다. 트럼프 2기 출범 전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탄 미 국채금리도 최근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장기 전망이 녹아 있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인 1월 중순 연 4.7%를 웃돌았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을 하며 이달 들어 연 4%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잘나가던 뉴욕 증시는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대형주 중심의 에스앤피(S&P)500 지수 상승률은 1%대에 머물고 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연간 수익률(에스앤피500지수 23.4%, 나스닥지수 28.6%)과는 거리가 멀다.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변동성지수(VIX)는 올 들어 최고 수준을 잇따라 경신하고 있다. 고율 관세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증가와 수익성 악화, 물가상승에 따른 고금리 장기화와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 ‘예고된 악재’들이 반영되고 있다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의도된 경기침체?…‘미국 블록’ 협상 추이 관건

일각에서는 ‘의도된 경기침체’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찰리 매켈리것 노무라증권 분석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경제 둔화를 유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고율 관세가 경기를 둔화시켜 결국 물가까지 끌어내리면 달러 약세와 정책 금리 인하로 이어져 트럼프 임기 중후반기에 경제회복의 과실을 챙기려는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36조달러)의 이자 부담을 줄이려 국채금리 하락을 유도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여러 차례 “대통령과 나의 최우선 관심사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자동차에 한해 관세를 30일 면제한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가 협상용 카드라는 점을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기도 하다. 자동차 관세 유예 발표 직후 재협상 기대가 퍼지면서 뉴욕 증시와 미 국채금리는 일제히 반등했다. 경제분석기관인 영국의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이 트럼프 개인의 결정에 크게 좌우되고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며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연합 등 동맹국인 ‘미국 블록’이 과연 협상을 통해 유지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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