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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행정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뭐, 이거 6·25 전쟁도 아니고 말이지. 이쪽이 잡으면 있던 사람들 다 나가라고 하고, 저쪽이 점령하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 나가라고 하고.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일어나는 ‘물갈이’가 점차 낮은 직급까지 내려오고 있다. 일반 행정조직만이 아니다. 연속성이 중요한 국가정보원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이 바뀌면 전 리더의 약점을 찾기 위해 담당 공무원들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우리 공직사회에서 일상적인 모습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대통령과 단체장들은 자신의 어젠다를 열심히 추진하려 하지만, 공무원들은 벌써 5년 뒤를 보고 ‘적폐’가 되지 않기 위해 ‘비난 회피’를 준비한다. 특히,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비공식 대화까지 녹음하거나 누가 문서를 수정했는지를 명확히 함으로 책임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 복지부동이라고 정치인들은 몰아붙이지만, 그것은 정치가 만든 공직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공공성과 유능함을 갖춘 행정학도들이 공직사회 진출을 주저하고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지역 현장을 누비며 인터뷰를 하고, 영상을 찍고, 문서들을 분석하며 꽤 멋진 해법들을 제안한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학생들이 공직자가 되면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민간 기업이나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고 있다. 이들이 언론을 통해 보는 관료는 상명하복, 복지부동, 그리고 정치인들의 ‘호통’을 무미건조한 얼굴로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정치는 소중하나 관료제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아직 찾지 못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인들은 관료들을 어떻게 장악하여 레임덕이 오기 전 공약을 실행하게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중요한 공직을 전리품 정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관료제의 중요성과 이해가 부족하니 임기 내내 구호만 난무하다가 나중에는 관료에게 휘둘리게 되기도 한다. 이들을 존중하고 협력하며, 동기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매우 달라질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관료제의 문제가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쓴 노한동 작가는 정부에 편만한 가짜 노동을 고발한다. 국가는 사회경제와 인구의 대전환 시기를 맞이하고,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데 관료들의 일상 노동은 그런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적극 행정을 권장하지만 창의적 행정이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상사와 동료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국민이 보기에 이들은 공공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관료들의 성과 평가는 낮을까? 놀랍게도 중앙과 지자체의 과 단위 관료 조직은 주어진 일들을 거의 100%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모두가 할 일을 100% 하는데, 지역은 소멸하고 청년은 결혼·출산을 기피하며, 자살률은 최고이고, 성장과 기술발전이 정체되고 있다. 시스템 어딘가가 고장 나 있는 것이다. 현재 중간급 관료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적당한 지표를 제시하고 평가를 받는 것으로는 그들의 ‘열심’이 국가 발전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없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생산되려면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 공감할 수 있는 성과지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끊임없이 협업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장관 청문회는 능력 검증의 자리가 아니다. 사생활을 중심으로 현미경 검증을 당하며 수치심과 모욕감을 견뎌내야 하니 능력이 있는 이들이 기피한다. 결국 역량이 부족한 장관을 모시며 가짜 노동을 해야 하는 부처의 관료들은 괴롭다.

정치화된 관료제, 핵심이 빠진 성과 평가, 능력을 따지지 않는 청문회, 재량 없고 경직된 조직 간 관계 등을 통해서 공직사회가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한 정치경제 상황과 거대한 사회인구적 압력에 대응할 유능한 관료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국 정부효율부라는 엉뚱한 결론으로 이를 수도 있다.

혼란기에도 질서를 가지고 이 나라가 움직이는 것은 어디선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공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통제하기에 관료 조직은 너무 거대하고, 중요하다. 관료들을 동반자로 보는 정치와 스스로 혁신을 일구어내는 관료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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